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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킹스맨’은 없다

<킹스맨 2>

by 민경민
원작의 향수를 따라 죽은 사람도 살려냈지만, 정작 영화가 죽어버렸다. *사진 : 다음 영화, <킹스맨 2 : 골든 서클, 2017> 스틸컷



원작에 기대한 속편은 부질없이 무너질 따름이다


<킹스맨 2 : 골든 서클>(이하 '킹스맨 2')은 사실 말이 킹스맨의 속편이지, 원작의 되새김질에 불과한 졸작이다. 원작의 B급 느낌을 기대하고 갔던 관객들이라면, B급 느낌이 아니라 아예 B급으로 전락한 이번 작품을 보고 큰 실망을 느꼈을 것이다. 어디서 꼬여버린 걸까. 극중에서 파괴된 킹스맨 본부처럼 킹스맨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부서졌다.


속편을 내놓은 작품들 중 성공한 작품의 공통점은, 본래 큰 이야기가 있었고 한정된 런타임에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분할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 시리즈나 혹은 코폴라 감독의 <대부> 시리즈 같이. 이들은 거대한 서사의 일부를 각 편에 떼놓고 후속편이 이어질 수밖에 없게끔 적당히 절단부위를 매끄럽게 사포질해놓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모든 후속편에 동일한 세계관과 작품의 가치가 고스란히 유지된다. 그 안의 내용물은 새로운 갈등과 서사로 채워지지만, 영화 전편을 돌아봤을 때 추구하고자하는 결말과 철학은 일치하게 된다.


헌데 <킹스맨 2>는 명확한 철학과 목표가 있었음에도 이를 저버린 채 전작의 인기에 편승하려고만 했다.

원작에서 ‘콜린 퍼스의 수트 포르노’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젠틀맨 스파이’의 절제된 액션은 액션신의 새로운 전환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킹스맨 2>의 액션은 기존 영화의 그것을 닮아있고 킹스맨 특유의 장점들은 사라졌다. 비단 이것은 액션신뿐만 아니라 극 전체를 관통하는 카메라 기법과 연출 방식에 적용되어있던 ‘절제’에서도 마찬가지다. <킹스맨 1>의 오프닝 시퀀스를 되돌아보자.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적들을 말살한 뒤 우아하게 술잔을 바톤 터치 받는 랜슬롯의 액션도 액션이지만 이 장면에서는 쇼트 전환도 불필요한 움직임 없이 깔끔하게 전환되며 카메라의 줌인아웃, 패닝도 ‘액션맞춤형’으로 절제되면서 신속하다.


<킹스맨 2>에서는 이렇게 간단명료한, 절제된 액션과 연출이 사라졌다. 그렇기에 ‘젠틀’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흔하디흔한 액션물이 된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새로운 패턴을 창안해낸 것도 아니다. 원작을 자기복제 한 신들이 가득한 <킹스맨 2>은 그나마도 원작을 따라가지 못한다. 원작과 유사한 위기와 악당, 그리고 악당의 본거지를 캐내기 위한 스파이 활동, 위기 극복, 최후의 대결로 이어지는 서사의 흐름은 본편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지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매끄럽지 않고 어색하기만 하다. 그런 어색함을 영화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는지 끊임없이 원작의 신들을 자기복제해 옛 영광을 불러오려 애쓴다.


그런가하면 인물들의 독창성도 떨어진다. 원작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에 대비해 포비(줄리안 무어)는 허무할 정도로 그 자신의 강점을 활용하지 않으며 사건을 좌지우지할 판을 주도하지도 않는다. 세계최고 요원의 생각을 간파하고 역으로 이중스파이를 두는 발렌타인의 치밀함과는 달리 포비는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다. 거기다 사건의 주축인 에그시(태런 에저튼)는 자신의 한계 극복이라는 매력적인 철학과 휴머니즘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었으나 느닷없이 로맨티스트로 둔갑해 투쟁한다. 바보 같은 악당에 뜬금없이 개인적인 소망을 가지고 투쟁하는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벌써 영화의 매력이 반감된다.


전작에서 성장하는 '에그시'만큼 인상 깊었던 에그시의 맞수 '가젤' *사진 : 다음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2015> 스틸컷



핵심 인물들의 변두리에 있는 인물들 역시 망가진 건 매한가지인데, 전편에서 발렌타인의 수족이었던 가젤(소피아 부텔라)이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그를 호위함과 동시에 그의 비서로서 활약했던 점에 비해 포비의 수호자인 찰리(에드워드 홀로크래프트)는 장애를 구원받는다는 설정(가젤이 다리를 잃은 것처럼)만 따랐을 뿐 가젤의 활약에는 미치지 못한다.


한편 에그시의 절대 조력자인 해리(콜린 퍼스)와 멀린(마크 스트롱)도 전편에서 보여주었던 장점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령 해리는 킹스맨 최고 엘리트 요원으로 단독으로 작전을 입안하고 실행이 가능한 능력을 보여주었고, 멀린은 킹스맨의 두뇌로서 요원들의 서포트를 전담하며 침투를 도왔지만 후속편에서 이런 면모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해리에겐 외상 후 휴유증이, 멀린에겐 본부의 파괴라는 패널티가 부여되었지만 단지 이 두 가지 요소 때문에 두 인물이 이토록 망가지는 일이 가능하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킹스맨의 철학과 설정을 따라가자면 이들이 처한 이 정도쯤의 장애는 충분히 ‘극복’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해리였다면 시야의 사각이 생겼다고 고칠 생각도 ‘않’고 매번 빗맞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진짜 멀린이었다면 킹스맨 본부가 박살났다고 에그시와 함께 스테이츠 맨 술잔을 기울이며 울기보단 전 세계에 퍼져있는 지부의 도움을 받거나 힘을 규합했을 것(킹스맨 1에서 해리와 에그시의 대화에서 킹스맨의 지부는 영국뿐만 아니라 독일 등지에도 있음이 드러난다)이다.


새롭게 등장한 ‘스테이츠 맨’의 조력도 ‘킹스맨의 몰락’처럼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에그시와 호흡을 맞춰 세상을 구원해야할 이는 새롭게 탄생한 랜슬롯인 록시(소피 쿡슨)였어야 했겠지만 그녀는 등장과 동시에 허무하게 죽고(물론 이는 랜슬롯의 코드네임을 받은 이들의 운명일수도 있다), 데킬라(채닝 테이텀)는 스테이츠 맨 특유의 분위기를 보여주더니 느닷없이 약에 취해 환자 신세가 되고는 극이 끝나서야 일어난다. 이후 뉴욕 지부의 위스키(페드로 파스칼)를 조력자로 데려오지만 인과관계 없이 순전히 해리의 ‘감’만으로 배신의 아이콘을 심는 등 전작에 비해 ‘일탈’을 조성하는 힘이 빈약하기만 하다.


이처럼 전작의 장점과 매력들을 모두 버린 채 기존의 흔하디흔한 'B급‘ 액션영화를 따라가며 과거의 향수에만 젖은 <킹스맨 2>는 과연 올해 최고의 졸작이 아닐 수 없다.


발렌타인에 비해 임팩트가 없었던 '포비' *사진 : 다음 영화, <킹스맨 2 : 골든 서클, 2017> 스틸컷



공감을 얻지 못한 ‘악인의 철학’


<킹스맨 2>의 몰락은 ‘킹스맨이 킹스맨 답지 않다’는 것도 있지만, ‘젠틀맨 스파이’를 상대하는 ‘뛰어난 미치광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포비는 전작의 발렌타인의 야망과 철학을 따라가지 못한다.


발렌타인이 제기하는 문제는 실제로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단지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 무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포비의 경우는 사실 말해 공감을 얻기 힘든 부분이 있다. 발렌타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지구온난화 해결이다. 그래서 인구를 강제로 감축, 그로 인해 산업이 둔화되면 공장가동이 줄어들어 자연히 자연은 회복하게 된다는 논리가 있었다. 그러나 포비는 순전히 마약을 합법적으로 팔기 위해 악업을 감행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해도 우리는 이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마약을 널리 파는 행위라면 더더욱 동의하지 않는다. 때문에 발렌타인의 철학은 우리가 함께 논의할 가치가 있지만 포비의 철학은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


위기의 정도에서도, 발렌타인이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무고한 시민들, 심지어 갓난아이까지 위험에 처할 절체절명의 위기를 안고 있었지만 포비의 그것은 상대적으로 그 위기가 반감된다. 마약에 중독된 이들, 성인들, 극중에서 묘사된 것처럼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생환을 바라지는 않는, 그런 사람들이 인질로 잡힌다. 마약 문제가 심각하기는 하지만, 마약 중독자들의 집단적 사망이 발렌타인의 그것처럼 전 세계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마약은 제법 고착화된 사회문제로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마약을 경험하는 사람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사회 문화적 차이에 따라 포비의 계획은 국지적인 영향력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면전에서 킹스맨들을 가지고 노는 발렌타인의 비범함 *사진 : 다음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2015> 스틸컷



그런데 이처럼 철학과 위기의 크기에서도 발렌타인과 포비는 차이를 보이지만 둘이 자신이 소유한 자원을 야망을 위해 쓰는 방법도 큰 차이를 보인다. 발렌타인은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야망을 실현하는 수단(수십 억명에게 무료 유심 칩을 배포)을 현실화 하고 직접 홍보에 나서거나 유력 인사들을 만나며 동의하는 자에겐 목숨을, 그렇지 않은 자에겐 감금을 선사하는 등 적극 사건에 개입하지만 포비는 아랫사람을 믹서기에 갈아 넣으면서 본인은 외딴 섬에 앉아 결과만을 기다린다. 물론 아랫사람을 ‘갈아서 결과를 만든다’는 포비의 경영철학을 컨셉화 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연간 수입이 1200억 달러라는 포비가 보여준 ‘부의 비범함’은 고작해야 수많은 해독제를 운반할 드론 시스템이 전부다. 로봇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서도 막상 킹스맨과 싸우는 건 <아이 로봇>에 등장한 로봇 군단의 모습은커녕 충전이 필요한 로봇 개 두 마리뿐이며, 그 자신이 부를 활용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도 보기 어렵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포비보다는 발렌타인을 처치한 에그시가 더 위대해 보인다. 영화의 내용적 측면에서도 그런대로 킹스맨 요원으로 시작해 이전보다 더 형편없는 악인을 처치한 에그시보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비참한 삶에서 세계를 위험에 빠뜨린 악인을 처치한 에그시의 비약과 성장이 더 크게 다가온다.


한때 열렬히 ‘킹스맨’의 팬을 자처했던 한 사람으로서 영화 <킹스맨>의 몰락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다시 ‘킹스맨’은 돌아올 수 있을까? 어쩌면 '트랜스포머'처럼 공룡로봇을 타고 다시 나타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더 이상 ‘킹스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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