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 대한 첫 기억부터 시작해보지
드라마에 대한 첫기억
어릴 때, 엄마가 들려줬던 일화가 하나 있다. 내가 네 살, 다섯살 하던 즈음 <여인천하> 라는 드라마가 한창 유행했었다. 사실 여인천하라는 드라마가 거의 평정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장희빈의 “뭬야?” 라는 대사가 엄청 유행을 했었다. 그런데 항상 장희빈씨 옆에는 같이 악한(?) 일을 도모하는 상궁이 하는 대사도 항상 포함이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마마”
그때 장희빈이 한 대사가 뭐 대충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저주인형 찍어버려라 이런 뉘앙스의 멘트를 했었다. 어린 시절, 저주 인형이 무엇인지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그 상궁과 장희빈이 하는 일이 나쁜일이라는 것만은 알았다. 드라마가 끝나고 내가 제일 많이 하는 일은 그 뭬야를 흉내내서 엄마를 웃기는 일이었다. 엄마가 하루는 똑같이 그 상궁을 따라하며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물었다.
당시 4살이던 나는 “그럼.. 포크로 찍어버려라!” 라는 다소 어린아이스러운 답변을 내놓았고 엄마는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을 찍는 건 포크나 할 수 있는 일인줄 알았나보다 ^^) 이게 내가 드라마에 대한 첫번째 기억이다.
금요일이 싫어요
어린 시절 엄마는 투니버스 같은 어린이 프로그램 보다는 책을 보아야한다는 철저한 교육방식에 따라 나는 어린시절 애니메이션을 딱히 보고 자란 기억이 없다. 남들이 흔히보는 이누야샤나 짱구 같은 류의 애니메이션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TV에 욕망이 없는 어린아이가 없듯이 내가 눈을 돌린건 지상파의 많은 ‘드라마’였다. 특히 밤 10시 넘어서 하는 드라마는 사극도 많고 그래서 엄마가 역사공부라며 보게 해준 덕분에 10시-11시 황금시간대 드라마는 모조리 봤던 기억이 있다. 또한 1월생이라서 원래 학교에 빨리 가야했으나 갑자기 학교를 돌연 빨리 가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덕에 7살짜리 어린 소녀는 학교도 안 가니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매일 드라마를 봤다. 월화 드라마, 수목드라마, 토일 드라마. 남들은 금요일이 제일 좋다던데 어째서 금요일이 제일 슬픈 날이었다. 금요일은 대부분 예능을 했고, 드라마는 없었으니까.
드라마로 장래희망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드라마를 보고,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특히 드라마 대장금을 보던 시절에는 내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침술을 놓는 대장금 보면서 의사가 되볼까도 생각했다. 사실 드라마는 내게 꿈을 상당히 이랬다 저랬다 하게 했다. 하얀 거탑이 나오면 의사를, 동안미녀라는 드라마가 나올때는 MD라는 직업을 꿈꾼적도 있고, 공부의 신 드라마를 볼땐 선생님도 되고 싶었다. 물론 드라마로 생겨난 꿈의 약빨은 언제나 드라마가 끝날 때 까지였지만.. ^^
중학교때는 아침드라마를 보다가 지각하기 일쑤였고(매일 1분만..1분만.. 하다가 지각행), 덕분에 8시 20분까지 등교였던 나는 항상 8시 19분 30초에 도착한다고 해서 19분 30초가 별명이었다. 나는 정말로 드라마를 사랑했다. 장르는 사실 가리지 않았다. 막장이어도 다음 내용이 궁금했고(얼척이 없어서), 사극이면 사극 나름대로 좋았고, 현대극은 현대극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드라마덕후가 드라마를 끊었다
그러던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모든 미디어를 끊고 말겠다고. 공부를 위해서.
자진해서 핸드폰을 2G로 바꾸었고, 그 좋다던 드라마를 포기했다.
일주일을 꼬박 드라마로 채웠던 지난 날을 청산하고, 온전히 공부에 집중하기로 했다. 성적을 올리기 위한 발악이었다.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난 성적이 오르긴 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1학년때는 야자도 안하고 집에 와서 드라마를 보던 내가 12시까지 학교에 남아 심야자율학습을 했다. 처음으로 수학에서 모의고사도 1등급도 맞아봤다. 4점 짜리 문제를 그렇게 풀어대던 결과였다.(나는 다른 과목보다 특히 수학이 내 아킬레스건이었다. 항상 3등급..) 내 모의고사 성적이 수직 상승하던 시절이라 다른 반 선생님이 찾아와서 물어볼 정도였다. 공부 인생에서 최선을 다하던 시점이었다.
드라마가 없으니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
그러다가 고 2말이 되었다. 그런데 덜커덕 문제가 생겨버렸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살았는데 장래희망과 희망학과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사실 그동안 고 1, 2 때는 워낙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반에서 1-2등만 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모르는 개념이나 이런걸 잘 알려줘서 마냥 교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워낙 선생님들을 좀 좋아하고 따르는 편이라 교사가 되면 좋을 법도 같았다. 근데 마지막에 3학년이 되기 직전 덜컥, 왠지 교사를 한다면 평생 한 과목을 가르쳐야하고 그리고 1년마다 가르치는 아이들이 바뀌고, 늘 1교시에서 7교시에 끝나고 야자감독을 하는 고등학교 선생님의 삶으로 평생 살 자신이 없어졌다. 게다가 나에게는 교사에 필요한 사명감이라는게 딱히 없었다. 선생님은 단순히 잘 가르치고, 말을 잘한다고 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나는 말 안듣는 애들 조차도 참을성과 끈기를 가지고 가르칠 자신이 없었다. 선생님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루 종일 생각했다. 나는 뭘 잘하지. 뭘 좋아하지. 좋아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지난 고1, 고2 생활동안 하루도 열심히 살지 않은 날 없이 열심히 살았는데 돌아보고 나니 내가 갈 학과가 없는 것 같았다. 슬럼프가 깊게 찾아왔다. 무엇을 해도 늘 재미있게 열심히 해오던 내가, 평생 재밌게 할 일을 찾지 못했다니. 절망적이었다. 친한 친구들은 나에게 ‘아무거나’ 해도 잘할거라고 했고 나의 높은 성적을 부러워했지만, 나는 아무거나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첫 고3이 지나는 겨울방학동안 꿈을 찾지 못해 헤매는 하이에나가 같이 굴다가 고3이 되는 첫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