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사진 vs. 상업사진
술 한잔 할래?
얼마 전 친구한테서 술 한잔 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평소에 술을 즐겨 마시지 않는 건 그 친구나 저나 마찬가지입니다. '술?' 하고 톡으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어~ 술'이라고 짜증인지 확신인지 답이 돌아왔습니다. '무슨 일 있어?' '어디로 갈까?' 하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살짝 걱정이 되었습니다. 둘 다 성격이 사교적이지 못해서 친구이긴 하지만 자주 만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연락을 하지 않는 사이도 아닙니다. 평소와 다르게 갑자기 술을 마시자고 하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랑 이야기 나누는 것은 즐겁습니다. 웃기는 이야기가 있어서도 아니고, 서로 많은 말을 해서도 아닙니다. 차 한잔 하면서 몇 마디 툭툭 서로 주고받으면 그것으로 대화는 충분합니다. 우리는 서로 굳게 잠긴 생각의 방문을 조심스레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문이 잘 열리지 않을 때 우리는 주로 톡을 합니다. 어차피 만나서도 마주 보고 앉아서 톡으로 대화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엔 술! 을 요청하니 걱정됩니다.
마을버스
이 친구는 같은 학교 친구로 저와 함께 사진을 전공했습니다. 비슷한 듯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우리는 둘 다 소신껏 사진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고, 제법 인정받는 순수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녀석의 작품이 매스컴에 소개되고 인터뷰하는 모습을 볼 땐 좀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할 때는 조금 힘들어 하긴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으로 연락이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마을버스에 올랐습니다. 오랜만에 학교 가는 마을버스가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그 친구가 새삼스레 학교에서 보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오후 수업을 땡땡이치던 그 잔디밭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뭔가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이 분명했습니다. '사진을 그만두려고 하나?' '늦은 나이지만 유학 가려고 하나?' '결혼?' 학교 잔디밭에서 보자고 하는 것이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친구가 순수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서겠다고 결심했던 장소도 거기여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해서... 자기는 결혼하면 가족들이 고생한다고 밥벌이 안 되는 순수 작가는 혼자 살아야 한다면서 결혼 이야기엔 매우 민감한 친구였기에, 혹시 집에서 강제 결혼시키나? 아니면 학교 다닐 때 아르바이트하면서 만난 그 여자 아이와 결혼발표라도 하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흔들리는 마을버스 창밖을 낯선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주머니에서 로모카메라를 꺼내어 그냥 한컷 생각 없이 찍었습니다. 로모 정신이 그냥 생각 없이 찍는 것이라고 했듯이, 예전의 시선과 사뭇 다른 느낌의 나의 시선을 토이 카메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정류장을 알리는 마을버스의 안내방송을 귀담아듣고 있진 않았지만, 몸은 내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듯 익숙하게 다른 학생들과 함께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심호흡은 자동으로 하게 되더군요. 그때 그 친구랑 마시던 공기가 남아있기라도 한 듯 깊게 들이마신 공기는 저를 다시 그때의 학생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시험날 아침처럼 긴장되었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