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독서여행
오아시스 | 2016.08.23. 21:40통계
일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커터 소리가 방해를 하긴 했습니다)
끼니를 챙겨야 하는 수고로움을 잠시 밀쳐 두고
친구들의 송신 메시지를 2박 3일 동안 개무시하고
온전히 책만 생각하다 온 몰입 독서 여행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열어 본 독서 여행이라
공개모집 하지 않고 아는 분들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리고 공개모집 하는 경우 독서에 대한 부모들의 무조건적인 충성 때문에
우리 친구들을 억지로 떠밀까봐 개별적으로 연락했습니다.
(하지만 떠 밀려 온 친구가 있긴 있었습니다 ^^)
하루 종일 책읽기란 게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스마트 폰 없이 심심함을 버틴다는 게
1분 멍 때리기도 어려운 친구들에게 어쩌면 고문일지도 모릅니다.
책읽기가 지겨울 때 찾아오는 심심함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조금 걱정되기도 했는데,
책 읽다가 지치면 잠을 자고
자다가 일어나면 다시 책 읽고
그리고 때가 되면 밥을 먹으러 오고,
오로지 참가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저녁 시간에 마련 된 낭독의 밤이었습니다.
첫날은 소개와 함께 몇 분들이 준비한 낭독을 경청하고
마쳤습니다.
둘째 날은 온 종일 책만 읽는 시간입니다.
카페에서
도서관에서
해먹 위에서
나무 그늘 벤치에서
도서관 옆 예배당에서
숙소에서
그들에게 가장 아늑한 장소를 찾아가서
누에처럼 웅크리고 책을 읽었습니다.
간혹 책을 읽는 동지가 옆에 있으면 책 이야기도 나누다가
배가 고파지면 다들 어슬렁거리면 밥을 먹으러 옵니다.
(소박한 식사였지만 맛있었는지 밥이 모자랄 정도였고 몇몇은 무거운 몸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저녁 시간에 모여서 그날 각자 읽은 책들을 이야기 나누는데
다양한 무늬의 책들을 선보입니다.
그리고 준비한 낭독의 시간에는 참가한 어머니가 딸한테 받은 편지를 읽는 바람에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담백한 글이 돋보이는 편지였습니다. (모녀 참가자입니다)
영화 ‘빌리 엘리엇’을 보고 다시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전에 낮잠을 많이 잔 친구들은 밤 2시까지 도서관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첫날에 각자 흩어져서 잠이 들었는데 둘째 날 여자 참가자들은 도서관에 모두 모여 잡니다.
노골적인 스킨십과 게임이나 놀이가 없었는데
이름도 제대로 모르지만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듭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책만 읽는 이상한 캠프입니다.
마지막 날 오전
아쉬워서 그런지 아무도 조는 친구 없이
책에 빠져 있습니다.
오후 함께 마무리를 하는 시간에
어떤 분은 이번 여행을 자기 50평생 중 최고의 여행의 자리에 올려 놓겠다고 합니다.
일상에 쫓기던 분들에겐 아주 강렬한 독서 여행이었는가 봅니다.
스스로 유배를 하기까지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유배를 선택한 순간
그들은 온전히 자기와 만나서 대화하고
책과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캠프나 연수를 가게 되면
자의 반 타의 반
자기소개와 자기고백 혹은 관계 맺기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MSG 하나 없는 밋밋했지만
일상의 숙취를 해소할 만한
맑은 콩나물국 같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