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들다.
언젠가 한 직장 동료가,
“동료끼리는 밥도 같이 먹으면서 가족처럼 지내야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옆에 있던 다른 동료는 펄쩍 뛰며 핀잔을 주었다.
“뭔, 직장 동료가 무슨 가족이야! 그러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야!”
직장은 동아리 같은 친목 모임이 아니니까. 아무리 같이 일해도 가족이나 친구 같은 관계가 되긴 어렵다. 그나마 경쟁 관계가 아니라면 모를까, 동료는 잠재적인 라이벌이기도 하다.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들다.」
이 말은 너무나 익숙하다. 실제로 많은 직장인들이 업무 스트레스보다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토로하고 있다.
직장은 단순히 돈 벌며 일만 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이 모여 각자 처한 입장과 이해관계 속에서 부딪치는 복잡한 전쟁터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성격, 일하는 스타일, 심지어 입맛과 취향, 목표까지 제각각인데 그런 사람들이 한 조직의 발전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협동해야 하니 관계가 단순할 리가 없다. 게다가 회사는 그 속에서 성과로 줄을 세워 승진이라는 하나의 떡을 놓고 경쟁시키니, 동료와 협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쟁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사이가 되는 것.
이렇다 보니 뉴스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나 갑질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안타까운 사연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포털 사이트에 ‘직장 내 괴롭힘’이나 ‘갑질’이라고 검색해 보면 관련 기사와 커뮤니티 글이 쏟아지는 걸 보면, 이러한 문제는 비일비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사람은 자신과 타인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평가하는 존재다.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 1919~1989)의 사회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자기를 정의하기 위해 늘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견주어 본다고 한다. 직장에서는 이런 비교가 단순한 자존감 문제를 넘어 승진, 인사고과, 성과처럼 현실적인 이해관계와 직결되기 때문에 감정이 더욱 복잡해진다.
그렇다면 직장에서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를 무엇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1. 공정성: 똑같이 일했는데 왜 나만 억울할까?
팀워크도 물론 중요하지만, 성과를 평가할 때는 결국 개인의 능력과 실적을 따지게 된다. 함께 일하는 같은 팀 동료라도 평가 시즌만 되면 경쟁자가 되어 버린다. 왜냐하면 경쟁에서 이겨야 승진이라는 전리품을 거머쥘 수 있으니까. 이상적으로는 모든 직원이 공정하게 평가받고 노력에 따른 보상을 받아야겠지만, 현실은 종종 다르게 돌아간다.
예를 들어, 비슷한 능력을 갖춘 동료가 나보다 덜 노력했는데도 승진하거나 더 좋은 보상을 받을 때 보통 큰 분노를 느낀다. 내 노력과 성과를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동안 내가 열심히 한 건 왜 몰라주는 거야? 나를 무시하는 건가?" 하는 억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또한 함께 일하는 팀원끼리 업무량 분배가 불공평하면 갈등이 생긴다. 어떤 사람은 일이 몰려 밤늦게까지 야근하는데, 다른 사람은 늘 정시에 칼퇴근한다면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놀지?"라는 생각에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직장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화를 예를 들어보겠다.
A 직원은 평소 말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서 상사들과 동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런데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책상 위에 일을 산더미처럼 쌓아둔 채, 결국 다른 좋은 부서로 인사이동 가버렸다. 문제는 A가 떠난 자리에 남은, 처리되지 않은 업무였다. 결국 그 팀의 팀장은 일을 빨리 잘 처리하는 B 직원에게 A가 남긴 일까지 모두 떠안겨 버렸다. B는 이미 자신의 업무도 바빴지만, A가 싸질러놓고 간 업무까지 처리하느라 밤늦게까지 야근해야 했다.
둘 다 똑같은 월급을 받는데, A는 빈둥빈둥 놀면서도 평판이 좋다는 이유로 좋은 부서로 발령받았고, B는 성실하다는 이유로 남의 쓰레기까지 치우는 신세가 된 것이다. 생각할수록 B로서는 참 억울하고 분통 터질 노릇이다.
이렇듯 조직에서는 "역할과 기대의 불일치"도 갈등을 부르는 주요 원인이다. 회사는 특정 직원에게 “이런 역할을 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본인은 B처럼 그 역할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역할 기대치와 개인의 희망이 어긋나면 서로 불편해지고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처음에 불같이 치밀었던 분노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으면, 그 감정은 점차 내면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감정들은 꼬리를 물고 내려가다가, 결국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처음엔 불공정한 대우에 대한 분노였던 감정이 시간이 지나 열등감이라는 찝찝한 결과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은 결국 그 감정을 직장 동료를 향해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하게 될 것이다. 괴롭히거나 험담하는 등의 방법으로. 공정성이 깨진 환경에서는 시기와 질투가 자라나고, 이는 직장 내에서 인간관계를 망치는 큰 원인이 된다.
2. 침묵: 말 안 하는 게 상책
직장에서 눈치 하나 안 보고 할 말을 다 할 수 있다고? 요즘은 직장에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듯한 움직임들이 표면적으로는 보이는 듯하지만, 사실 꿈 같은 소리다. 이론상으로는 상사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말해도 불이익이 없어야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분위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소통이 막히니 직장 내 인간관계가 어려워지는 것도 당연하다.
회의 시간, 용기를 내 의견을 보탰다가 돌아온 건 싸늘한 반응이니까. 상사는 얼굴을 굳히고, 상사에게 충성하는 동료들은 곁눈질로 견제한다. 심지어 “너만 그런 거 아니야.” 같은 핀잔까지 듣고 나면, 누가 다음부터 또 입을 열겠는가?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모습을 지켜본 동료들까지 ‘괜히 나섰다 찍히면 안 되지’ 하고 숨죽이게 마련이다.
혹은 승진을 위해서 나대는 성격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결국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했다가 망신만 당하고 “문제나 일으키는 골칫덩이”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혹은 나대는 직원으로,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승진을 좌우하는 평가는 상사의 손에 달려 있다. 결국 직원들은 부당한 일을 당해도 자기 보호부터 하게 되고, 입을 닫은 채 눈치만 살피게 된다. 조직 전체에 퍼져가는 이런 ‘침묵의 전략’ 속에서 소통은 점점 사라져간다.
3. 정치질 : 정치도 능력
새 부서로 발령받은 첫날부터 믿기 힘든 일을 겪었다. 함께 일하게 된 동료가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알고도 내게 공유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보고서 작성을 끝내기도 전에 그가 상사에게 달려가 마치 자기 혼자 일을 다 한 양 보고를 해버렸다.
게다가 자기 실수를 슬그머니 내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급기야 다른 동료들에게 “저 사람은 일을 안 한다.”는 소문을 내서 나를 고립시키는 게 아닌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새 부서에서 나는 순식간에 ‘일 안 하는 직원’으로 찍혔고, 상사와 동료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을 리 없었다.
황당해서 그에게 도대체 왜 이러는지 물어봤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고치겠다고까지 했지만 소용없었다. 심지어 날 투명 인간 취급하는 그의 태도에 한동안 이유를 몰라 답답해했다. 그러다 얼마 후 다른 동료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왜 그러는지 명확히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동료는 나보다 나이는 한 살 많지만, 경력은 6년이나 늦었다. 직급은 같으니, 평가도 함께 받게 되는데, 자기보다 어린 선배인 내가 더 좋은 평가를 받아 본인이 승진을 못 하게 될까 봐 날 견제한 것이었다. 이유를 알고 나니 기가 막혔다. 이것이 소문으로만 듣던 바로 그 회사 정치였다.
회사 생활이라는 건 능력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가 더 인정받고 누가 더 좋은 기회를 잡느냐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열심히 일만 한다고 저절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상사와의 관계 관리, 인맥, 정치적 감각까지 갖춰야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는다.
또 일부 직원들은 아예 대놓고 상사에게 ‘과장된 충성심’을 보인다. 상사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골라 하며, 자기 평가에 방해될 것 같은 동료는 팀장에게 몰래 험담을 흘린다. 동료들과의 신뢰쯤은 안중에도 없다.
이쯤 되면 조선시대 사극 속 간신배가 떠오른다. 왕에게 아첨하며 “저들이 역모를 꾸몄사옵니다” 하고 경쟁자를 모함해 없애버리는 바로 그 모습이다. 현대의 회사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셈이고, 결국 팀워크는 산산조각 나고 만다.
결국 직장에서 인간관계를 힘들게 만드는 요인은 한둘이 아니다. 서로 협력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경쟁해야 하는 아이러니, 성과에 대한 높은 기대와 달리 공정하지 못한 평가, 입을 닫게 만드는 침묵의 문화,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암투까지. 이 모든 것들이 회사를 전쟁터로 만들고 인간관계를 팍팍하게 만드는 주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