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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Jun 08. 2023

일하듯 노는 사람들

자발적 초과근무자의 변명

  일을 하는 김에 돈을 버는 듯한 사람들이 있다. 마치 노는 것처럼 일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 말이다. 내가 다니는 에스테틱 샵의 원장님이 그런 사람이다. 이 에스테틱 샵에는 원장님과 두 명의 직원이 있다. 한 번은 어떤 손님이 급히 예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비는 시간이 생겼다. 베드에 누워 대기 중이던 나는 당연히 원장님이 쉬시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원장님은 ‘솔’ 톤의 목소리로 “내가 들어갈게!”라고 외쳤다. 그러고는 나에게 와서 근황 토크를 하며 얼굴 관리를 시작했다. 늘 그러하듯이 신나고 즐겁게!     


  그때 난 좀 놀랐다. 왜냐하면 내가 원장님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힘이 많이 요구되는 마사지는 직원에게 맡기고 나는 예약 관리 등 다른 부가적 일을 했을 것이다. 사실 예전부터 궁금했다. 늘 예약이 꽉 차 있는 이 에스테틱 샵 정도면 굳이 원장님이 직접 마사지까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편하게 운영 관리만 해도 충분할 텐데. 직원 월급 주는 돈이 아까워서 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원장님은 일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마사지 기술을 배우고, 스스로 연구하고, 손님과 대화를 하고, 직원과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인 것이다.     


  사실 일하듯 노는 사람이 여기 또 한 명 있다. 바로 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학교에서 쓸데없는 일 벌이기 선수다. 우리 반 학생들과 소통 일기 쓰기, 마니또, 학급 쿠폰 제작, 애들 생일 챙기기, 수박화채 파티, 학급 달력 만들기, 미니 올림픽, 북 콘서트 등 굳이 안 해도 되는 일로 자발적 초과근무를 한다. 언젠가 교원평가에 “선생님은 저희보다 하루에 12시간이 더 있는 사람 같아요.”라는 글귀가 적혀있던 기억이 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내 업무 효율은 100점 만점에 –100점이다. 이런 일을 한다고 월급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해야 할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멈출 수 없는 것은, 첫째로 재밌기 때문이고 둘째로 즐겁기 때문이고 셋째로 학생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기쁘기 때문이다.     


내 시간 도둑 1호 <우리 반 마니또 활동>


  경제적 자유가 대국민 목표가 된 세상에서 노동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게임에 비유하자면 아직 만렙이 되지 않은 사람처럼 인식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엔 분명 ‘부의 추월 차선’이 아닌 ‘서행 차선’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돌 옮기는 것을 놀이처럼 즐기는 시시포스도 있다. 나는 갑자기 경제적으로 그다지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노는 듯이 일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얻은 사람이 아닐까. 그들은 이미 경제적 자유가 줄 수 있는 행복감과 만족감을 충분히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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