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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볼 수 없게 된다면...

by 벨라Lee

평소에 강아지와 아기가 나오는 영상들을 인스타나 유튜브에서 자주 즐겨봐서 알고리즘으로 관련 영상들이 자주 뜬다. 해외든 국내든 악 소리 나게 귀여운 아기들의 실수와 귀여운 행동들에 엄마미소를 하염없이 짓게 되고, 강아지들의 엉뚱하고도 찡한 감동을 주는 행동들에서는 웃었다 눈물지었다 하며 또 몇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갈색 말티푸가 주인의 말을 기똥차게 알아듣고 수건 위에 자기 몸을 똘똘 말아 계란말이를 만들고, 집에 들어가라고 하면 알아서 케이지에 들어가 문까지 발로 닫고 엉덩이를 대라고 주인이 손바닥을 모아 보여주면 자동차가 주차구역에 후진하듯 엉덩이를 딱 맞게 주인의 손바닥에 갖다 대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발랄하고 귀여운 목소리에 환한 미소를 짓는 주인과 똑똑한 천재 강아지의 합이 너무 보기 좋아서 정식으로 유튜브 계정에 접속해 동영상과 쇼츠를 보았다. 채널 이름은 '원샷한솔'이었고 주인의 이름이 한솔, 강아지의 이름은 토리였다. 어 그런데 가만 보니 채널의 주인장 한솔님은 시각장애인이라고 했다. 일어나서 강아지 밥도 치우고 변도 치워주고 갖가지 훈련을 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집을 왔다 갔다 하고 시선도 강아지의 움직임에 맞게 향하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혹시 약하게는 보이는 시각장애인 아닌가? 보면서도 믿을 수 없음에 신기하면서도 이 채널을 더 집중해서 보게 된 이유가 되어 버렸다.


어느 날은 요새 가장 핫한 배우 박정민이 원샷한솔 채널에 출연해 암실에서 사발면을 먹고 차를 마시고 대화를 하는 영상을 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실내에서 눈을 뜨고 있으니 눈이 아프다는 박정민에게 한솔은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더 편할 거라는 조언을 해주었고 진짜 눈을 감으니 한결 편하다는 배우의 답이 돌아왔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는 박 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어려워했고 한솔이 전해주는 쟁반을 테이블에 올려놓는 단순한 일조차도 어려워서 쩔쩔맸다. 반면 한솔은 자긴 사실 앞이 다 보인다면서 먹은 테이블도 싹 치우고 뜨거운 차도 따라주면서 일반인보다 더 일반인 같이 행동했다. 바지런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재빠른 한솔을 보면서도 안 믿기고 저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반복된 연습과 훈련을 거쳤을까를 생각한 마음이 찡해오기도 했다. 앞이 보이는 사람들은 빛이 있어야 일반인일 수 있지만, 빛이 있으나 없으나 동일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어쩌면 우리가 '일반'이라고 쓰는 단어보다 더 비범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반쪽자리를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며 그동안 살아온 것은 아닐까...


이날 영상을 보고 많이 놀란 후유증일까, 밤에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이대로 눈을 뜨지 못하고 평생을 산다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방의 불도 꺼진 새까만 밤에 두 눈도 감아져 있는 상태이니 낮에 보았던 원샷한결의 상황과 진배 다를 바 없었다. 그 생각을 하고 30초도 안되어 가슴이 답답해지더니 숨이 안 쉬어지고 온몸이 몸살이 난 것처럼 욱신대기 시작했다. 아픈 통증이 아니라 쥐가 난 것처럼 어쩔 줄 모르겠는 한마디로 미치고 팔짝 뛰겠는 갑갑함에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떴다. 공포스러웠다. 눈을 뜰 수 있으니 다행이지 지금부터 당장 앞을 못 보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극심한 두려움에 죽을 것 같은 공포감에 눈물이 흘렀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두 눈으로 볼 수 없고 이 아름다운 사계절을 눈으로 더 이상 만날 수 없으며, 내가 읽고 싶은 종이책들 그리고 글쓰기를 지금처럼은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어 또 슬픔이 밀려왔다.


18세에 시력을 완전히 잃고 15년째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오고 있는 한솔이 그래서 대단한 사람이라는 거다. 그는 세바시에도 나와 정해진 시간 내에 자신의 이야기를 밝고 경쾌하고 그러면서도 아주 똑소리 나게 말했다. 그는 누구보다 맑고 건강하고 씩씩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천재견 토리라는 사랑스러운 강아지도 복으로 만나게 해주셨나 보다. 진심은 통하고 진실은 아무리 가리려 해도 드러나는 법. 그의 착한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알게 되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의 구독자도 더 많이 증가하고 그가 하는 강연, 매체 출연에도 좋은 효과를 줄줄이 내서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비록 내가 그를 위해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한솔과 토리를 진정으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계속 지켜보겠다는 약속은 하고 싶다. 꼭 오래오래 둘이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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