2014년 '명량'과 닮은꼴?
결말을 알면서도 극장에 갔다. 결국 갔다.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수 많은 짤과 역사가 스포임에도... 결국 가서 봤다. 팝콘까지 사들고.
10년째 누적관객수 1위를 지키고 있는 <명량>을 찍던 2014년. 뭔가 크게 무너진 것 같은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던 그 해. 사람들은 극장에서 이순신을 봤다. 근데 사실은 - 자기가 원하는 리더를 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스크린이 현실보다 나았으니까. 그리고 2026년엔 단종이 대한민국 국민을 불러모았고, 다섯 명중 한 명이 응답했다. 시대는 늘 극장으로 사람을 밀어넣는다. 그것도 결말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 밥 한 끼가 살린 건 어린왕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영화 초반에 자주 등장하는 게 '밥'이다. 청령포로 유배된 노산군(단종)은 밥을 먹지 않는다. 안 먹었다기 보다 못 먹었을 거다. 왕도 아니고, 돌아갈 곳도 없고, 숟가락을 들 이유를 잃어 버리지 않았을까?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밥상을 들고 왔다. 거창한 것도 아니었다. 노상군 걱정 반, 남기면 먹을 수 있다는 흑심 반. 그 투박한 마음이 노산군의 숟가락을 들게 했다. 마음 사람들과 겸상을 하며 그들의 관심과 밥을 먹기 시작하며 살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로부터 위험에 빠졌을 때 - 그는 활을 들었다.
밥 한끼가 단종을 살렸고, 어린왕은 마을 사람을 지켰다.
거창한 충성 맹세도 없이....
� 엄홍도의 얼굴에 우리가 있었다.
엄홍도는 처음부터 의리같은 거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먹고 살게 하는 것이 먼저인. 그냥 우리 같은 사람. 유배자가 온다는 소식에 동분서주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배불리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막상 온 건 - 어린 노산군이었다. 콩고물은 커녕 마을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
그리고 우리가 다 아는 마지막 순간이 왔다. 단종의 마지막을 곁에서 함께하고, 삼족이 멸해질 수 있음에도 시신을 거둬 수습하고 자취를 감췄다. 가장 많이 울었던 장면, 단종도 엄홍도도 많이 무서웠을 텐데... 서로가 서로를 위했던.2024년 12월 3일 밤, 국회 앞에서도 수 많은 엄홍도가 있었다. 무서웠을 텐데...
� 응원봉과 장항준의 공통점
계엄 이후, 탄핵되기까지 우리는 추운 겨울 대부분의 국민은 응원봉을 들었다. 서로 으르렁대던 팬덤들이 응원봉을 나란히 세우고, 가장 폭력적인 권력 앞에 해학의 깃발과 노래로 맞섰다.
그 해학과 비폭력적 행위가 장한준 감독과 묘하게 겹친다.
천만 공약으로 개명, 성형, 귀화, 유람선 파티를 줄줄이 내걸었다. 배급사가 대책 회의를 열 정도였다. 막상 천만이 되자 — "우리끼리 얘기지만, 뱉은 말을 어떻게 다 지키고 삽니까." 전 재산 반을 걸었으면 어쩔 뻔했냐고, 너스레를 떤다. 수없이 거짓 공약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정치인들보다는 훨씬 인간적이다.
밉지가 않다. "배우들이 멱살 잡고 영화를 끌고 갔다"는 말에도 기죽지 않고 "그 배우들을 누가 모았을까요" 웃는 감독. 호랑이 CG 논란엔 개봉일에 맞추느라 시간이 쫓겼고, 처음에 너무 힘을 준 자신의 실수라고 쿨하게 인정한다. 역시 밉지가 않다. 이 영화는 역사의 아픔을 장한준 감독식으로 꼭 감싸고 있다. 그 온기가 어색한CG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
천만 영화는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불려오는 거다. 시대의 결핍이 - 사람들을 극장으로 부른다.
2014년, 세월호가 바다에 빠진 날의 그 해에 이순신이 불러모았다. 2024년 계엄이 있었고, 아직 그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올해 — 단종이 다시 불러모았다. 결말을 알면서도 갔다. 위로받으러가 아니라 — 확인하러. 우리 곁에 엄흥도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우리이기도 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