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러시아의 한 가정에 살고 있는 알로샤. 알로샤의 부모는 이혼 위기다. 각자 연인도 있는 그들은 당장 갈라서도 당연하다. 집은 내놓은 지 오래고, 그 사이에서 알로샤는 부모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한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알로샤는 매일 밤 소리 죽여 눈물을 흘린다. 그러던 어느 날, 알로샤는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날 서로의 연인과 밤을 보내다 뒤늦게 집에 온 알로샤의 부모는 알로샤의 실종을 겪는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로샤의 아버지 '보리스', 어머니 '제냐'는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던 부모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기대했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인물들이었다. 아이가 실종되었음에도 이렇게 건조할 수 있다니. 추운 겨울인 영화의 배경처럼 차가울 지경이다. 이는 감정을 절제하는 것을 떠나 그들 사이에 '사랑'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 사랑했지만 지금은 사랑하지 않으며, 동시에 과거 사랑의 증거인 알로샤 역시 부정한다. 찾는 노력을 기울이지만 절박함보다는 해야 하니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떠나간 알로샤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연인과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또다시 건조해진 연인과의 사이. 그렇다. 그들에게는 사랑이 없다.
영화 전반에 '날 사랑해?'라는 물음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각자의 연인들과 시간을 보낼 때, 그리고 제냐와 보리스가 크게 다툴 때도 마찬가지다. 직접적인 질문이라기보다 '사랑'이라는 가치에 대해 미친 듯이 싸우며, 불안해하고,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꽤나 근원적인 '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이 없어졌을 때의 모습이 얼마나 차가울 수 있는지도 말이다. 극 중 '보리스'가 이혼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이유는 회사의 규칙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가정을 이뤄야 한다는 회사의 규칙, 그 규칙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 '사랑'이었던 셈이다. 또한 '제냐'가 '보리스'와 결심한 이유는 '알로샤'를 임신했기 때문도 있었지만 자신은 구속하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함도 있었다. 그렇다. '제냐'에게도 '사랑'은 수단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의 어떠한 해결책으로 사용되었고, 수단으로 사용된 사랑은 끝내 새드엔딩을 가져왔다. '보리스'와 '제냐', 그리고 '알로샤'의 이야기는 참 집요할 정도로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한 가정의 차갑고 서글픈 가족사처럼 보인다. 그 안엔 좀 더 큰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혼 위기의 가정과 실종된 아이에 비유된, 차갑고도 차가운 국제 정세 이야기 말이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이혼 가정의 이야기만 보여줬다면 내게 좋은 영화이기보다 그저 단순하고 노골적인 영화라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중간중간 삽입되는 우크라이나 내전에 관련한 뉴스들의 내용, 그리고 배우들의 행동들이 묘하게 겹쳐지며 본 영화가 단순한 영화가 아님에 안도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정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영화를 보았다면 더 깊게 이해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기도 하다. 부모를 맡은 캐릭터들이 철저히 '사랑이 없어짐'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지금 단순히 사람이 아닌 국가를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이 없어진 세상'은 차가운 겨울이 길어지는 세상이 된다. '보리스'와 '제냐'가 새로 만난 연인들과의 관계 역시 무너진 것은 이미 그들에게 '사랑'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그들이 잃어버린 '알로샤'로 대변되는 존재들, 즉 '국민들'을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없이 서로의 필요로 함으로 인해 만나고, 충족되고 나면 다시 차가워지는, 사랑이 사라진 관계는 옳은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갈 수 있나. 다시금 생각하는 것이지만 피해자는 항상 약자가 된다. 매일 밤, 소리 죽여 눈물을 흘리는 알로샤의 눈물을 보라. 과연, '보리스'와 '제냐'는 무엇을 놓쳤는지 알아챘을까.
이렇게 한 개인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 나라의 국가 정세를 다룬 영화를 떠올리면 영화 <한밤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소설책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한 개인의 삶을 인도의 역사와 쭉 이어서 선보이지만 살짝 가까이 가서 보면 한 개인의 삶을 통해, 인도라는 나라의 탄생과정을 선보인다. 그리고 그 인물의 삶을 통해 큰 메시지가 전달된다. 이야기의 주인공 '살람'은 인도 독립의 날에 탄생한 1001명의 아이들(이 아이들 모두 각자의 초능력이 있다.)을 소통하게 하고 모을 수 있는 초능력을 지녔다.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게 되는 바람에 거지의 아이였으나 부자의 아이로 컸고, 그 사실을 밝혀지며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진다. 그 이후, 내전 등의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1001명의 아이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붕괴된 현실 속에서 살람은 자신의 가족을 만들어가는데, 마지막 살람이 만들어낸 가족은 전혀 핏줄이 전혀 섞이지 않은 가족의 형태를 선보인다. 이는 인도와 파키스탄처럼 같은 민족이지만 종교로, 여러 가지 문제들로 찢겼음에도 살람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가족이 될 수 있음을 상징처럼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게 이런 힘이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물론 그런 살람의 삶은 판타지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