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친구랑 삼양라면에서 한 팝업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성수동에 다녀왔다. 삼양라면 1963이라고 우지파동 이후 36년 만에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우지로 면을 튀긴 라면이었다. 우지파동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8년간의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미지를 다시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일까, 삼양라면을 생각하면 좀 마음이 짠하고 애틋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사전 예약 200명은 5분 만에 모두 예약이 끝나서 우리는 현장예약을 했고, 오전 11시에 오픈이라 10시 40분에 좀 이르게 도착한 우리는 여유 있게 대기를 걸었지만, 대기번호는 280번대였다. 아니, 벌써 내 앞에 200명이나 넘게 기다리고 있다고?
바람이 쌩쌩 불어 손과 코가 시릴 정도로 꽤나 추운 날씨였지만 줄은 줄어들지 않고 우리의 대기번호도 줄어들 줄 몰랐다. 결국 3시간이 지나서야 텀블러에 담긴 라면 세 젓가락을 겨우 먹을 수 있었다는 눈물겨운 사연 등장!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마땅히 라면을 먹을 만한 곳이 없어 팝업 매장 건너편에 있는 대형 건물 1층 로비 앞의 벤치에 앉아 시린 손을 덜덜 떨며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호호 불어 먹었는데 세상에 이런 꿀맛이. 누가 보면 라면 처음 먹는 사람처럼 감탄하며 연신 맛있다, 너무 맛있다를 외쳤다. 캠핑장에 와서 먹는 라면 느낌도 나고, 매콤하면서도 진한 소고기 육수의 맛이 느껴지는 추억의 라면을 먹으니 이곳이 천국인가 싶었다. 맨날 먹는 라면이 뭐 그리도 맛있냐고 할 수 있지만, 밖에서 먹는 라면이어서 그랬는지, 날씨가 추운데 텅텅 비어있던 속을 뜨끈하게 데워주던 국물이 맛있어서 그랬는지, 여러 사람들에 둘러싸여 함께 먹으니 동지애가 느껴져 든든했던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내가 성수동에 캠핑을 나온 듯 들뜬 기분이 들어 정말 신기했다.
SNS에 라면 먹는 인증숏을 올리면 봉지라면을 하나 준다기에 냉큼 찍어 올렸더니 담당자가 어머 너무 잘 찍으셨다며 흐뭇한 표정으로 봉지라면을 건네주었다. '삼양 1963' 절대 잊지 못하리. 결국은 그날 저녁에 남편이랑 3봉을 또 끓여 먹고 잤다는 웃픈 이야기도 첨언하련다. 역시 맛있다며 남편도 따봉을!
꼬불꼬불한 면과 얼큰하게 빨간 국물이 이리도 조화롭게 맛있을 수가 있을까. 라면은 왜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걸까. 심심할 때, 배고플 때, 입맛이 없을 때, 요기하고 싶을 때 등등 아무 때나 쓰윽 꺼내서 먹어도 든든하고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고마운 라면.
혹시 라면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난 괜찮을까? 세상에 얼마나 맛있고 고급지고 식욕을 자극하게 끝내주는 음식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그 흔한 라면 하나 없어진다고 뭔 일 나겠어?
뭔 일 날 것 같다. 일단 국물파인 나는 특히나 이렇게 추운 계절에는 국물 없인 못 산다. 오장육부를 뜨끈하게 데워주는 국물이 없다면 겨울을 어찌 보내란 말인가. 생각만 해도 속이 부대끼고 얹히는 느낌이 든다. 뻘건 국물이 라면밖에 없냐고 하지만 뻐얼건 국물을 라면만큼 빨리, 그러면서도 그럴듯한 맛을 다른 음식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밥이 너무 지겨워서 물리고 물릴 때, 색다른 게 먹고 싶을 때 요 꼬불거리는 면이 은근 식욕을 자극한단 말이다. 후루룩 입 안으로 빨아들일 때 굴곡진 면발들이 흔들거리며 내 입술을 타닥 치면서 들어갈 때 그 탱글함이란 암만 글로 설명해도 모른다. 일명 면치기라고 하나, 그것도 쭉 뻗은 면보다 구불구불한 라면발이 생동감 있게 물결치며 차르르 올라가는 맛이 최고다. 이렇게 끝내주는 녀석을 3분이면 만날 수 있다니 시간적인 측면, 가성비 측면에서도 이길 자가 없을 듯하다.
라면 예찬론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라면이 없어지면 무척 울컥하고 우울해질게 분명할 걸 보면 꽤나 좋아하는 건 맞나 보다. 남편은 라면을 정말 자주 끓여 먹고 정말 좋아하는데, 우리 부부를 닮아 그런가 입이 짧은 딸아이도 라면을 끓여준다 하면 별소리 없이 매번 맛있게 잘 먹는다. 라면이 너무 좋다고 한 적은 없지만 간식으로 라면을 내갔을 때 먹는 성공률이 꽤나 높다. 이로서 우리 가족은 밥 없인 살아도 라면 없이는 못 사는 걸로.
라면의 종류가 다양하고 많아서 너무 행복하다. 이거 먹다 질리면 저거 먹음 되고, 이 회사 거 먹다 질리면 저 회사 거 먹으면 되고. 골라먹는 재미가 배스킨라빈스 써리원 보다도 다양하다니 이런 호사가 다 있을까.
라면 만드는 회사는 절대 망하지 말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길, 오늘 아침에도 라면으로 때운 '라면 러버'가 간절히 바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