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상스 죽음의 무도

by 귤상자 클래식


들어가며


클래식 음악 가운데에는 처음부터 장면이 또렷하게 떠오르는 곡들이 있습니다.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는 그런 작품의 대표적인 예라 할 만합니다. 제목부터 강렬하지만, 막상 음악이 시작되면 놀라운 것은 단지 음산함만이 아닙니다. 자정을 알리는 울림, 비틀린 바이올린의 음정, 춤곡처럼 출렁이는 리듬이 한데 얽히면서 이 곡은 공포와 유희가 묘하게 섞인 세계를 펼쳐 보입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은 무섭다고 느끼면서도 어느새 그 기묘한 움직임에 끌려 들어가게 됩니다.


낭만주의 관현악곡을 떠올리면 흔히 감정의 고양이나 서정의 확장을 먼저 생각하게 되지만, 이 작품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청중을 사로잡습니다. 생상스는 이야기와 음색, 리듬의 성격을 치밀하게 맞물리게 하여 짧은 시간 안에 하나의 극적인 풍경을 세웁니다. 잘 알려진 곡이지만 배경과 구조를 함께 알고 들으면, 이 음악이 단순히 유명한 할로윈용 명곡이 아니라 프랑스 관현악의 세련된 감각이 살아 있는 교향시라는 점이 더 분명하게 보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eAOUgdzWiI


작품 설명


죽음의 무도는 1874년에 완성된 교향시이며, 이보다 앞선 1872년에 생상스가 앙리 카잘리스의 시에 붙였던 가곡을 바탕으로 발전한 작품입니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관현악용으로만 태어난 곡이 아니라, 시적 이미지와 언어적 서사가 이미 깃들어 있던 재료를 새롭게 확장한 결과물입니다. 초연은 1875년 1월에 이루어졌는데, 오늘날에는 생상스의 대표적인 관현악곡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만 당시에는 다소 낯설고 기괴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만큼 이 곡은 19세기 청중에게도 꽤 선명한 자극을 주는 소리의 상상력을 품고 있었습니다.


작품의 바탕이 되는 전설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한밤중이 되면 죽음이 바이올린을 켜며 무덤 속 해골들을 불러내고, 새벽 닭 울음이 들릴 때까지 그들이 춤을 춘다는 내용입니다. 생상스는 이 이야기를 설명문처럼 풀어내지 않고, 오히려 몇 가지 인상적인 음향 장치로 압축해 보여 줍니다. 곡의 도입에서 하프가 같은 음을 열두 번 두드리는 부분은 자정을 알리는 시계소리처럼 들리고, 뒤이어 솔로 바이올린이 만들어 내는 불편한 음정은 이 밤의 질서가 이미 일상적인 세계와 다르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립니다. 청중은 줄거리를 몰라도 소리의 표정만으로 낯선 장면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곡에서 특히 중요하게 들을 대목은 솔로 바이올린의 역할입니다. 여기서 바이올린은 단순한 협주적 장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죽음이 켜는 악기를 상징합니다. 생상스는 이 효과를 위해 바이올린의 가장 높은 현을 반음 낮추는 스코르다투라를 사용했고, 그 결과 완전한 안정 대신 날카롭고 비틀린 울림이 생깁니다. 첫 등장에서 들리는 증4도, 곧 이른바 악마의 음정으로 불리던 관계는 중세 이후 서양음악에서 오랫동안 불안과 긴장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죽음의 무도가 유명한 까닭은 단순히 표제가 자극적이어서가 아니라, 이런 상징적 음정을 실제 관현악 효과로 치환하는 솜씨가 대단히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리듬과 형식의 측면에서도 이 작품은 흥미롭습니다. 제목에 무도라는 말이 들어가듯, 곡 전체에는 왈츠를 연상시키는 삼박자의 운동감이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춤은 사교장의 우아한 회전과는 거리가 멉니다. 강조점이 살짝 비껴 나가고, 선율선이 반쯤 비웃듯 흔들리며, 반주 역시 안정감을 주기보다 땅이 살짝 기우는 듯한 감각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청중은 분명 춤곡의 흐름을 듣고 있으면서도, 그 춤이 생기 있는 축제가 아니라 해골들의 익살스럽고 섬뜩한 행진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게 됩니다. 낭만주의 시대의 표제음악이 어떻게 서사를 리듬의 성격으로 번역하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관현악법을 따라가면 생상스의 재치가 더욱 또렷해집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실로폰은 뼈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연상시키며, 훗날 동물의 사육제의 화석에서도 비슷한 아이디어로 다시 쓰이게 됩니다. 목관과 현악은 때로 장난스럽고 때로 냉랭한 표정을 교차시키며, 익숙한 선율 조각들이 나타났다 사라질 때마다 장면은 희극과 공포의 경계 위를 오갑니다. 특히 중간부에서 들리는 디에스 이레 선율의 인용은 죽음의 이미지를 음악사적 관습과 연결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를 지나치게 무겁게만 처리하지 않고, 오히려 약간 비튼 밝기 속에 놓아두는 점이 생상스다운 세련됨입니다.


감상할 때에는 이 곡을 그저 무서운 음악으로만 듣지 않으시면 더 재미있습니다. 진짜 핵심은 공포 자체보다도, 죽음이라는 소재를 얼마나 영리하고 우아하게 무도회의 형식 안으로 끌어들였는가에 있습니다. 연주가 지나치게 거칠면 곡의 유머가 사라지고, 반대로 지나치게 가볍기만 하면 이 작품 특유의 불길한 긴장이 약해집니다. 좋은 해석에서는 바이올린의 비틀린 미소, 실로폰의 해골 같은 재치, 새벽을 알리는 오보에의 짧은 울림이 모두 살아나며, 마침내 밤의 환영이 흩어지는 순간까지 한 편의 짧은 환상극처럼 이어집니다.


맺으며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는 제목의 자극성만으로 기억하기에는 훨씬 정교한 작품입니다. 시적 전설, 상징적인 음정, 교향시의 서사, 그리고 프랑스 관현악 특유의 세련된 음색이 짧은 시간 안에 치밀하게 엮여 있기 때문입니다. 익숙한 명곡이라도 무엇을 어떻게 들을지 알고 나면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곡이 바로 그런 예에 가깝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이 기묘한 춤의 리듬을 따라가시면서, 무섭고 우아한 분위기가 한 곡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지 천천히 느껴 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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