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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핀휠 Mar 30. 2023

취업할 때 성공경험이 필요한 이유

저도 취업할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장애인 일자리 연계 컨설턴트 김선비입니다. 

한동안 성공경험이라는 단어에 빠져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성공한 경험을 뜻하는 말이지만, 성공경험이 또 다른 성공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게 되기도 하거든요. 오늘은 취업에 왜 성공경험이 필요한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의사표현을 잘 못하던 진호씨


과거 장애인 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를 하며 연차가 쌓이자, 자립을 준비하는 남자 발달장애인 4명과 별도의 공간에서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똑똑하고 신체 기능이 좋았던 진호씨(가명). 진호씨는 우리 시설 내 손꼽히는 엘리트였고, 가장 자립의 가능성이 높았던 분이었다. 그런 진호씨에게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자기 의사표현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긴장을 심하게 해서 입술이 떨리고, 길게 표현하기보다 ‘네’, ‘아니요’ 또는 ‘몸짓’으로 말하던 진호씨였다. 그 누구보다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스스로 말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소심하게 뒤에서 기다렸다가 자기 차례가 오면 그제야 어울리는 분이었다.


발달장애인은 주로 일반적인 학습과 공부를 통해 성장을 하기보다,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 습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과정에서 자기표현 능력이나 사회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밖에 나가 마트에서 필요한 물건 하나 사 온다고 했을 때, 마트 직원에게 필요한 물건이 어디 있는지 묻고 시식코너에서 직원과 대화를 나누며 만두를 집어먹고 오는 것과 조용히 혼자서 물건을 집어 들고 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더군다나, 어렸을 때는 학생이고 어린 티가 나는 탓에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이나 관심이 많았지만, 성인이 된 지적장애인에게 누군가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은 아쉽게도 많지 않다.



진호씨를 위한 성공경험 프로젝트


진호씨가 점점 더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거나, 움츠러드는 모습이 잦아지자 결국 사례회의가 열렸고, 그런 진호씨에게 ‘성공경험 프로젝트’를 도입하기로 했다.

진호씨의 자기 의사 표현의 증진과 사회성 향상을 통한 자립지원이라는 거창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쉽게 말해 일상생활에서 진호씨가 성공할 수 있는 도전 과제들을 찾아 제공하고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었다.


먼저, 일주일에 하루 정도 시설에서 함께 생활하고 지내던 어린 동생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제안했고, 진호씨는 좋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간단한 식사 준비, 옷 정리와 같은 일을 했지만, 점차 탄력이 붙은 진호씨는 저녁 이후 자유 시간에 동생들을 하나 둘 불러다 앉혀 놓고 동화책을 보여줬다. 책을 읽어준다기보다는 보여주는 행위에 가까웠지만, 사람들을 불러 모아 무언가 자기만의 언어로 책을 표현한다는 것은 진호씨에게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것은 모든 사람이 진호씨가 하는 표현에 무조건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같은 복지사라도 각자 생각하는 개입의 방향이 다르고, 진호씨가 시설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진호씨가 말을 하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거나, 말 좀 하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악의는 없었겠지만 진호씨 같은 경우에는 조음기관의 문제라기보다 심리적인 문제로 인해 말을 못 하는 경우였기에, 진호씨가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 '말을 하라고 재촉하지 않기', '대답카드(AAC : 보완·대체의사소통기구)를 활용하는 식으로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면 꼭 ‘말해줘서 고맙다.’는 표현을 해주기' 등을 부탁드렸다.


개인을 바꾸는 것이 아닌, 개인이 처한 환경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고, 또, 진호씨의 말에 무조건적인 긍정적 반응을 보여야 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차 반경을 넓혀나갔다.


그러길 9개월. 진호씨에게 변화가 나타났다.

"너, 앉아" 정도로만 표현하던 진호씨가 "너 그러면 안돼. 이렇게 해야 돼"로 시설의 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그 빈도수 자체가 정말 많이 증가했다. 그리고 장애인보호작업장 훈련생으로 취업도 성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진호씨가 궁시렁거리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누가 밥그릇에 카레를 묻혀놓은 것을 발견하면 이전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씩씩거리며 담당 복지사에게 일러바쳤고, 세탁기 구석에 양말이 남겨져 있으면 ‘양말. 누구야’라고 말하며 주인을 찾아다녔다.

진호씨가 궁시렁 대는 것을 듣고 있자면, 평소 얼마나 많은 말을 참고 있었을까? 싶었다.



저 같은 사람도 취업할 수 있나요?


핀휠에서 많은 장애인 구직자분들과 취업을 위해 연락을 주고받다 보면, ‘솔직히, 저와 같은 장애인은 취업하기 어렵죠?’, ‘저는 어려울 것 같은데… 일할 수 있나요?’와 같은 말을 종종 듣는다.


작년 11월부터 취업을 함께 준비한 Y님은 첫 취업 컨설팅을 진행했을 때부터, 유독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몇 가지 질문을 주고받았고, 그 외에 Y님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쓸 내용이 없으며, 그마저도 힘들게 찾아 지원한 기업에 지원을 하면 탈락을 하거나 연락조차 받지 못해 힘들었다는 얘기를 하셨다.


Y님에게는 작은 성공경험이 필요했다.

기존의 이력서 양식을 살펴보면, 나조차도 쓸 말이 많이 없었다. 처음 취업을 준비하는 비장애인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지만, 살면서 사회경험을 쌓는 데에 각종 어려움과 제약이 많은 장애인 취준생들에게 기존에 존재하는 이력서로 본인을 충분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못하는 거 말고 잘하는 거에 집중하자


그래서 이력서 양식을 새롭게 만들었다.

어학능력에서 자기 자신이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 자격증이나 교육이력에서 실제 수행할 수 있는 업무역량에 대해서 표현할 수 있도록 작은 변화를 주었다.


사실, 기업에서 직원을 뽑을 때 이 지원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보고 채용을 하는 경우도 많겠지만, 실제 이 분이 우리 기업에서 일을 수행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새로운 이력서 양식으로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한 기업에서 면접을 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아 최종 합격하게 되어 2월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셨다. 심지어 이곳은 동시에 지원한 경쟁자가 50명을 훌쩍 넘길 정도로 치열한 경쟁률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많은 장애인 분들이 취업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면 주로 그 문제를 자기 자신이나, 장애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실패한 경험이 있고 정보가 제한적이라면 쉽게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혼자서 고민하고 자신을 자책하고 바꾸려고 하기보다, 작은 변화를 통해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표현하는 것이 힘들던 진호씨가 주변 사람들의 고맙다는 표현으로 말 많은 궁시렁쟁이가 된 것처럼,

이력서에 쓸 말이 없고 매번 탈락 소식조차 듣지 못해 힘들던 Y님이 쓸 말이 많아진 이력서로 취업을 한 것처럼.


아주 작은 변화를 통해 우리와 함께하는 장애인 분들이 취업 실패 경험을 취업 성공 경험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





김선비

현) 핀휠 장애인 일자리 연계 담당자 및 면접 동행 컨설턴트

전) 장애인 생활 시설, 발달장애인협회,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에서 일했던 사회복지사

약 5년 경력의 사회복지사로, 모든 경력은 장애인 관련 생활시설, 협회, 교육센터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나 사회복지사 안 해!를 외치고 마지막 직장을 뛰쳐나왔지만, 결국 장애인 대상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으로 돌아왔다. 이쯤 되면 장애인 복지는 나의 숙명인 것 같기도 하다. 시설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궁금해할지 잘 모르겠지만 마케터 D님의 강요(?)로 이야기를 찍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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