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닙니다 (2) - 청년 문제 편
"도전 정신이 그렇게 좋은 거라면 젊은이고 나이 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다 가져야지 왜 청년들한테만 가지라고 하나요?"
(중략)"이름이 뭐랬지? 넌 우리 회사 오면 안 되겠다."
장강명, 『표백』중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데 어려움을 많이 느껴요. 입사 지원할 곳에 맞는 경험을 쌓고 이와 관련된 내 장점을 말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기회를 얻기가 힘든 것 같아요. 정규직을 구하지 못하면 계약직 일자리라도 찾게 되잖아요. 막상 그 경험을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계약직을 하게 되고, 기업에서 원하는 일관된 경력이 쌓이지 않는 것 같아요."
젊은 청년들이 기약 없는 레이스에 매달리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노동현실 탓이다. 2015년 한국의 청년 고용률은 42퍼센트에 불과했다. 게다가 2015년 취업에 성공한 이들 가운데 약 3분의 2가 비정규직이다.
KBS <명견만리> 제작팀, 『명견만리』중
공무원 학원에서 강의를 듣는 공시생들 *사진 : KBS '9시 뉴스' 중
모험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지도를 그려 제공하자는 게 나의 제안이다. 지금 한국의 독서 생태계나 노동시장은 너무 깜깜하다. '무슨 무슨 시험에 합격했다'는 간판들만 빛나는 어두운 거리 같다. 안내소에 있는 지도는 부정확하거나 누락된 정보가 많다. 얼마간은 그런 지도를 그리는 일 자체가 어려워서 그렇기도 하다. 부분적으로는 간판으로 득을 보는 이들이 정확한 지도 제작과 보급을 반대하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
장강명, 『합격, 당선, 계급』중
그렇다면 다른 좋은 일자리는 정녕 없는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용의 88%를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지만, 2020년 기준 대기업의 매출은 국내총생산의 84%에 육박한다. 10%만이 들어갈 수 있는 일자리에 재물의 85%가 있는 셈이다. 반면 90%의 사람들은 남은 15%를 나눠먹는다. 이런 형편에서는 무작정 중소기업을 닦달해 청년들에게 대기업 수준의 복지와 임금을 지급하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이때엔 대기업이 고용을 늘리거나 국가가 대기업들에게 거둬들인 세금을 다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마중물로 쓰는 수밖에 없는데, 사실 현실적인 문제와 이상적인 문제 모두 겹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지는 않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한 청년들. 왼쪽부터 이채원(29), 김찬우(26), 최유경(26) 씨
대한민국의 젊은 취업 준비생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참고서를 사서, 또는 인터넷 강의로, 또는 비싼 수강료를 내고 학원에 가서 그런 문제를 푸는 법을 배우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청년들이 새로운 알고리즘이나 특허를 궁리할 때 서울의 청년들은 머릿속으로 색종이를 접거나 돌리거나 오려내는 훈련을 한다.
장강명, 『합격, 당선, 계급』중
하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다고 해서 결국 그런 현실을 마주해 청년들이 안정을 택할 수밖에 없게끔 방치하는 것은 뭔가 잘못됐다. 정확히는 나는, 몇 안 되는 일자리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목을 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예 젊은이들이 보다 더 자신의 개성을 살려 일을 해도 생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야 한다 여긴다. 통일 한국에 전재산을 투자하겠다던 짐 로저스가 한국 청년들의 공무원 열풍을 보고 "대단히 충격적인 현상이며 활력을 잃고 몰락하는 사회의 전형"이라고 탄식한 것은 그냥 흘려듣기엔 너무도 뼈아픈 지적이다.
어차피 수십 년 뒤의 한국은 지금 젊은이들이 이끌어 가게 된다. 현재의 주역들은 모두 사라지거나 늙어 힘쓸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렇다면 장차 주역이 될 청년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를 지금만큼, 혹은 더 뛰어나게 가꾸게 하려면 보다 역동적인 일을 창조하고 배우게 해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가능성이 현실로 이뤄지는 사회가 기회와 투자를 불러들이는 희망의 땅이 됨은 누구나 다 아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지면에서는 당장의 취업 환경을 보고 있기는 하나, 궁극적으로는 젊은이들이 모여 무엇을 하든지 생업이 될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은 개척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제는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에 대해서 그것이 정녕 옳은지 근본부터 되물어볼 차례다.
여행하는 영혼들은 대체로 숨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물을 파는 영혼은 비교적 사회에서 환영받는다. (중략) 그들은 당신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채사장, 『열한 계단』중
6년 간 대형 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관둔 29세 이채원(가명) 씨는 일하느라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고 배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수술실 특수 파트를 전담하던 그녀는 비록 수입은 간호사로 근무하던 예전만 못하지만 새로 시작한 플로리스트 일에 만족하고 있으며, 자신이 새로 개척한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저는 6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더 이상 원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열정적이었죠. 사람들한테 인정도 받고 했지만 결혼하고 가정을 돌아보다 보니 번아웃이 왔어요. 나중에 남편의 격려를 받아 일을 관두고 새로운 걸 배웠는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내가 왜 계속 병원 일에 얽매여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결국 내가 쓰는 비용은 정해져 있고, 어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기왕이면 제가 좋아하는 일로 해보고 싶은 거죠. (수입이 없더라도 계속할 생각인지?) 저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 삶에 만족하고 있고 적어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것 같진 않아요."
안정적인 직장과 분명한 사회적 위치를 가졌지만 관두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 씨와 같은 사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취업과 생계유지만이 이 세상의 전부인 것 같이 언급되는 사회 속에서 이런 청년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청년들이 직업을 구할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게 돈과 안정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건이 불확실한데도 이럴진대, 뒷받침이 충분하다면 청년들은 굳이 어려운 채용 시장을 두드리지 않아도 자신만의 길을 갈고 닦을 수 있을 것이다.
한 취업준비생이 토익 단어장 옆에 캐릭터 스케치를 남겨놓았다.
나는 사람들이 모험을 하게 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믿을 수 있는 정보는 그중 하나다. 다른 두 가지는 충분한 보상과 실패했을 경우의 대비책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그 세 가지가 다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과 기업들은 모험을 극히 꺼린다. 그 결과 역동성이 점점 사라지고 우리 공동체가 계급사회 같은 모습으로 굳어지는 중이다.
장강명, 『합격, 당선, 계급』중
사실 청년들이 무작정 높은 연봉 혹은 안정된 직장을 원하는 게 아니다. 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시작하더라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단 잘 보이는 것에 매달리는 것이다.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생계를 위한 수단'이라고 대답했던 취업준비생 최 씨와 김 씨 역시 생활의 안정이 해결될 수 있다면 자신만의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평소 의학에 관심이 많다던 김 씨는 의사가 되고 싶지만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의학 지식으로 타인을 구조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즐겨본다는 최 씨는 생물 전문 다큐멘터리 PD가 되어보고 싶다고도 한다. 줄곧 어두운 안색으로 취업 이야기를 하던 그들의 눈도 꿈 이야기에서는 번뜩였다. 다만 그들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두려움, 실패해 생활의 안정을 잃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차마 내딛지 못하겠다고 끝내 말을 흐렸다.
지금 청년들에게는 직업상담사 차원을 넘어 보다 넓은 의미로 꿈을 현실로 이루는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청년 코치'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청년들이 이미 원하듯이,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우선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들을 동원해야 하는지 알려줄 상시적인 창구다. 이것은 좋은 이야기로 점철된 강연 같은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식당일을 배우려는 이에게 설거지하는 법부터 가르치는 것과도 같다. 이는 청년들의 재능을 발굴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자신과 잘 맞지 않는 꿈을 꾸는 청년들에겐 현실을 지각시키고 새로운 재능을 발굴케 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고 나서 이제 청년들이 자신의 도전에 의문을 품지 않도록 그들이 기회비용을 투자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연구성과나 활동업적에 따라 안정적인 소득이 발생하기 전까지 국가가 최소한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준채용' 방식의 청년 지원책은 무리하게 공무원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는 같은 소요 재원으로 더 많은 혜택을 나누면서 장기적으로는 국가에 역동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하나의 예시일 뿐이며, 이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 나은 해답이 있을 수 있기에 이 역시도 활발한 담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어쨌거나 분명한 점은 사회가 청년들이 자신의 가치를 밀어붙일 어떤 근거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