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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과 촌장 Oct 01. 2021

02 “엄마, 사실은 나도 갱년기야.”

1부 울컥하는 날들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 엄마


나와 내 동생이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우리 둘 다 별다른 문제없이 사회생활을 하고 남들한테 성격 이상하다는 소리 안 듣는 건, 다 엄마 덕분이라고. 아빠는 끊이지 않는 걱정과 불안 속에서 모든 것을 언짢고 못마땅해하며 늘 무엇에 화가 치밀어 있는 상태로 살아왔는데, 엄마는 그런 아빠 옆에서 유일하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혼자서 다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지만, 엄마는 아빠 말이 다 끝날 때까지 가만히 듣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빠가 아무리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도 엄마는 절대로 같이 소리 지르지 않았다. 엄마는 딱 필요한 말만 했고 늘 평온했다. 사춘기 시절 일기장 가득 ‘가출’이란 낱말을 휘갈기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엄마가 우리 엄마였기 때문이다. ‘보통이 아닌’ 아빠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고모들은 아빠 환갑 잔칫날, 우리 엄마를 보고 ‘생불’, 살아 있는 부처라고 해 줬다.


한 번도 엄마가 가진 정서적인 안정감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화를 낼 수 있다는 생각도, 엄마 안에 수많은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으리라는 생각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처음으로 ‘아, 엄마도 이렇게 흔들리는 사람이구나.’ 싶었던 건 십 년 전에 엄마가 갑상선암에 걸렸을 때다. 동네 병원에서 검사를 두 번 하고 나서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던 날 내가 따라갔었는데, 엄마가 ‘겁이 난다’고 했다. 엄마도 겁이 나는 게 있구나, 그때 처음 알았다.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대학병원 수술실로 들어갈 때 이동식 침대 위에서 엄마가 눈물 흘리는 걸 보고 나서야 엄마도 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거다. 엄마도 아플 수 있고 엄마도 겁나는 게 있고 엄마도 흔들린다는 걸.


그럼에도 그때는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던 때니까, 엄마도 잠시 흔들렸던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엄마가 늘 흔들려 왔고, 그저 참고 누그러뜨리고 억눌러 왔을 뿐이란 걸 작년에서야 알게 됐다.     



내가 감당할 수 없었던 엄마의 감정들


작년 여름 즈음이었던 것 같다. 퇴근길에 엄마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내가 니한테까지 이런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억울해서 안 되겠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통 전화를 해도 할 말만 하고 깔끔하게 끊는 엄마였는데, 그날 전화 통화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좀처럼 잘 흥분하지 않는 엄마인데, 한 시간 내내 흥분된 목소리로 아빠 이야기를 했다. 아빠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고, 증거가 있다고, 거의 확실하다고, 억울해서 못 살겠다고 했다. 나는 “설마!”라고 하면서 엄마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는데 엄마의 흥분된 목소리부터 점점 빨라지는 말 속도, 중간중간에 끼어 들어가는 욕설까지 모든 게 당황스러웠다. 엄마가 어떤 이유에선지 크게 의심하고 있고, 충격이 너무 크구나 싶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아빠를 향한 엄마의 의심이 점점 심해져 갔다. 엄마는 날마다 나와 동생에게 번갈아 가며 전화를 해서 하루에 한두 시간씩 소나기를 쏟아붓듯 어두운 이야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엄마가 토해내는 이야기들을 최대한 들어주면서 말도 안 되는 의심처럼 여겨지는 건 걷어 주려 했고 속상해하고 억울해하는 건 공감하려 애썼다. 그런데 엄마가 쏟아 내는 격렬한 의심과 노여움에 더해 욕설까지 고스란히 받아 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미칠 것 같았다. 한 번은 친구가 하는 미용실에서 엄마 전화를 받았는데, 내가 좀 있다가 전화를 하겠다고 하는데도 엄마는 전화를 끊지 않고 아빠 욕을 해댔고, 휴대폰에서 새어 나오는 격앙된 엄마 목소리를 안 들을 수가 없었던 친구가 무슨 일 있는 거냐고 깜짝 놀라 걱정스레 물었던 적도 있다.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아빠한테 전화해서 솔직히 물어보기도 했지만 해결될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날을 잡아서 부모님 집에 갔고 아빠와 엄마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는 엄마가 말도 안 되는 의심을 한다고 했고, 한 달 가까이 울분을 토해 냈던 엄마는 어쩐 일인지 알겠다고 아빠 말을 믿겠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엄마를 데리고 신경정신과에 가 봐야겠다고 했다. 엄마가 여전히 아빠를 믿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잠도 거의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있다고 했다.     



근데 엄마, 나도 사실은……


병원에 가고 난 후 곧바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엄마는 젊은 의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수소문을 해서 나이도 꽤 있고 평판도 좋은 의사가 있는 다른 병원을 알려 줬다. 엄마는 아빠와 함께 의사 상담을 받고 약도 처방받았다고 했다.


매일 걸려 오던 전화는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어들었다. 엄마의 의심도 그만큼 줄어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흔들리고 요동쳤던 엄마의 감정이 조금 잠잠해졌을 뿐.


병원 처방을 받고 온 그날도 엄마의 전화 통화는 길었다. “걱정 마라, 병원 가서 약 받아 왔으니까 잠도 잘 자고 하겠지. …… 엄마가 하도 속이 답답해서 니한테 전화해서 온갖 쓸데없는 얘기까지 다 했네. 안 그래도 니 서울 왔다 갔다 하느라 힘들고 신경 쓸 일 많은 거 아는데 괜히 니만 더 힘들게 해서 미안타.”

그제야 나도 본심이 터져 나왔다.


“그래, 엄마. 엄마가 오죽하면 그랬겠어. 이때까지 아빠랑 살면서 엄마가 너무 참고만 살아서 그게 터져 나온 거지. 의사 선생님 얘기 잘 듣고 약도 꼬박꼬박 먹고 그러면 괜찮아지겠지. 근데 엄마, 나도 갱년기가 와서 그런가, 하루에도 몇 번씩 속에서 열이 나고 갑자기 식은땀도 나고 그렇네. 잠도 잘 못 자고. 나도 병원 가 보려고.”     



여전히 이기적인 딸


‘엄마, 엄마가 아빠와 오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아빠한테 무시당하며 살아온 거, 버럭 거리는 아빠 눈치 보며 하루하루를 버틴 거, 화나고 짜증 나는 것도 다 억누르며 견딘 거 누구보다 잘 알아. 그 억울한 이야기를 딸 말고 누구한테 털어놓겠어. 결혼 안 한 둘째 딸보다는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아 본 내가 엄마 이야기를 더 이해할 거라 생각하고 나한테 더 많은 이야기를 한 것도 알고. 그런데 엄마, 엄마가 쏟아 내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받아 내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어. 욕을 하는 엄마가 너무 낯설었고, 엄마가 쏟아 내는 저주의 말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묵은 거였는지 가늠이 되질 않아서 무서웠어.'


엄마는 얼마나 오랫동안 참아 왔던 걸까, 엄마는 얼마나 깊이 묻어 두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묵은 감정들이 또다시 터져 나오면 그때 나는 또 어떡하지?


엄마에게 이토록 꽁꽁 묻어 둔 감정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지 못했고,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라는 책 제목을 내가 떠올리게 될 거라고도 생각지 못했다. 엄마 마음을 몰랐던 게 아니라 모른 척했던 거고, 엄마는 원래 평온한 사람이라고 내가 가면을 씌어 놓고 엄마의 감정을 외면했던 거다. 이기적인 딸.


‘엄마의 암 소식을 처음으로 영원 이모에게 전해 들으며 나는 분명히 내 이기심을 보았다. 암 걸린 엄마 걱정은 나중이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사나, 그리고 연하는 어쩌나. 나는 오직 내 걱정뿐이었다. 그러니까 장난희 딸 박완은 그러니까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속 대사처럼 참으로 염치없는 자식이다.     



엄마한테 석류즙을 받아먹는 딸


엄마는 내가 갱년기라는 말을 듣자마자 다시 예전의 엄마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니가 벌써 갱년기가 오면 어떡하노? 석류즙이나 갱년기 영양제 같은 거는 챙겨 먹고 있나? 니도 이제 나이가 있어서 약도 챙겨 먹고 해야 된다. 엄마 친구들이랑 같이 산 석류즙 두 박스 있는데 다음에 갈 때 한 박스 들고 갈게. 그거부터 먹어라, 응.”


나는 또 염치없이 그걸 받아먹었다. 엄마와 ‘갱년기’라는 공통분모가 생기다니.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엄마와 내가 같이, 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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