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우리 집의 장손이다.
게다가 독자다.
만약, 작은 아버지가 늦둥이로 태어나지 않으셨다면 무려 9대 독자다.(-,.-)v
우리 집 역시, 명절 때마다 전통으로 차례들을 지내왔었다.
지-내-왔-었-다!
난 아직도 명절 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들을 들먹이며,
부인들을 고생시키고 있는 남편들이나 어르신들을 보고 있으면 속으로 한숨이 쉬어진다.
에휴~
본인들의 부인이나 며느리들은 당연하더라도,
아마, 누나들, 여동생들, 딸들이 다른 집에서 똑같이 고생하는 건, 차마 보기가 싫겠지?
누누이 말하지만,
요즘, '내로남불'이 유행하고 있는 건 필히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우리 세대의 어머니들은 차례상 때문에 엄청난 고생들을 해왔다.
나 역시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세대다.
내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도 차례는 당연히 지내야 한다는 (남자) 어른들의 말에,
아직 어렸었지만 고생하는 엄마나 이모들, 작은어머니들이 너무 안쓰러워서 내가 나서서 도와주고는 했었다.
(남자) 어른들이 남자는 부엌에 출입하는 거 아니라고, 고추 떨어진다고 그랬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때가 8살 때였다.
그 어린 마음에도 명절 때마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는 것에 난 항상 반감을 갖고는 했다.
왜, 남자 어른들은 여성들이 차려놓은 술상에서 술만 먹고 있는 거지?
왜, TV나 보면서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고 있는 거지?
왜 하나도 안 도와줘?
왜, 여성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례상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는 거지?
왜, 당연하다는 듯이 하는 거야?
난, 내가 성인이 되어 '차례'를 주도한다고 해도, 저런 남자 어른들처럼 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들을 했을 때부터 어머니와 친척 어른들을 도와드렸다.
다른 친척집에 가서도 도와드렸다.
다른 사촌 형제들이, 남자 어른들과 똑같이 당연하다는 듯 도와드리지도 않고 놀고 있을 때도, 난 혼자서 도와드리곤 했다.
그런 연유로 난 지금도 차례상을 차리라고 하면,
장도 보고, 능숙하게 요리하는 법부터, 상차림 그리고 차례 순서까지 무리 없이 해낼 정도다.
어느 날, 결혼한 후 아내의 큰집에 명절 하루 전날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때마침 그곳에서 다음날 제사상에 놓을 송편을 빚고 있었다.
물론, 여성들만이 모여서 하고 있었고, 남자들은 당연히도 술판 중이었다.(-,.-)
그런데 더욱 웃긴 건 처남들도(부인의 사촌 남동생들) 단, 한 명도 도와주지 않고서 각자 자신들만의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난, 그러든 말든 그대로 송편 빚는 곳으로 가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서 바로 송편을 빚었다.
이미 송편을 빚고 있던 작은 어머니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난 신경 쓰지 않고, 그렇게 바로 송편을 하나 빚어냈다.
그러자,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거기에 계시던, 큰 어머니들과 작은 어머니들이 화들짝 놀라시며 주위가 시끄러워진 것이었다.
난 2개째를 빚다 말고, 그분들의 반응에 더 놀라는 중이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당연히 해오던 것이었기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앉아서 빚은 거였는데,
갑자기 크나큰 논란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었다.
아내가 나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아내 쪽 어르신들이 걱정을 했던 적이 있었다.
바로 내가,
장손에, 독자에, 차례까지 지낸다는 걸 아셨을 때였다.
며느리라고는 단, 한 명뿐이니 다들 조카가 걱정이 되셨던 것이다.
아내는 그런 어르신들에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말씀을 드렸었다고 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직접 보지 않는 한은 믿지를 않으시기에, 그날 내가 방문할 때까지도 믿지를 못하고 계셨던 것이다.
하지만 그날, 방문을 하고 나서,
아내의 큰 어머니 중 한 분이, 나중에 하시는 말씀을 나도 들었었다.
"OO야.(아내의 이름)"
"네가 걱정 안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아유~ 세상에~."
내가 송편을 빚고 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하시던 큰 어머니였으나,
이후로 송편을 다 빚고 나서,
또 산적꼬치를 만들고,
각종 전들을 다 부치고,
알아서 뒷정리까지 하는 모습을 보시고서,
그때서야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내 쪽의 어르신들은 차례에 대해서 더 이상 아내에게 그 어떠한 말씀도 묻지 않으셨다.
난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한 후, 우리 집안의 '차례'에 대해 '확' 바꿔버렸다.
내가 성인이 되었고, 내가 장손인데 누가 날 막을 것인가.(-,.-)+
먼저, 차례상을 간단하게 바꿔버렸다.
그리고,
같이 장을 보고,
함께 음식을 하고,
음식을 다 하고 나면, 함께 앉아서 술도 한잔하면서 음식을 함께 먹었다.
그리고,
다음날 차례를 지낼 때도 함께 차리고,
함께 정리를 하고,
함께 쉬었다.
난 '예의'와 '전통'이라는 이유로,
가족들을 희생시키거나 힘들게 하는 상황들을 그동안 많이 목격해왔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단지 '전통'이라는, '예의'라는 이유로 강압을 하고, 억압을 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그런 일들에 대해서 상당히 언짢게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나의 가정에서도, 일어나도록 내버려 둬야 할까?
난 나의 아이들이,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나중에 따라 하기라도 할까 봐 진작에 '확' 바꿔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보니 다시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생겼다.
어느 날 기사에서,
명절을 맞이해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의 예약이 이미 꽉 찼다는 기사를 보게 된 것이다.
그때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네...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어렸을 때부터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이런 식으로 주입되어온 세뇌와도 같은 '생활방식'들과 '생각'들이,
미처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난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걸 어렸을 때부터 당연시해왔기 때문에,
계속해서 차례를 지냄으로써, 그 전날과 당일날까지 벌써 이틀을 까먹은 상태로 여행을 가고는 했었다.
당연히 차례를 지낸 후, 덜 치운 상태로 갔었기 때문에 돌아와서는 다시 치우느라 피곤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차례를 지내고 가다 보니 장거리 여행은 꿈도 못 꿨었다.
수도권 지역에서만 깨작깨작~.
그랬던 내가, 그 기사를 보고서 이후에 어떤 행동을 했을까?
그 이후로 난,
차례를 그냥 없애버렸다.(-,.-)v
차례상을 없애고,
명절 당일날, 음식을 좀 더 푸짐하게 한 다음, 조상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렇게 지낸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가족들을 희생시켜가며, 차려져야 하는 '차례상'들은 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후손들을 희생시키면서 까지 차례상을 원하고,
그걸 안 해주면 후손들을 지켜주기는 커녕, 벌을 내리는 조상들이 진짜로 존재한다면,
차라리 그들은 조상이 아니고, 그저 '남'임을,
난, 전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 역시 죽게 된다면, 나의 밥상을 위해서 내 후손들이 희생하는 꼴은 난 절대로 보지 못할 테니까.
후손을 사랑하는 선조들이,
정말로 그런 것들을 원할까?
신을 믿는,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이미 차례들을 지내지 않고 있다.
그럼,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이미 천벌을 받고도 남을 정도의 일들을 저질렀을까?
내가 알기론 아니다.
내가 아는 지인들도 모두 다 겁나 잘 살고 있다.
게다가 명절 때마다 가족들이 아주 신이 났다.
가족들의 행복지수는 높아졌고, 스트레스 수치들은 낮아졌다.
가족 간에는 더 화목해지고, 사이들은 돈독해졌다.
'차례'를 지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안 좋아졌다고 반박할 수 있겠는가?
난 그렇게 생각한다.
'전통'이나, '예'라는 것들은 그저 예전 세대들의 생활과도 같은 것이었다.
세대가 바뀌었으면 당연히, 생활에도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물론 좋은 것들은 잊히지 않고 배우고, 계승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배우고 계승할 게 따로 있지,
명절 때마다 집안 여성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그딴 것들을 '예의', '전통'이랍시고,
배우고, 계승하고 있는가?
그것도 새로운 세대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들이?
남성들도 함께 장을 보고, 함께 음식을 만들고,
그러고서 함께 즐기고, 같이 식사를 하면서 같이 정리를 하도록 하자.
그게 아니라면,
'차례'는 당장 때려치워라.
이미 돌아가신, 집안 어르신들의 밥상이나 차리라고,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다들 그렇게 데리고 왔나?
나중에 딸들이 시댁에 가서 그러고 있으면,
기분이 참 상쾌하고 날아갈 정도로 차~암 좋기도 하겠다.
한 번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고 하는 얘기다.
당신을 선택한 부인 역시도,
다른 집의 귀한 딸내미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그녀는 당신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 더 행복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귀한 삶을, 나 같은 사람을 믿고서 우리 집으로 왔는데,
고작, 그런 취급밖에 못하는 당신의 '잘못'을 반성하라는 얘기다.
난, 내 딸들에게도 미리 얘기를 해놨다. 그리고 직접 아빠로서 몸소 보여줬다.
무엇이 가족을 위한 선택인지.
너희가 결혼할 그 시기에도 모두가 함께 하지도 않으면서,
차례만을 강조하는 집안이라면,
더 볼 것도 없으니, 시작도 하지 말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족들이 있고,
그 대상이 부인과 며느리라면, 두고 볼 것도 없다고 말이다.
우리 가족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명절만 다가오면, 기대해하고 설레어한다.
이번에는 또 어디로 여행을 가볼까, 또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하고 말이다.
우리는 이번에도 물론 여행을 떠난다. 당연히 부모님도 모시고.
이젠 부모님조차도 이번에는 어디를 갈 거냐고 며칠 전부터 물으신다.(-,.-);
'시대'와 '세대'에 따라 이렇게 변화하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전부 인, '가족들'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1년에 단 두 번만 있는 이 명절 기간 동안,
당신이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 보자.
특히, 아이들은 그런 엄마, 아빠의 모습을 평생 동안 기억할 것이고, 아마 성인이 되어서는 그대로 따라 할 것이다.
< 이건 100% 진실이다. >
잊지 말자.
'가족의 행복'은 엄마, 아빠가 된 바로 당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말이다.'
'전통'이라는 이유로,
단지, '예의'라는 이유로,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게 되었다면,
당신은 이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누군가 그 고통을 받더라도, 그것들을 계속해서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거부하고서 다른 방법들을 찾아볼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오로지, 당신의 '결정'에 달려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그리고,
당신의 '결정'에 의해서,
그 '결과' 또한, 달라진다는 사실도 말이다.
- 어느 작가의 글
< 소중한 가족들을 위해서 움직입시다♡ ^.~ >
[ 2편 ] 명절에 차례상을 거부하면서 벌어진 일 : https://brunch.co.kr/@pirates/165
[ 3편 ] '명절 차례상'을 없애버리고, 다른 걸 택한 이유 : https://brunch.co.kr/@pirates/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