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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Apr 14. 2022

심리상담의 허와 실

노교수가 바라본 한국 상담계의 현실 / 장성숙 

장성숙 교수 지음

석사과정을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되었어요. 이제 어느 정도 몸이 젖은 느낌입니다. 앞선 포스팅에서도 적어두었지만, 한양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예술치료교육 및 상담'이라는 긴 전공 이름으로 석사과정을 시작했어요. 미술, 음악을 포함한 다양한 표현예술을 치료도구로 활용하는 '치유를 위한 표현예술' 공부가 전공필수로 첫 시작입니다. 물론 저는 치료적인 예술 도구로서 '사진'이란 매체를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어요. 저에게 사진교육을 받으러 오셨다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더욱 왕성하게 사진 창작활동을 하시는 분들의 '마음의 지도'를 완성하고 싶기에 사진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스타트업 회사가 처음의 방향대로 회사가 운영되는 경우는 오히려 성공한 기업일수록 드물죠. 이걸 피보팅(pivoting)이라고 하더군요. 성공하려면 현실적인 상황에 맞추어 언제나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고, 피보팅은 기업체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비단 스타트업에만 적용되는 생존전략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한 달 반을 공부한 지금, 심리상담분야의 숲 속에 들어오기 전과는 이미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공부들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궁금했어요. 보수적인 대학과 학계는 어떻게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을까? 심리학의 응용학문인 심리상담학과 예술치료학은 현실에 어떻게 피보팅하고 있을까?를 살펴보고 싶었어요.


심리상담분야의 진짜 이야기가 궁금했고, 그러다가 알게 된 책이 '심리상담의 허와 실'이란 장성숙 교수님의 책이었어요. 현재는 대학에서는 은퇴하셨지만, 가톨릭 대학교 심리학과 상담 전공 교수님이셨어요. '허와 실'이란 제목에 이끌렸죠. 그래도 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오랜 현장 경험에서 느낀 실질적인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아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머리말부터 이론과 현실의 격차를 이야기합니다. 응용학문인만큼 상담 실무에 눈을 떠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실무경험이 없이 연구만 하는 교수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어요. 실무를 경험하지 않고서 하는 슈퍼바이저는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뻔합니다. 학회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채운 수련기간의 경험만으로 현장을 다 이해했다고 할 수 없겠죠. 사진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업 사진가로 왕성하게 활동해본 경험이 없는 교수들이 잡지에 들어갈 화보 촬영을 교육하죠. 교수라는 타이틀 덕에 상업 사진가로 활동할 기회가 종종 찾아오지만, 현장에서 치열하게 부딪혀본 경험을 통해 얻는 작가들만의 노하우에 비하면 그 수준은 많이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응용학문인 상담심리학 분야도 마찬가지더군요. 사진학을 대학원에서 전공하면서 학위에 대해 염증을 느꼈던 지점도 여기에 있었죠


머리말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그러면서 알게 된 점은 내담자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은 대체로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이라는 사실이었다. 표면적인 문제는 내담자가 스스로 풀어가기를 바라며 내면적 갈등에 역점을 두고자 했던 나로서는 난감했다. 내담자들이 필요로 하는 해결방안을 모색하려면 현실적인 안목을 갖춰야 하는데 그것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책 3p)


현장 경험 없이 학문으로만 접근한다면 체감할 수 없는 내용이겠죠. 이 책에서는 현실적인 경험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에 맞는 상담이론을 정립하고자 하는 노력의 흔적들을 살펴볼 수 있어요. 저자가 어떻게 심리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유학까지 다녀오게 되었는지 그 과정도 살펴볼 수 있어요. 현장 경험을 하면서 깨닫게 된 한국적인 상담이론의 개발에 대해 저자는 '현실 역동 상담이론'이란 걸 펼쳐요. 우리만의 문화적 특성과 현실상황에 맞는 상담이론을 적용해야 효과적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이론이죠.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친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내용들 중에서도 좀 더 깊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지면을 통해서 다른 책을 소개하면서 혹은 이론서를 리뷰하면서 다시 접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통적으로 심리상담에서는 내담자의 감정이나 정서를 깊게 헤어리며 공감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충분히 공감함으로써 무의식화된 비합리적 사고에 숨어 있는 감정을 의식 위로 떠올리도록 시도한다. 일단 그러한 감정을 의식 위로 떠올리면, 그것을 말로 표현하도록 돕는다. 그래야 감정적 응어리가 해소될 수 있고, 비로소 합리적인 상황 인식이나 판단을 할 수 있으며, 나아가 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 29~30p)


"심리상담의 목표는 '변화'다. 증상이나 문제의 원인에 대해 스스로 자각한 후에는 태도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내담자가 충분히 공감을 받으면 비로소 여유가 생겨나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나아가 변화를 시도한다는 상담계의 믿음은 너무 낙관적인 것이다. 변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습관이나 습성을 개선해야 하는데, 아픈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감행할 수 있을까." (책 65p)


"직면시키기'는 다르게 표현하면 '쓴소리'다. (책 67p)


"심리상담이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갈등이나 당면한 문제에 역점을 두어야 성과를 내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회포를 풀며 위로나 받는 식의 상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책 72p)


"심리학이 철학에서 분파되어 나왔던 것은 인간을 과학적으로 연구하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리하여 심리학은 과학화를 이루기 위해 측정 가능한 것만 연구 주제로 삼았고, 심리학은 보편적 원리를 발견하는 데 급급했지 개별적 차이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상담에서도 인간에 대한 보편적 원리를 중시하자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책 159p)


- 보편적 원리는 공부하면 가능하다. 하지만 개별적 차이에 대한 접근은 상담자의 능력에 따라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배운 이론을 누구에게나 적용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내담자마다 상황마다 케바케일 수밖에 없는 개별성을 상담자는 놓쳐서는 안 된다. 이것을 기르기 위해서는 식견을 넓혀야 하고, 논리적인 사고만으로도 충족되지 않는다. 형이상/하학을 넘나드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이성과 감성의 영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야 한다. 


"상담은 이론 분야가 아니라 응용분야다" (책 191p)


" 현대 사회의 특징은 속도감이다 사람들은 진득하게 기다려주지 않는다. 더구나 많은 비용을 부담하는 유료상담을 사람들은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가급적 단기적으로 상담을 받고자 한다." (책 193p)


- 우리는 '내담자'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영어식으로 바꾸면 '내담자'는 고객(Client)이다. 주로 내방하는 고객의 니즈에 맞추어 상담자는 피보팅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상담자의 역량을 개발해야 한다. 단순히 서구 이론을 기계적으로 짜 맞추기식으로 적용하고, 몇몇 사상가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유식을 떨어봐야 환불이다.


"상담자가 충분한 공감이나 지지를 통해 수용을 해주면, 내담자가 비로소 통합을 이루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인간 중심 상담의 핵심이다. 그러나 임상에서 이뤄지는 상담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 ~~~ 내담자가 처해 있는 현실이 그만큼 다급하거나 고질화 되어 있어서 좀처럼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책 195p)


"협소하게 심리 이론만 익힐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보는 안목을  반드시 키워야 한다고 본다." (책 197p)


"호소하는 문제 그 자체에 역점을 두는 지지 지향 상담을 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문제는 지지 지향 상담은 통찰 지향 상담에 비해 더 적극적인 개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것이다. ~~~ 사실은 현실적인 사안을 다루는 지지 지향 상담이 더 어렵다." (책 199p)




이 이야기들 속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이론 및 우리가 알아야 하는 정신 공간의 지도가 담겨있지만, 오늘은 장성숙 교수님이 바라본 심리상담현장의 실제 이야기와 상담자로서 갖추어야 할 현실적인 능력에 대해서 좀 더 무게를 두었습니다. 상담 관련 일을 시작하려는 분 혹은 상담현장에서 일하면서 한계에 부딪힌 분 또는 저처럼 심리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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