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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반대편의 너와 나
by PinkDolphin Dec 13. 2017

분홍 돌고래만큼 달콤한

아니, 너의 사랑은 분홍 돌고래보다 더 달콤했다. 

나는 그 튀어나온 돌멩이가 분홍 돌고래라고 굳게 믿었다. 그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생물학을 공부하는 그는 아름다운 해안이 유명한 브라질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가끔 철을 따라 이동하는 고래도 보러 간단다. 서울 토박이인 내가 그보다 바다 한복판에서 돌고래를 더 잘 알아볼 리 만무했다. 그래도 난 고집을 부렸다. 


"돌고래 맞다니까? It is THE pink dolphin!"


작은 통통배를 끌고 우리 둘을 바다 한복판에 데려와주신 선장 아저씨께서는 가만히 지평선을 쳐다보시다가 20여 분 후 뱃머리를 천천히 돌리셨다. 분홍색 물체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한 나는 애써 실망감을 감추며 그 바위 같았던 것이 사실은 돌고래였다며 계속해서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맞아, 그거 사실 핑크 돌고래였어. 네가 잘 찾은 덕분에 나도 봤어. I guess we are so lucky."


나도 안다. 거짓말이라는 걸. 그래도 그 거짓말은 분홍색보다 더 달콤한 사랑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어느 여름에 우린 한국도 브라질도 아닌 제 3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한 곳은 홍콩. 일주일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작은 홍콩 시내 탐험에 질려가던 우리는 Tai O 마을 부근에 서식한다는 분홍 돌고래를 보러 가기로 했다. 


홍콩의 작은 Tai O 마을은 핑크 돌고래를 구경하려는 관광객들로 생계를 유지한다.



환상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았던 분홍 돌고래가 공사가 한창인 홍콩 해안가에 살다니. 꽤나 어색하지만 신선한 조합이었다. 원래는 개체수가 50마리 정도였지만, 예민한 돌고래들은 이 해안 근처에서 마카오와 홍콩을 잇는 해상 다리 건설 공사가 시작되고 관광객들이 몰려오자 하나 둘 이사를 가고 총 5마리 일가족만 남았다고 한다. 


빠르게 구글링을 해보니, 평소 관광객들이 무리하게 보트를 타고 돌고래들에게 접근해서 모터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돌고래가 먹기도 해서 탈이 나기도 한단다. 우리가 보러 가면 돌고래들에게 몹쓸 짓 하는 것 같은데.... 가도 될까?


G는 우선 가보자고 했다. 수상 가옥도 있고 수산 시장도 있으니 분홍 돌고래가 아니어도 구경할 것은 많지 않겠어? 하며. 그래 가보자, 우리는 곧바로 Tai O 행 버스 편을 찾았다. 




마을은 생각보다 작았고, 시장 역시 작았다. 모든 것을 둘러보고 하릴없이 물가 주위를 서성거리던 우리 주위로 돌고래 투어를 싼 가격에 해준다는 호객 행위가 줄을 이었다. 그들이 가리키는 보트를 보니 거대한 모터가 돌고래들을 해칠 것만 같아 무서워 보였다. 호객꾼들을 지나쳐 마을 더 안쪽으로 들어오는데, 노부부 한 쌍이 낡은 보트 위에서 함께 생선을 손질하고 있었다.


그 일상적인 모습이 왜 그리도 평화로워 보였는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할머니께서 우리에게 웃으시며 분홍 돌고래 표지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셨다. 아니에요, 하고 거절을 하려는 찰나, 앞서 본 투어 보트에 비해 작고 소박한 보트에 눈길이 머물렀다. 


할머니는 물고기를 손질해 어시장에 파시고, 할아버지는 간혹 돌고래 투어 보트를 운전하시며 생계를 유지하시는 모양이었다. 허름해 보이는 보트와 조용한 선장님의 조합이라면, 나는 돌고래의 평화로운 일상을 방해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보트에 앉자 선장님은 나의 예상처럼 느릿느릿한 속도로 조용하게 마을을 지나 바다로 보트를 몰기 시작했다.


평화로웠던 홍콩의 작은 어촌마을, Tai O


 




결국 (바위를 돌고래로 착각한) 나를 애써 위로해주는 G와 선착장으로 되돌아오는 길, 실망감을 감출 길이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돌고래들이 이 드넓은 바다 한 곳에서 사람 눈을 피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나 보다고 생각하며 안심했다. 핑크 돌고래들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다시는 이런 투어의 관광객이 되어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선착장에 들어선 순간, 기다리시던 할머님께서 중국인 관광객 3명을 보트에 앉히시더니 선장님께 다시 출발하라는 손짓을 하셨다. 


"엇, 우리 아직 못 내렸는데......."


선장님께서는 그저 웃으시며 엄지 손가락을 올리시더니 유유히 바다로 조용히 보트를 운전하셨다. 그리하여 시작된 뜻밖의 두 번째 투어. 역시나 잔잔한 물결만을 보며 '돌고래들이 다들 다른 곳으로 이동했나 봐' 하며 G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득 중국인 관광객 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나 지평선을 가리켰다. "뭐지? 뭐가 보이는 건가?" 하며 고개를 돌렸더니




난 아직도 생생한 분홍색을 띈 돌고래의 미소를 기억한다.


거기 있었다. 분홍 돌고래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 위에서 저 멀리 점프를 하며 헤엄치고 있었다. 

평소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비롯한 자연 다큐멘터리를 (입 벌리며 시청하는) 좋아하는 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처음이었다. 일순간 그 분홍 돌고래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많은 관광객들이 분홍 돌고래를 보러 오다가 허탕을 친다는데 우리는 운이 억세게 좋은 모양이었다.  


다시 잔잔해진 물결. 한껏 부푼 마음으로 한동안 기다린 뒤 이제 돌아가려나 하는데, 우리의 중국인 관광객이 다시 벌떡 일어나 한 곳을 가리켰다. 이번엔 나도 자동반사적으로 그를 따라 일어나 그가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다섯 마리 돌고래가 보였다.


다섯 마리. 


선명한 분홍색을 띤 돌고래 세 마리, 회색과 분홍색이 얼룩덜룩 섞인 한 마리 그리고, 아직은 회색 빛을 띤 아기 돌고래 한 마리까지.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핑크 돌고래 두 마리가 저 멀리서 보트 쪽으로 헤엄쳐와 보트 바로 옆에서 점프를 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내가 얼마 전까지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분홍 돌고래가 있었다. 




손이 벌벌 떨린 채로 동영상을 촬영했었던 것 같다. 돌고래 가족을 만난 흥분 때문에 어떻게 촬영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동영상엔 돌고래들이 아름답게 헤엄치는 모습, 보트 가까이에 와서 점프를 하는 모습 모두가 담겼다. 마을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오는 길. 다시 한번 그 동영상을 돌려보고 또 돌려보고 있는데, 돌고래에만 정신이 팔렸던 내가 놓쳤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보트 밖으로 몸을 약간 기울이고 촬영을 하던 나를 붙잡은 그의 손과, 돌고래 대신 신난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는 그의 얼굴.


그냥, 왠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과 함께라면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나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 확신을 안겨준 분홍 돌고래 가족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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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세계 반대편의 너와 나
세계 반대편에서 온 너와 연애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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