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팬도 팬 맞....죠?
"내가 인턴이라니!" 설레었던 1월도 잠시. 어느덧 회사에 푹 빠져버린(?) 알파하의 인턴 마지막 달 이야기.
*이번 글은 핀휠 겨울인턴 알파하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의 생각에, 이번 글은 알파하의 MSG가 첨가되어 있어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대표님, 그것보다는 이 조건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음 전 이거 독점하는 게 좋다고 봐요.”
“흘러가는 대로 그냥 같이 흘러가면 괜찮지 않을까?”
“아니에요, 이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돼요.”
방금 이 글을 클릭한 사람들은 이게 대체 뭔 대화인가 싶을 것이다. 업무 대화인가? 대체 무슨 업무를 하는 거지?
땡, 다 틀렸다. 이 대화는 다름 아닌 보드 게임 ‘스플렌더’에 열중한 이들의 대화이다. 속았쥬?
요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주 업무가 게임 배우기로 바뀐 건지.. 올 때마다 새로운 게임을 하나씩 배워가는 것 같다. 클래시 로얄, 스플렌더, 보난자, 성지키기 등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추천해 주시는 게임마다 다 재미있어서 문제다. 아 이렇게 취미 개발까지도 적극 장려해 주는 회사, 흔치 않아요.
그렇게 어느덧 2월이 성큼 다가왔다.
젠장. 나는 그렇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포동포동하게 살 오른 알파하가 되었다.
이 사람들이 날 먹기 좋게 키우려는 걸까, 점심 외에도 계속 간식거리를 주신다. 자꾸 그렇게 맛있는 걸 들고 오면! … 또 먹을 수밖에 없잖아요, 호오 맛있당 냠.
아니 근데 블로그 글 업로드하고, 홍보 작업도 매주 열심히 하고 있긴 한데, 어째 일하는 것보다 받는 게 더 많은 것 같은데… 이거 괜찮나?
그리고 사수인 대드리님께서 계속 일 줄 때마다 괜찮냐고 물어보시면서 조심스럽게 주시는데, 감동적이었다. 그리 많지도 않은 일을 주는데 너무 많이 준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냐고 물어봐주시다니…! 그에 비해 교수님은… 맨날 본인 수업만 듣는다 생각하시고 감당 못할 과제만 주셨는데… 역시 암만 생각해도 가장 잔인한 직업은 교수가 아닐까 싶다.
근데 진짜 더 주셔도 되는데.. 저도 여기에서 더 잘할 자신 있어요! 사무실 구석에서 회의하고 계신 대표님과 대드리님의 뒷통수에 나름 은밀하게 눈빛을 발사했다.
그런데 내 눈빛을 알아차리신 것인지, 어느 날 대드리님께서 조심스럽게 제안하셨다.
“알파하님.. 제가 BFN 기자단 2기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준비하는 거 혹시 같이 할 생각 있으신…”
네. 할래요.
거의 대드리님께서 입을 열자마자 고민하지도 않고 바로 하겠다고 했다.
이건 기회야, 드디어 내 능력치를 보여줄 때가 왔어! 음하핫 열심히 해야지.
…철이 없었죠, 그때 좀 더 고민해봤어야 했는데.
알고리즘의 선택으로 한번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 할 수 있어도 못 하는 척해라. 일 열심히 잘하려고 자신의 능력치를 어필하지 마라, 자발적으로 야근하지 마라. 이 모든 것을 어긴…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BFN 기자단은 장애가 있든 없든 대학생들이 함께 활동하며 장애인과 관련한 기사를 써서 세상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는 장애, 비장애 통합 기자단이다. 이미 1기 때 선비님께서 기자단을 진행했던 경험이 있으신 만큼, 2기 때는 피드백을 반영하여 좀 더 탄탄하고 의미 있는 활동으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대드리님의 열정이 잘 느껴졌다. 아휴 뜨거워.
흥 나도 질 수 없지. 덩달아서 나도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커졌다. 기자단을 위해서 내가 도움이 될만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러자 문득 ‘기자단=대외활동’ 이게 딱 생각났다.
한창 직장에 찌들어가고 있거나 이미 절여진 으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지금 대외 활동을 하고 있는 나야말로 이 부분에서만큼은 가장 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아, 이거다. 지금이야말로 MZ 인턴의 힘을 보여줄 때가 됐다!
대드리님께 그동안 내가 중 고등학교 때 회장으로서 진행해 본 적도 있던 기사 동아리 경험, 다양한 대외 활동에 참여해 본 경험 그리고 대학생들이 가장 광기로 가득 차 있으니 주의해야 할 시기(=축제, 시험 기간) 등을 모두 말씀드렸더니 표정이 밝아지시는 게 느껴졌다.
”우와…알파하님 고마워요. 진짜 도움 될 것 같아요. 아 그리고 방금 저한테 말한 내용들 이거 회사 블로그에 글 올려보는 건 어때요?”
…어? 이게 아닌데. 얼떨결에 일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알파하님의 퀘스트가 추가되었습니다.] +1
퇴근하자마자 집에서 한창 겨울잠 자고 있었던 아이패드를 깨웠다. 먼지 쌓이기 직전의 플래너 양식을 찾아 6개월 간 기자단이 어느 시점에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생각나는 대로 쭉 써보며 정리해 봤다.
다음 날, 대드리님께 보여주면서 회의를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은 반응이어서 놀랐다. 회의가 끝난 뒤, 대드리님께서 처음 진행해 보는 거라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 주셔서 든든하다며 고맙다고 말해주셨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칭찬은 알파하를 춤추게 만든다. (이제 좀 그만 춰.)
회의하고 나니 기자단을 어떻게 준비하고 진행해야 할지 방향성은 잡혔는데, 문제는 할 일이 너무 많아졌다. 이런, 일거리를 이렇게까지 원한 건 아니었는데.
“그럼 알파하님, 일단 제가 공고문을 써볼 테니까 다음 주까지 포스터 제작하고 기자단 지원서 양식이랑 구글 폼 만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알파하님의 퀘스트가 추가되었습니다.] +2
잠만 대드리님, 공고문 내용 작성하시기 전에 공고 사이트 어디에 올려야 할지 그것부터 먼저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그렇네요 그럼 공고 사이트도…”
[알파하님의 퀘스트가 추가되었습니다.] +1
아, 그 말은 넣어둘걸. 쉽지 않네.
그렇게 나는 일주일 만에 포스터 제작, 기자단 지원서 양식 및 구글 폼 제작, 공고 사이트 링크 리스트화 + 등록 방식 정리까지 다 했다.
휴. 그래도 찾기 어려웠었던 사이트와 등록 방식 등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페이지를 보니 뿌듯했다. 대드리님도 무척 흡족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5군데 공고를 다 올리고 난 뒤에서야, 대드리님과 나는 간만에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 평화로운 날을 깨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때는.. 1월 28일 2시 55분. 한 사람이 작성한 댓글이었다.
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뭐지? 누가 작성하신 거지? 어떤 점 때문에 그러신 거지?
일단 드는 생각들은 넣어두고, 저 상태로 두기엔 댓글창에 덜렁.. 저 댓글 하나뿐이어서 보기에 퍽 난감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던 사이, ‘왜요??’ 라는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우선 담당자 계정으로 답글부터 달기로 했다. 우리, 제법 p.r.o.스럽지 않나요?
그러자 다음 날부터 활동 관련 질문에 대한 댓글들이 후루룩 달리기 시작했다.
내 추측으로는, 이 사이트 특성상 주로 공고만 올라와 있고, 댓글 달리는 일이 별로 없다. 특히 담당자가 댓글을 다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이 BFN 기자단 공고에서는 담당자 답글이 달린 것을 보고 기자단 지원을 고민하던 사람들이 댓글 달기 시작한 게 아닐까 싶다.
어? 얼떨결에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데에 성공한 것이었다. 아니 근데 저분은 어떤 점 때문에 달았던 거지.. 궁금하다. 피드백 주시면 반영해서 고칠 텐데.
(혹시 이 글 보시다가 난가..? 싶으면 연락 주세요 커몬. 해치지 않아요.)
아무튼 그렇게 긴장감을 주신 그분 덕에(?) 대드리님과 나는 인생에서 모든 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큰 교훈을 얻고, 더더욱 꼼꼼하게 준비하게 되었다.
휴, 해치웠나?
…어림도 없지. 지원 기간이 끝났으니 이젠 면접 준비다.
[알파하님의 퀘스트가 추가되었습니다.] +∞
아아.. 뉴진스가 부릅니다, OMG.
걱정과 다르게 감사하게도 지원서를 성실하게 작성해서 지원해 주신 분들이 많았다. (감사합니다❤️)
어떤 분은 센스 있게, 또 다른 분은 읽으면서 배울 점이 있기도 했다. 각자 작성해 주신 지원서가 개성 있으셔서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근데 문제는… 아놔 누가 지원서 질문 답변을 최소 300자 이상으로 하라고 했냐? …과거의 나 반성해라. 아니근데대드리님이먼저.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긴 했는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한창 바쁠 때였어서 그런지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대드리님은 어찌나 바쁘시던지.. 기자단 외에도 다른 일로 많이 정신 없어 보였다. 결심했다. 지원서들 싹 다 2페이지 안으로 요약해 보자!
[알파하님이 스스로 퀘스트를 생성하셨습니다.] +에휴.
후기: 죽는 줄 알았어요. 내 친구들이 왜 나를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의 줄임말)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결국엔 나는 해냈다..! 음하핫 쾌감 쩔어.
나의 초췌한 몰골과 함께 대드리님께 파일을 보여드리자, 찐으로 감동받은 표정으로 바라봐주셨다. (참고로 대드리님이 더 초췌하시긴 했..읍읍)
그런데 다음 월요일에 출근하고 확인해 보니 9명이 더 지원했다. 앗 이런 젠장 (대충 험한 말) 마감일 지나서 안심했었는데.
에라이 안 써! 몰라몰라.
어찌저찌해서 기자단 면접까지 진행했다 휴. 비록 면접 끝난 뒤 배웅하려고 나왔다가 한 지원자 앞에서 책상 모서리에 다리 부딪히는 똥꼬쇼를 펼치긴 했지만. …아무튼 무.사.히. 마쳤다. 아무렴 어떠한가, 결과가 좋으면 됐지..^^
[알파하님이 모든 퀘스트를 달성하셨습니다.]
“아 알파하님, 기자단 2기도 하세요”
…예?
[축하합니다 1단계를 달성하셨습니다! 알파하님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셨습니다.]
… 웃다 보니 웃을 때가 아니었다.
정신없이 기자단을 준비하고 나니 어라, 벌써 2월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내가 인턴 활동한 지 벌써 2개월이 지났다는 말이다.
말도 안 돼. 사실 더 믿을 수 없었던 것은 2개월 간의 인턴 활동이 끝났다는 것보다 이 분들과 알게 된 지 2개월밖에 안 됐다는 것이었다; 혹 2개월이 아니라 2년 아닌지..
생각해 보면 인턴 하기 전부터 이미 나는 핀휠과 지독하게 얽혀있었다. 휠즈 프로그램부터 여름휴가, 인턴 아니… BFN 기자단까지.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것이었다. 아, 파티 빼고.
출근 못 하는 일은 있어도 밥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는 대표님, 장난칠 때 아직 개화기를 맞지 못해서인지 타격감이 좋으셨던 김선비님, 인생을 너무 모범적으로 살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준 알바트로 쭌님, 꼼꼼한…줄 알았으나 의외로 손이 꽤 가고 기분이 투명하게 잘 보이는 내 사수 대드리님.
이 네 분 덕분에 내 첫 인턴 생활을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럼 전 이제 자유를 찾아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함다!
P.S. 알바트로 쭌님 그동안 제가 쌤 대신에 했던 업무 3월부터는 다시 하셔야 하는 거 알죠? 파이팅입니다^^
알파하
전) 핀휠 23'겨울방학 단기 인턴
현) 사회복지학과 재학 중
소리샘 복지관 등 어릴 때 복지관에 다녔던 기억이 나를 사회복지사의 길로 이끌었다. 지금까지 봉사활동 시간만 352시간. 주변에서는 복지사 하지 말라고 말리지만, 아마도 계속 이 길을 가겠지? 청각장애 중증 판정을 받았지만, 어릴 때 인공와우 수술을 한 덕분에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다. 배터리가 닳으면 듣지 못할 수 있어 10시간 넘게 바깥에 있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갈 수 있는 삶이라니 나쁘지 않다. + 핀휠에서 2년 같은 2개월 간 인턴으로 일한 후, 학교로 돌아가기 (더) 싫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