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Part 2. The Other One> 리뷰
모닥불을 피우며 전설적인 무술가 파이 메이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빌. 그리고 이를 경청하는 키도. *사진 : <킬 빌 - 1부>(Kill Bill: vol.1, 2003)
천진난만한 얼굴로 마주 앉은 남자의 옛날이야기를 경청하는 여자가 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을 여행하다 짐을 풀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한껏 즐기는 연인 같기도 하지만 사실 이들의 진짜 정체는 세계 최고의 암살단 수장과 엘리트 킬러다.
<킬 빌>의 주인공 베아트릭스 키도(우마 서먼)는 불현듯 암살단 일을 관두고 시골 마을에 내려가 평범한 남자와 교제 끝에 결혼식을 올리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보스였던 빌(데이빗 캐더린)은 암살단원을 모조리 불러와 그녀의 결혼식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한때 애인이었던 키도의 얼굴에 까지 총탄을 박아 넣는다. 이후로 오랜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키도가 빌을 찾아 복수하는 내용이 <킬 빌> 시리즈의 전부인데, 그래서 영화 제목도 문자 그대로 "Kill Bill"이다.
영화 <킬 빌>은 새롭게 개봉한 박훈정 감독의 <마녀: Part 2. The Other One>(2022, 이하 <마녀 2>)의 척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마녀 시리즈 전반에 뿌리 깊게 녹아있는 오마주이자 메시지라고 할 수 있는데, <마녀> 시리즈 역시 본질적으로는 <킬 빌> 시리즈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마녀 1>에서 평범한 삶을 갈구하던 자윤이 그 자신의 능력 때문에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음을 깨닫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재된 잠재력을 극대화해 그 자신을 만든 단체에 보복한다는 것. 그러나 서사를 넘어 <마녀>가 진짜 <킬 빌>에서 답습하려고 하는 지점은 바로 <킬 빌>의 주인공 키도의 '순수성'에 있다.
<킬 빌 1>에서 키도의 상징이 되어버린 노란 저지. 물론 이소룡의 의복을 답습한 것이기는 하다. 가녀린 여성의 이미지로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주는 키도의 모습은 <마녀> 시리즈의 주인공들과 일맥상통한다. *사진 : <킬 빌 - 1부>(Kill Bill: vol.1, 2003)
<마녀 2>를 관람한 관객이라면 주인공이 새로운 가족과 함께하면서 어깨선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노란 저지를 받아 입은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박훈정 감독이 <마녀 1>에서 <킬 빌 1>의 오렌 이시와 그녀의 호위대를 오마주 했던 것처럼, <마녀 2>에서도 주인공에게 <킬 빌> 시리즈의 주인공인 베아트릭스 키도의 상징물 같은 노란 저지를 입힘으로써 그 유전자의 근원지를 확실히 해둔다.
집착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박훈정 감독이 지독히 추구하는 '마녀 속 킬 빌'에 대한 질문을 이어나가기 전에, <킬 빌> 시리즈가 앞서 언급했듯이 매우 단순한 서사로 돌아가는 영화라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잔혹한 치정살인과 살아난 여인의 복수극이라는 단순한 곡조는 그 자체로 끝났다면 허무할 정도로 무미건조한 맛이었겠지만, 이 단순한 내러티브가 주인공 '키도'의 순수성과 맞물려 돌아가면서 영화 전체가 양립할 수 없는 아이러니 속에 놓이기 때문에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영화가 된다.
한 예로 <킬 빌>은 신부가 된 키도가 끔찍한 폭행을 겪고 죽임 당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이미지에는 폭력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영화 <마녀> 역시 순수함의 상징인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그 시작 지점의 소녀들을 피칠갑을 해둔다.
이 같은 이미지들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외면의 폭력과 내면의 순수함이 한 인간 위에 공존한다는 점이다. 한 인간이 어떤 순수함을 가졌어도, 외부 상황이 순수하지 않다면 어떤 순수는 의도하지 않아도 핏물에 물들 수 있다. 단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무수한 페르소나를 쓰고 벗었다를 반복하는 현대인들에게 이 같은 개념은 낯선 게 아니다. 원치 않지만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하는 어떤 일이 피로 물들었다면, 더구나 그런 일이 강제된 것이라면 내 안에 잠재된 순수는 순수인가 그렇지 않은가. 이미 순수와는 정반대의 일을 벌여놓았을 때, 어떤 순수한 인간은 순수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가, 아니면 겉으로 보이는 피칠갑으로 말미암아 '마녀'로 오인될 것인가.
소녀가 추구하는 순백의 세계는 인간의 욕망으로 덧칠됐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정은 소녀의 근본적인 순수를 해치지 못하게 만든다. *사진 : <마녀: Part 2. The Other One>(2022)
하지만 <마녀>도, <킬 빌>도 단순히 외연과 내연의 괴리만을 주목하는 작품은 아니다. 중요한 건 핏방울이 몰아치는 잔혹한 세상 속에서 순수가 어떻게 전진하느냐에 있다. 그런 점에서 <킬 빌>은 키도가 순수한 복수의 감정에만 집중하며 암살단원들을 처단하는 모습에서 순수의 극치를 보여준다. 어째서 잔혹한 살인이 순수의 극치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키도와 같은 암살자가 그 능력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각도로 활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택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명장 핫토리 한조의 검을 얻기 위해 다시 수련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키도의 자세는 광기에 젖어 피비린내를 풍기는 복수가 아닌 정제된 사무라이 정신이 깃든, 순수한 무위의 경지에서 펼치는 복수이며, 암살단을 찾아가 복수하는 과정에서도 복수의 대상만을 살해할 뿐, 단원의 딸은 살려두는 모습에서 칼날의 방향을 정확히 조준한다.
<마녀 2> 역시 주인공은 전 편에 등장한 초인, 자윤의 동생이라는 설정을 따라 국가를 전복할 만한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을 위해 무력을 쓰기보다 자신을 거둬들인 가족들을 위해 무력을 쓴다. 난생처음 맛보는 '마트 음식'에 행복을 느끼면서 말이다.
이 같이 세계라는 잔혹함과 인간 본성의 순수가 아이러니를 빚어내면서 순수가 잔혹한 세계를 깨트리고 진실의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은 <마녀 1>에서도 표현하고자 했지만, 3부작인 극의 전개를 위해 자윤은 인간 내면의 본질 중 순수의 각성이 아닌 폭력의 각성을 먼저 일깨운다. 다소 전 편과 중복되는 것 같아 보이는 <마녀 2>의 플롯은 아이러니를 통해 드러내려는 인간의 두 가지 본성 중 남은 하나, 순수를 좀 더 집중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짜여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박훈정 감독은 <마녀 1>에서는 폭력의 상징으로서 오렌 이시와 그의 호위대를 오마주한 반면에, <마녀 2>에서는 순수의 상징인 베아트릭스 키도를 아예 주인공에게 덧씌워 오마주 하면서, 세계의 추악함 속에서 폭력과 순수, 인간의 본성이자 특질을 두 주인공을 통해 추출하려고 하는 듯 보인다.
결국 박훈정 감독이 의도한 폭력과 순수의 아이러니적 상황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무언가. 아이러니의 구조적 특성, 약자이면서 겸손하고 현명한 에이런과 강자이면서 폭력적이고 자만심에 넘치는 알라존의 대결에서 결국 승자는 에이런의 차지다. 아이러니는 에이런과 알라존이 한 방에서 정반대의 의미로 사투를 벌이며 끝내 에이런이 표면의 의미를 깨고 수면 위로 박차 오르는 기교다. <마녀 2> 역시 돈과 권력을 위해서는 인간을 병기로 만드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세상을 소녀의 순수가 깨부수고 나오는 아이러니의 장이다. 그렇다면 <마녀> 시리즈가 말하는 건 결국 부서지지 않는 인간 본연의 순수가 아니겠는가. <마녀 1>에서 자윤을 키우던 양부모의 말처럼 '사랑으로 키우면 사랑스러운 아이가 된다'듯이, 무자비한 세상 속에서 인간성을 지키는 방법이란 어쩌면 폭력의 시간 이전에 결론이 나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