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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Nov 15. 2022

사주 보러 갔다 들은 이야기

엊그제 길을 가다 ‘중고생 사주 오천 원’이라고 적힌 간판을 보고 홀린 듯 들어갔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갈까. 타로, 사주, 별자리 운세라면 사족을 못 쓴다. 앞 팀을 기다렸다가 저는 중고생 아닌데, 그래도 봐줘요?라고 슬쩍 운을 띄웠다.


생년월일이 어떻게 돼? 사주 선생님은 나의 사주 명식을 종이에 적으시곤 성격과 팔자를 중얼중얼 읊어나가셨다.

이 사주는 특히 교육, 가르치는 일이 잘 맞고…(중얼중얼) 그래서 지금 무슨 일 해요?

놀아요. 교육 쪽 일은 안 했고? 했는데 그만뒀어요. 그 일이 잘 맞는데… 했는데 힘들어서 그만뒀어요.

중고등학생은 힘들 수 있어. 아 제가 중고등학생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어요. 그래,, 중고등학생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그렇지..

대체 내 사주는 무슨 사주인 건지 어딜 가나 관이 있다는 둥 가르치는 일이 잘 맞는다는 둥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만두긴 했지만 첫 번째 직업이긴 했으니 사주에 나와있긴 한가보다.


사주 선생님은 나보고 자식운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내 인생이 서른아홉에 핀다고도 했다. 아, 근데 제가 몸이 안 좋아서요. 아이 가질 생각은 없거든요. 그래 몸이 안 좋았네. 서른넷부터 안 좋았어. 그 정도쯤이에요. (실제론 서른셋부터 안 좋아졌다.) 사주 선생님은 서른아홉이면 몸도 괜찮아진다고 했다. 자식운이 하나 있단다. 그러니까 몸이 좋아지면 아이를 가지라는 거구나.


‘근데요, 지금 제가 몸이 아프잖아요. 그리고 서른아홉에 괜찮아진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몇 년 동안 고생해서 몸 나아져 놓고 임신 출산하면서 몸 다시 망가지고 그러는 건 제가 너무 힘든 거 아니에요? 자식운이 있다는 거지 꼭 가져야 된다는 건 아니잖아요.’


이제까지 사주에서 들어온 소리가 망령처럼 떠돌아서 적잖게 마음고생을 했던 참이었다. 그런데 또 여기서 이런 소리를 듣다니. 서러움에 진심을 와다다다 쏟아냈다.


‘그럼 그럼, 힘들지. 몸이 우선이지.’


할머니 사주 선생님은 지금까지 봐온 다른 분들과는 다르게 나의 역성을 들어줬다. 여기서도 ‘서른아홉에 피는 인생, 그때부턴 임신과 육아에 전념하게.’라고 말했다면 너무 서러웠을 뻔했다.


사람들은 남의 인생에 너무 쉽게 말을 얹는다. 뭐 사주 가게는 내 인생에 말을 얹어달라고 가는 곳이긴 하지. 하지만 그 말은 안 듣고 싶었다. 자식운이야 나와있을 수도 있지, 근데 몸 아픈 것도 알 수 있을 거 아닌가. 그런데 오 년을 꼬박 아픈 사람에게 마흔에 그 자식운을 잡으라는 건 마땅치 않은 거 아닌가.


나오는 길에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근데 제가 여기도 그렇고 사주 보러 갈 때마다 자식운 있단 소리를 듣거든요. 근데 그게 운이 있다는 거지 안 낳는다고 안 좋고 낳는다고 좋고 그런 건 아닌 거 아니에요? 제가 몸 아픈데 그거 겨우 나아서 마흔에 애 낳고 고생하는 게 제 팔자엔 더 안 좋은 거 아니에요?’


‘그럼 그런 거 없어. 좋고 안 좋은 건 없고 그냥 운이 있다는 거지. 나이 들어서 하려면 힘들지. 건강이 제일 중요하지.’


흔치 않게 출산을 강권하지 않으시는 사주 선생님을 만난 후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그래도 한 명쯤은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다행이군.이라고 생각하며.


지금이 서른일곱, 몸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운동 선생님과 사주 선생님 모두) 때는 서른아홉 정도다. 난 그저 건강 하나만을 갖는데 몇 년을 들이는 것인가. 내가 나 자신만을 온전히 키우며 살기에도 내 능력이 모자라다. 아직 나에겐 내가 버겁다. 그리고 내가 나를 드디어 감당하게 됐을 때 다시 나를 감당할 수 없게 되는 선택을 하고 싶지 않다. 나로 살아보고 싶다.


사실은 지난달에 엄마가 우리 집에 올라왔을 때도 철학관에 갔다 온 얘기를 하며 나한테 자식운이 있다는 말을 또 하셨었다. 아니, 엄만 내가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나이 마흔에 애를 낳아서 키웠으면 좋겠어? 엄마 내가 첫 임신 때 얼마나 아팠는지 옆에서 안 봐서 모른다니까? 몇 마디를 남기곤 엄마와 대화를 차단했다. 엄마는 내가 몸이 나아질수록 더 미련을 못 놓으실 것 같다.


이마가 참 예쁘네. 이마가 이렇게 동그랗고 튀어나온 사람들은 고집이 세고 똑똑해. 자기 일을 하면 좋아.

작가는 어때요? 작가도 괜찮지. 자기 일을 하면 좋지. 상상력이 풍부하고 자기 능력이 충분해. 프리랜서도 좋고.

교육 사업도 좋고.


아. 마지막까지 그놈의 교육. 저 교육은 이제 그만할 건데요.

서른아홉이 되면 완전히 건강해져서 내가 가고 싶은 곳도 맘껏 가고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하면서 원 없이 살고 싶다. 그저 나로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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