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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Apr 18. 2022

어서 오세요, 여기는 오생리입니다

프롤로그


남들에겐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 이곳은 하나밖에 없는 우주다.

산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시골 마을. 읍내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야 하는 외딴 집, 남들에겐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 이곳은 하나밖에 없는 우주다. 아침이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과 바람 소리, 새소리에 잠을 깬다.


사계절, 우리 집 가는 길.


봄에는 돋아나는 새싹에 감탄하고 여름에는 빠르게 자라나는 잡초에 경악한다. 가을엔 높아진 하늘과 색색으로 물든 풍경에 넋을 놓고, 눈 내리는 겨울이면 강아지처럼 신이 나 쏘다니며 시간을 잊는다.




대도시에서의 삶을 꿈꿨었다. 화려한 불빛과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의 활기에 이끌렸고, 그 풍경 속에 스며들어 매일을 흥미진진하게 보내길 바랐다. 하지만 동경했던 도시에서의 생활은 내 생각과 많이 달랐다.


직장에서 메뉴를 개발하고 음식을 만들면서도, 정작 나는 늘 배가 고팠다. 바빴고 고단했다. 즉석 밥과 라면으로 말 그대로 끼니를 자주 ‘때웠고’,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도 몰랐다. 그저 더우면 옷을 가볍게 입고, 추우면 걸치는 것으로 무심히 계절을 지나쳤다. 우선순위에서 나는 자꾸만 뒤로 밀려났고, 점점 더 작아졌다. 오직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어렴풋한 감각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노을, 외갓집에서.


그러던 어느 여름날, 아슬아슬하던 마음이 기어코 바닥을 치며 우르르 쏟아지고야 말았다. 무릎이 시큰시큰 심상치 않더니만 한 시간도 채 서 있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병원에서는 왜 이렇게 될 때까지 그냥 뒀냐며, 무릎 손상이 심해서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몸이 아픈 것보다 요리를 영영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왈칵 두려움이 몰려왔다. 바보처럼 그때도 나는 나 자신보다 다른 데 더 정신이 팔려 있었다.


외갓집 장독대 / 외할아버지 밭의 들깨꽃


도시를 꿈꿨지만 마음을 한 겹 한 겹 벗겨내고 들여다보면 마지막엔 언제나 소박한 시골 마을과 자연이 나왔다. 방학이면 살다시피했던 외갓집은 내게 고향이나 다름없었고,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에는 계절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걱정 없이 행복했다.


그럴듯해 보이고 싶다는 헛된 바람을 내려놓으니 그제야 내게 평안한 곳이 어디인지,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가 보였다. 요리는 꼭 직장에 붙박여 있지 않아도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여기, 외갓집이 있는 합천과 오생리 우리 집을 오가며 자연을 만나고 거두고 요리해 차려낸 삼 년여의 시간을 담았다. 계절이 느리게 키워낸 제철 재료를 손질하고 작고 순한 마음을 얹어 나를 대접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치유였고, 다시 일어설 힘도 생겼다. 어떨 때는 별것 아닌 한 접시에서 유년 시절의 추억이 솔솔 피어나 달큼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대수롭지 않은 보통날의 가치를 이제야 알겠다.


봄날의 갓꽃 파스타


숲을 옆에 끼고, 흙을 만지며, 계절마다 돋아나는 행복을 거둬 식탁을 차린다. 마음이 무겁고 습한 날, 숲을 걷다 보면 거짓말처럼 마음에 낀 안개가 걷힌다. 현실은 언제나 예측하기 어렵지만, 한결같은 자연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부지런히 움직이면 다 괜찮을 거라는 무작정의 긍정이 생겨난다. 지금 나의 마음은 더 이상 허기지지 않다.


간소하게 차려낸 사계절이 누군가에게도 위로이자 회복이 되었으면 좋겠다.




<보통날의 식탁> 영상으로 만나기!


차례차례 바뀌는 계절, 이 멋진 지금을 봐.

훈훈하고 싱그러운 책.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음이 고플 때마다 꺼내 읽게 될 책이다.
_김신회(에세이스트, 《가벼운 책임》 저자)

책을 읽다 보면 냉장고에 가까운 계절을 채우고 싶어진다.
나에게 수고스럽고 싶어진다.
_임진아(삽화가, 《오늘의 단어》 저자)


스쳐가는 계절을 붙잡아 아낌없이 누리는 오늘 치의 행복,

푸근하고도 화사한 '리틀 포레스트'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어쩌면 조금 지쳐 있을 당신에게 전하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식탁 일기 《보통날의 식탁》



인스타그램 @ssol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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