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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오 Oct 10. 2017

론세스바예스

가시덤불 언덕

Don’t race to get there
Once you arrive, then what?
거기에 가기 위해 경쟁하지 마라. 일단 도착하면 다음은?


꽤 걸었던 것 같다. 텀블러엔 전날 마시다 남긴 물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데 갈증이 몰려왔다. 새벽어둠이 거치고 여명이 거리를 비추었을 때 땅에 떨어진 무언가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밤이었다. 스페인의 밤이라니… 반가운 마음에 몇 개 집어 들었다. 한두 개 먹으며 주우며 갈증을 채우다가 그것마저 아끼고 싶은 생각에 몇 개를 골라 주섬주섬 주머니에 넣었다. 

경사가 가파른 것을 보니 이제부터 제대로 산인가 보다. 어느새 뒤에서 걷던 이가 인사하며 앞으로 지나갔다. 

 

Buen Camino!

(부엔 까미노, 좋은 길 되세요!, 행운을 빕니다.) 


호의로 건넨 인사에 감사는커녕 그 사람이 앞선 것에 대해 왠지 모를 께름칙함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빠르게 걸었지만 이미 앞선 사람은 다시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물은 다 마셨는데 갈증이 심했다. 지도를 살펴보았다. 반갑게도 가까운 거리에 운또(Hontto)라는 곳에 샘 표시가 있다. 거기까지만 참고 가자.  바짝바짝 마르는 입을 주체할 수 없어 밤을 까먹었지만, 아까와 달리 더 갈증이 심해졌다. 

또 한 사람이 지나쳐 갔다. 기분이 나쁘다. 더 노골적으로 되어서는 옥죄는 느낌마저 들었다. 걸음을 더 빨리했다. 반갑게 인사한 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 마음마저 안 좋은 기분이 덮는다. 

운또라는 곳에 도착해서 샘을 찾아보았다. 겨우 샘으로 보이는 것을 찾아서 물을 틀어보았더니 물이 나오지 않았다.

운또 이후로 내 머릿속엔 물을 마시는 상상과 따라 잡히지 말자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나한테 까미노의 가장 아름답다는 피레네 풍경은 보이지 않았다.

더욱 심해진 갈증에 다시 지도를 꺼내보니 한 시간 거리에 롤랑의 샘(fontaine de Roland)이 있었다. 서둘러 걸어 그곳에서 전날 준비한 빵과 하몽을 먹어야지 생각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조금 더 걷고 있는데 자신의 키를 압도하는 노란 배낭을 든 남자 하나가 나를 지나쳐 갔다. 굽은 막대기를 딱딱거리며 내 앞을 지나쳤다. 얼핏 보니 중국사람 같았다. 갈증도 심해지고 경쟁의 마음도 깊어갔다. 나보다 작은 키였지만 빠른 걸음을 쫓을 수가 없었다. 오기가 나서 걷다 보니 더는 거리가 멀어지지는 않았다.

그와 노란 배낭을 보며 얼마를 걸었을까? 저 앞에서 그가 자리에 앉으며 물을 꺼내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마음은 롤랑의 샘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몸은 거부했다. 고민할 겨를도 없이 이미 그에게 혹시 물을 좀 나눠 마실 수 있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그는 그 큰 백팩에서 따지 않은 물 하나를 꺼내어 내게 건네주었다. 순간 울컥하며 고맙다는 말을 하고 그를 지나 앞쪽으로 가서 나도 자리를 잡았다. 빵과 하몽을 꺼내 점심을 먹으며 물을 마셨다. 달고 맛있게…

이때 통성명도 안 하고 지나쳤던 그에게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좌) 물을 주었던 친구 (우) 롤랑의 샘


갈증과 허기를 채우고 나서 제정신을 차릴 때쯤 나 스스로에게 깨닫은 것이 하나 있었다. 

길은 하나이고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걷는 사람들과 경쟁을 하고 있었던 거다. 내면 깊숙이 남과 경쟁하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경쟁의 마음 때문에 피레네 산맥의 풍경도 롤랑의 샘이란 말도 저쪽으로 밀려나고 없었던 거다. 그제야 롤랑의 샘이 무얼까 생각했더랬다. 

롤랑의 샘물을 마시면서도 유럽의 유명한 서사시 롤랑의 노래(La Chancon de Roland)도 몰랐고 주인공 롤랑도 몰랐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보이는 만큼 느끼는 거다. 


롤랑은 사라센의 왕 마르실(Marsile)의 화친하자는 제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사라고사 만 점령하면 지긋지긋한 이슬람교도들과의 전쟁도 끝이 보이는 데 정세가 불리해지자 거짓 얼굴을 들이대는 것은 아닌지 싶었다. 삼촌인 프랑크 왕국의 황제 샤를마뉴(Charlemagne)에게 그들과의 화친은 안된다고 말했다. 롤랑의 의붓아버지 가늘롱(Ganelón)은 롤랑의 발언에 반기를 들며 화친을 통해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가늘롱은 황제의 총애를 받는 롤랑을 질투하며 증오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롤랑은 그의 이런 증오를 알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황제는 마르실 왕의 의중을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사신을 보내기로 결정을 했다. 문제는 누구냐인데 호랑이 입속에 순순히 머리를 넣고 날카로운 이빨에 머리가 갈기갈기 찢어질 수도 있는 격인데 누가 나서겠는가. 

롤랑은 화친을 말하는 의붓아버지가 그 일에 적임자라 판단하고 그를 천거했다. 가늘롱은 분노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롤랑이라니. 가늘롱의 증오는 살의로 뒤바뀌고 있었다. 

마르실 왕과 만난 가늘롱은 오직 롤랑의 죽음만을 생각했다. 가늘롱은 마르실 왕에게 하지 말아야 할 제안을 하고 만다. 롤랑과 12명의 성기사를 제거한다면 마르실 왕에게 승산이 있을 거란 말을 했다. 롤랑과 성기사 12명이 맹위를 떨치며 활약했던 것을 이미 알고 있던 마르실 왕은 그의 제안에 더욱 귀 기울였다. 가늘롱은 롤랑을 군사의 후위를 맞도록 할 테니 후위 군사가 시세(Cize) 언덕에 접어들 때 처음엔 10만을 투입해 롤랑과 병사들을 어느 정도 제압하고 다시 5만을 투입한다면 지쳐있는 롤랑을 분명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제는 마르실 왕과 화친을 맺고 휴전을 했다. 이제 대군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하지만 마르실 왕을 믿을 수만은 없었다. 황제는 기습에 대비해 후위를 지킬 든든한 군대를 두도록 정렬하라 명했다. 가늘롱이 재바르게 나서서 롤랑을 천거했다. 롤랑은 화친 대사로 가늘롱을 천거했으니 자신이 그의 의견을 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롤랑이 나서니 올리비에가 12명의 성기사도 함께 하겠다며 따라나섰다. 

롤랑과 12명의 성기사는 군사 2만과 후위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샤를의 대군이 롱스보(Roncevaux) 고개를 넘을 때 길은 가파르고 좁아 한 명씩 한열로 갈 수밖에 없었다. 후위대가 기습을 당해도 황제가 있는 곳까지 알릴 수 있도록 황제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들리는 전설의 뿔나팔 올리판테(Olifante)를 후위대에 주고 왔다. 

롤랑은 후위대가 롱스보 고개의 좁은 길로 막 들어서고 있을 때였다. 엄청난 수의 말과 군사의 행군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함성소리와 함께 마르실 왕이 보낸 사라센 군대가 물밀듯이 들이닥쳤다. 수적 열세를 직감한 성기사 올리비에는 롤랑에게 올리판테를 불어 황제의 군대에게 도움을 청하자 했다. 롤랑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과 12명 성기사만 있으면 이깟 이교도 병사들 쯤이야 가뿐하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치열한 함성과 비명으로 전장은 피로 물들고 전사한 병사들의 시체가 쌓여갔다. 수적 열세에도 밀리지 않고 잘 싸웠지만 10만의 병사 뒤에 5만의 군사가 들이닥쳤을 때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이교도 군사들에게 몸과 마음이 지쳐간 프랑코 병사들은 밀리기 시작했다. 롤랑은 주변의 병사들이 쓰러지자 올리판테를 불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더 이상 그들의 희생을 묵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 롤랑은 올리판테를 불며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사방으로부터  칼끝과 창끝이 롤랑을 향했다. 몸속으로 파고드는 수많은 날카로움을 느낄 때쯤 그는 뿔나팔을 더 이상 불 수도 요정들이 만들어 산을 쪼갤 수도 있다는 보검 두란다르트(Durandart)를 들어 이교도를 벨 힘도 남질 않았다. 하지만 두란다르트를 이교도의 손에 넘겨줄 수는 없는 법. 두란다르트를 파괴하기 위해 자신에게 남은 힘을 모두 모아 두란다르트를 바위에 내려쳤다. 있는 힘을 다하며 내리쳐 바위는 빠개지고 롤랑도 마지막 숨을 거두었지만 두란다르트는 깨지지 않았다.  

황제는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하지만 불길한 소리를 들었다. 위험을 직감한 황제는 기수를 돌려 롤랑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샤를마뉴가 도착한 그곳의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적군인지 아군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주검들로 가득 차 있었다. 황제는 오열하며 군사들의 장례를 치르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이교도 군사들을 함께 매장할 수는 없기 때문에 황제는 그 자리에서 아군의 주검을 구별할 수 있도록 증표를 달라고 기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붉게 물든 주검들 중 아군의 입에서 장미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 계곡에서 장미꽃이 피어났다. 


Roncesvalles
장미의 계곡  


샤를마뉴는 남은 병사들을 이끌고 후퇴하는 적을 쫓아가 후미부터 차례로 격퇴하면서 앞으로 전진했다. 황제는 사라센 군사의 도륙을 끝내고 마침내 만난 마르실 왕을 가차 없이 베었다. 마지막 남은 사라고사를 점령한 것이다. 가늘롱은 전장에서 도주하여 프랑스에 돌아와 숨었지만 결국은 체포되어 네 토막으로 잘리는 사형을 당하고 만다.


장미의 계곡이라 번역되기도 하지만 이 단어는 가시의 계곡이라는 뜻도 된다. 어쩌면 이 참담한 사건은 프랑크 왕국이 이교도의 가시에 찔린 역사였을 것이다. 그 계곡의 가시에 찔린 롤랑은 죽음을 맞이했고 놀랑의 노래로 남는다. 롤랑이 올리판테를 불었던 이바녜따 언덕에는 롤랑의 거석(Monument to Roldán)이 서있다.


롤랑의 거석(Monument to Roldán)


론세스바예스는 다른 이름이 하나 더 있다. 


Orreaga Roncesvalles


Orreaga는 바스크어로 노간주나무(Junipers)이다. 노간주나무의 특징은 잎사귀가 뾰족해 가시 같다. 론세스바예스는 예로부터 노간주나무가 많아 바스크어로 노간주나무의 장소라는 어원을 가졌고 가시같이 생긴 잎을 가진 나무의 계곡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른바 가시 계곡이다. 그러고 보면 롤랑의 슬픈 이야기로 이 계곡의 이름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 계곡의 이름이 롤랑의 이야기를 슬프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산타마리아 왕립 성당(Real Colegiata de Santa María)과 Collegiate의 로고


론세스바예스라는 이름은 처음에는 작은 평야에 붙여진 이름이었지만 8세기부터 순례자들이 지나는 길이 되고 그들을 위한 마을과 병원이 들어서면서 12세기에는 현재의 부르게테(Burguete) 마을의 이름이었다. 산타 마리아 왕립 성당(Real Colegiata de Santa María)이 13세기 재건축되면서 마을과 이름을 구별할 필요가 생기자 마을은 부르게테라는 이름을 성당과 병원이 있는 곳은 론세스바예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산타 마리아 왕립 성당은 산초 7세가 라스 나바스 데 똘로사의 전투의 전리품 나바레의 상징 황금 사슬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모 마리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0세기경 유목을 하며 밤을 지새우던 목동 몇 명은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며 자신들을 향해 가까워져 오는 무언가를 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뿔에서 환한 빛을 내는 사슴이었다. 사슴은 그들 앞을 지나 어딘가로 향해 걸어갔다. 사슴은 나를 따라오라고 말하는 듯 거리를 두고 천천히 갔다. 목동들은 사슴의 뒤를 쫓아갔다. 한참을 가다가 갑자기 멈추어 선 사슴은 땅을 파기 시작했다. 작은 발로 한참을 깊숙하게 땅을 파더니 목동들을 지긋이 바라보며 땅파기를 멈추었다. 그리곤 그 자리를 훌쩍 떠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목동들은 사슴이 판 곳을 향해 슬그머니 다가갔다. 파헤쳐진 땅을 바라본 목동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곳에는 아치 아래 성모 마리아 상이 모셔져 있었던 것이다. 

훗날 이 곳에 세워진 곳이 산타마리아 왕립 성당이다. 그리고 빛을 내는 뿔을 가진 사슴이 알려준 성모 마리아 상은 성당에 모셔졌다 한다.

하지만 경쟁에 눈이 멀어 걷다 지쳐버린 아둔함으로 나는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했다. 


‘까미노에서 경쟁하지 말자.’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도 좋아졌다. 그만큼 몸도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를 걸었을까? 눈앞에 론세스바예스의 커다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장 피에 드 포르에선 호텔에서 숙박을 했기 때문에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는 첫 경험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예상 밖이었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는 최신식에 깨끗했다. 그리고 첫 길을 나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까미노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피렌체를 넘느라 죽도록 고생했다 하고 어떤 이는 경치 때문에 다시 넘고 싶다는 이도 있었다. 고생했다 말하며 발을 만지작 거리던 여성분은 택시를 이용해 린소아인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런 방법도 있다는 것에 살짝 유혹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선 안된다. 움직이기도 싫을 만큼 지쳤지만 끝까지 걸어서 가겠다는 결심만큼은 확고했다. 

일정이 적힌 수첩을 힘 있게 꺼내 들었다. 다음 갈 곳이 어디야??? 

론세스바예스라 적힌 것을 지우고 다음 적힌 목적지는


Zubiri
수비리


이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 호기심이 각각의 마을 이름의 의미를 묻고 있었다.




론세스바예스 문장

Escudo de Roncesvalles

상단 좌측, 하단 우측 

- 노간주나무

상단 우측, 하단 좌측

- 산타 마리아 조각을 찾게 도와준 빛나는 뿔을 가진 어린 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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