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도 진실할 수 있을까 <페니키안 스킴>

by 민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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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 페스트 호텔>(2014)의 주인공 구스타브

웨스 샌더슨의 <그랜드 부다 페스트 호텔>(2014)를 보면 그의 독특한 스타일만큼이나 기억에 오래 남는 부분이 있다. 겉모습은 화려한 호텔지배인이지만 사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빈털터리 구스타브가 마담 D의 유산을 물려받고 '그녀와 진정한 우정을 나누었다'라고 하는 장면.


수십 살 연상의 할머니와 연인의 정을 통했다고 하는 그의 말을 100% 순수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마담 D는 그에게 '사과가 든 소년'이라는 값비싼 예술작품을 유산으로 남겼고, 구스타브의 행동이 거짓이든 사실이든 죽는 순간까지 마담 D를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했다는 걸 증명하게 된다. 비록 콩고물을 얻어먹겠다는 불손한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그런 일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는가. 냉혈한 아들이 파견한 킬러를 피해 신입 로비 보이 제로와 의도치 않은 모험을 떠나게 된 구스타브는, 그 자신의 상냥함이 그저 계산적 이익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제로를 통해 또다시 증명하게 된다.


'속물이라도 누구나 할 수 없는 속물이 있고, 심지어 인간적인 속물이 존재한다'라는 표제는 웨스 샌더슨의 신작 <페니키안 스킴>(2025)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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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를 만들고 착취해서 거대한 인프라의 주인이 되겠다는 자자 코다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긁어모아 떼부자가 된 주인공 자자 코다는 영화의 시작부터 암살 위협을 받는다. 비행기의 옆구리가 가정교사와 함께 터져나가자 투덜대는 조종사를 사출장치로 내보낸 뒤 '어디에 불시착해야 좀 더 안전한가?'라고 되묻는 그에게 위기는 늘 있는 해프닝이고 별 일 아닌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도 도저히 안 되겠던지 수녀원에 간 딸을 불러 본격적인 후계자 수업을 시작하려는 그는, 신발 상자에 숨겨놓은 위대한 착취 계획 '페니키안 스킴'을 실행하기 위해 딸에게 모든 전말을 알려주고 가르쳐주기로 한다.


보통은 아버지가 부정한 방법을 쓰더라도 가족에게는 숨기거나 손대지 않게 하는 게 세상 이치 아니던가. 심지어 딸 리즐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코다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를 증오하기까지 하지만, 코다는 아랑곳 않고 딸에게 자신의 비즈니스를 있는 그대로 알려준다. 그리고 중요한 건, 코다가 자신이 받고 있는 증오를 거절하지도 않으며,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자 코다의 첫 번째 도박이 시작된다. 나를 증오하는 딸이 아버지를 골탕 먹이려 비즈니스의 비밀을 이용해 일을 망칠 수도 있는데도 무방비 상태로 모든 사실을 건네 보는 것. 극 중 코다가 리즐을 '테스트해보겠다'라고 하는 말의 진의가 여기에 있다.


이익을 위해선 인간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그의 신조를 두려워할지 모른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100% 확률로 장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증오를 가진 사람은 상대가 누구든지 부수려 드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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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가 곤충 공부를 계속하는 이유는 곤충에겐 표정이 없고 오직 행동만을 하기 때문이다


이후 딸 리즐, 새로운 가정교사와 함께 떠나는 긴박한 모험에서 코다는 인프라 사업의 중요 파트너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도박을 벌인다. 리랜드와 철도 인프라 문제로 싸울 때는 농구라곤 해본 적도 없는 왕자와 팀이 되어 미국인들과 농구로 한판 승부를 벌이자고 제안하고, 마르세유 밥과 협상할 때는 난데없이 쳐들어온 체게바라 팀의 총알을 대신 맞음으로써 생명의 은인이 되는 상황을 연출한다. 해상에서 협상할 때 만난 선장 마티와는 피를 나누면서 수류탄의 핀을 뽑는 도박을 하고, 댐 인프라로 협상할 때 만난 사촌 힐다에겐 모조품 반지를 들이밀며 청혼이라는 무리수를 둔다.


그런데 가만 보면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가. 코다의 도박은 모두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한다. 아니면 지나치게 솔직한 고백으로 파멸할 위험을 감수한다. 이익이 크면 자신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도 마다하지 않으며, 그 결과 코다의 협상은 언제나 살얼음판 같은 위기의 반복이면서 동시에 그 위기를 넘겼을 때 계약 이상의 '관계'라는 훨씬 더 강한 결과물을 낳게 한다.


자자 코다의 도박은 대개 그런 식이다. 음흉한 속내나 불리한 점을 정면 돌파하면서 그것을 숨기며 낭비하는 이익보다 정면 돌파로 얻는 더 큰 이익을 비즈니스로 연결해 왔고, 그걸 자신의 인생으로 만든 것이다. 딸 리즐도 처음에는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그가 사는 방식을 보며 최소한 문제를 회피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선 자신의 문제(심지어 아버지의 문제도)를 아버지에게 고해성사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는 동반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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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페니키안 스킴>의 오프닝 시퀀스 장면


'속물이라도 뭔가 다른 속물이 있다'라고 하는 선언은 <페니키안 스킴>의 스타일에서도 드러난다. 웨스 샌더슨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35mm 필름을 썼다. 길쭉한 시네마스코프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굳이 1.5:1 화면비의 과거 아날로그 모니터 같은 화면을 디지털 스크린에 걸어둔 그의 의중은 분명하다. 영화의 처음에서 끝까지 주연 '베니시오 델 토로가 모든 쇼트에 등장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대단히 선형적인 영화'라고 한 그의 말은 가식이라곤 1%도 없는 캐릭터를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의 천명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화면비가 줄어들면 인물이 영상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커지고 등장인물의 행동 하나하나가 크게 드러나게 된다(그래서 영화가 좀 낡아 보이는 경향도 있지만 웨스 샌더슨 감독은 오히려 그 점을 판타지로 이용한다). 다시 말해 이 같은 방식은 인물 중심의 연출이 될 수밖에 없고, 가뜩이나 한 캐릭터의 연속성이 강조되는 연출에 연대순으로 진행되는 선형 서사까지 겹치면 한 인간의 일대기를 넘어 고집스러울 정도로 일관된 한 인물의 성격을 반영하게 된다.


웨스 샌더슨의 독특한 스타일인 정적인 카메라 움직임과 수직 틸트와 팬은 이 작품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유달리 더 공들인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인물을 보다 더 2차원 평면에 펼쳐놓고 클로즈업을 조명할 땐 어중간한 30도 샷이나 15도 샷을 쓰지 않으면서 항상 정면, 90도의 측면만을 비춘다는 점이다.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감출 때 즉각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게 얼굴이다. 이런 클로즈업은 영화 속 등장인물이 뭔가를 표현하는데 딱 두 가지의 얼굴만 사용한다는 일종의 암시이기도 하다. 좋고 싫음에 대한 직설적 표현, 거짓과 진실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보이는 샷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복잡한 액자식 구성을 써왔던 그가 이야기가 시간연대순으로 직선 전개되는 선형 서사를 채택한 것은 적어도 등장인물이 자기 뜻을 밀어붙이는데 요란한 권모술수를 동원하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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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한 욕망을 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은 정정당당하기까지 한 자자 코다의 일대기를 보고 있으면 분명한 악당인데도 어쩐지 밉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속물이 속물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게 있다면, 그처럼 거짓으로 어두운 부분을 감추는 위선을 타파하는 것이 아닐까. 괴물 같은 삶의 레이스에서 생존의 도박을 펼쳤으나 자자 코다는 대가를 피하지도, 문제의식을 거절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항상 부귀를 쫓은 그였으나 최종장에서 마지막 협상을 벌일 때 코다는 누바를 통해 진짜 이기는 게 뭔지를 깨닫는다. '누가 지고 이기고가 궁금할 뿐'이라는 게임에서 코다는 전처럼 목숨을 걸진 않는다. 결국 협상 결렬로 사업이 망가져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코다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며, 전처럼 수류탄을 박스 째 들고 다녀야 하는 위험천만한 관계 맺음 역시 하지 않아도 된다.


그가 착취의 중심부에서 악랄한 시스템을 만들려는 악마의 길을 걸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본성까지도 회개를 모르는 추악함에 감춰져 있었다면 영화는 그저 세상을 향한 한 줄기 냉소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안다'는 것을 감추지 않는 그의 솔직함이 결국 그의 인생을 구원하고 절망뿐인 세계에 작게나마 희망의 힌트를 준다.


영화의 말미는 밀도 있게 진행된 앞선 장면들에 비해서는 다소 맥이 빠지고, 강대국의 자본이 제3세계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비판이 다소 뜬금없이 진행되는 경향도 있으나 반성하는 법 마저 잃어버린 요즘 사회엔 그래도 적절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속물 같은 인생, 악마 같은 시스템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린 나약한 인간일지라도 진실함, 그것의 가치를 잊지 않는다면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는 승부에서 승자가 될 수 있음을 웨스 샌더슨은 말한다.


속물일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면 적어도 무엇이 속물 같은 행위이고 그 대가가 어떻게 다가오는지 정도는 깨우쳐야 하지 않을까. 속물 같은 인생도 진실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부정조차도 깊숙히 인지할 수 있는 지극한 메타인지의 경지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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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진

-영화 <그랜드 부다 페스트 호텔>(2014) 스틸 컷

-영화 <페니키안 스킴>(2025)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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