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형적인 내향인. 내가 생각하는 나는 낯가림도 심하고 모르는 사람과는 어색해서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머릿속이 멍해지는 사람. 그렇지만 썰렁한 분위기는 또 참을 수 없어 발랄하게 띄우고 싶은 마음에 괜히 오버하면서 없는 얘기 있는 얘기 끌어다 쓰며 헛소리를 늘려가는 사람. 하얗게 변해버린 머릿속을 들키지 않으려다 보니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침이 목구멍에 묵직하게 걸려 꼴딱, 끈적하게 넘어간다. 상대도 알 거다. 저 여자 되게 애쓰고 있다는 것을. 근데 또 그런 모습을 남들이 눈치채게 하는 건 되게 싫다. 발랄하고 당당하고 싶은데 긴장해서 침이나 꼴깍꼴깍 삼키는 모습이라니.
그런데 나를 잘 아는 사람들도 여태껏 내가 당연히 외향인인줄 알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잘 웃고 명랑하고 얘기 잘해서 그런 줄 알았다고. 내향인으로 태어났으나 학교 다니고 회사 다니고 아이를 키우면서 사회적 외향인의 모습을 갖추어 간 나. 그렇게 '길러진' 외향인의 모습을 지인들은 외향적인 사람으로 느꼈으리라. 뭐 아주 착각한 것도 아니다. 사회화가 되었든 타고났든 외향적인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면 외향인인 것도 맞으니까. 하지만 신기한 건 MBTI에서 내향인의 비율이 80프로 가까이 나오는 내가 20프로의 그렇지 않은 모습으로 보였다는 건, 찐 내 모습인 80프로를 누르고 20프로의 모습을 끌어모아 살아갔다는 말이니 집에 돌아와선 얼마나 고단했을까. 마음이 찡하다. 굳이 나에게 외향적으로 살라한 사람도 없는데 난 왜 그렇게 살려 애를 썼던 것일까.
아예 찐 외향인으로 태어났다면 난 어떤 삶을 살았을까? 심심하거나 탈진한 에너지를 채우고 싶을 때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수다를 떨거나 직접 만나 맛있는 음식 먹고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신나는 시간을 보내려나? 영화나 재밌는 곳을 놀러 갈 때 친구 한 명과 오붓이 다녀오는 것보다는 여럿이 모여서 왁자지껄 떠들면서 즐기는 게 더 좋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먼저 필터링하거나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보다는 생각나는 대로 남 눈치 보지 않고 자신감 있게 이야기하려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오래 만난 친구처럼 금세 친밀감을 느끼고 친해질 수 있을까?
나는 위와 같은 성향이 아니라 그저 상상만으로도 어색해서 몸이 오그라든다. 내가 심심하다고 전화해서 친구의 시간을 빼앗기가 미안하고 친구와 단둘이 아니면 소수로 깊이 있게 감정을 나누는 것이 좋지, 여럿이 모이면 정신이 없어서 오늘 뭐 하고 온 건가 싶어 시간이 아까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하고픈 말을 거침없이 했을 때 실수하거나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할까 봐 그럴 수 없는 나를 돌아본다. 낯선 이와도 급속도로 친해지기엔 그 사람을 신뢰할 수가 없어, 찬찬히 알아볼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난 그냥 그런 성향의 사람.
내향인, 외향인 중 누가 더 낫다고 규정짓는 것 자체가 선입견일 거다. 각자의 개성대로, 태어난 대로 내 모습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내 본래의 진가를 보여주는 것임을 이해하고 깨달아야겠지. 내가 나다울 때 가장 빛난다는 것, 그동안 내게 축적된 경험들이 나를 만들어주었을 테니 나만 가지고 있는 매력의 조합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임을 기억하고 나를 사랑해 줄 것. 내향과 외향은 수많은 내 모습의 조각들 중 극히 일부임을 인지하고 큰 덩어리의 나를 조화롭게 가꾸는데 애쓸 것.
나는 어떤 유형으로 단정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값진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도 잊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본질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