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는 산책을 좋아한다. 무지 좋아한다. 식구 중 누구라도 현관으로 나가면 애처럽게 목을 길게 빼고는 처분을 기다린다. 게다가 망고는 영리하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내가 녀석을 부를 확률이 가장 높다는 것도 간파한 눈치다. 제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내가 나갈 때면 항상 현관까지 따라나오는 게 그 증거다.
녀석에게 아직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둘 있다.
하나는 배변패드 끝 가장자리에만 볼 일을 보는 것이고 두번째는 산책 중에 가끔 꼼짝않고 걷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어제 저녁. 식구들은 나가서 외식하자는데 중지를 모았지만 집밥을 좋아하는데다 식당음식에 이골이 난 내가 제시한 고기 만찬에 설득당했다. 그러하니 내가 정육점을 다녀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망고는 '망고야 가자"란 말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조심해야 할 것은 이 말을 모든 채비가 끝나고 신발끈까지 묶은 다음에야 한다는 점이다. 혹여라도 외출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뱉었다간 준비하는 내내 그 닥달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렇게 나선 걸음이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 날 즈음 망고가 몇 번을 멈칫하더니 아예 엎드려자세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르고 달래도 꿈쩍하지 않길래 줄을 풀고는 앞서 달리는 시늉을 했다. 그제사 쫒아 온다. 다시 줄을 채웠다. 좀 걷더니 또 엎드려자세다. 줄을 당겨 끌었다. 딸려오는 듯 하더니 다시 움직이지않는다. 줄을 풀어선 안된다. 내겐 작고 귀여운 강아지지만 남에겐 위협이 될 수 있으니까. 다시 세게 당겼다. 가벼운 터라 달랑 들린다. 목줄이 아닌 하네스(몸통 앞을 감싼 방식)를 채웠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한 행동이기도 했다. 갈 길은 바쁜데 이러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화가 났던 모양이다. 쭈그리고 앉아 녀석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시도했다. "너 도대체 왜 그래? 니가 나가고 싶어했잖아" 말이 없다. 내 목소리에 묻은 화를 감지해서일까 눈길을 돌리고 흘깃흘깃 눈치만 본다.
순간 깨달았다. 망고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다분히 내 문제인 것이다. 녀석이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 건 분명하지만,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지 충분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망고는 말을 할 수 없는 개다. 짖는 것조차 제지당하기 일쑤니 행동으로밖에 제 의사를 전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집에 남은 식구들이 있는 상태에서 외출할 때만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도 같고, 익숙하지 않은 길을 나설 때만 그랬던 것도 같다. 집으로 돌아 올 때 멈춘 적은 없었다. 어쨌건 이 녀석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다만 알아채지 못한 주인이 야속할 따름이다. 어쩌면 내 스스로가 그 이유를 몰라서 화가 난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버티며 끌려오는 곤욕을 치른 건 망고다. 내게 냈어야 할 화를 그 녀석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미안했다. 안고서 몇 걸음을 걸었다. 그리고는 내려놨다. 다시 잘 따라 온다. 어떤 경우에도 곁에서 멀리 벗어나는 일은 없는 녀석이다.
이것이 단지 사람과 동물간에만 적용되는 것일까? 사람과 사람간에도 이런 경우는 수없이 많다. 흔히 하는 내 속을 열어 보일 수 없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와 경우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하건 어떤 행동을 하건 내 속내는 상대가 알아 채지 못할 거라는 얄팍하고 음험한 계산이 그 중 하나고, 실은 내 진심은 그게 아닌데 상대가 알아주지 못해 답답하고 억울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나머지 하나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결과로서 상대의 선의와 진심을 가늠하는데 단련됐고 익숙하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옳다고는 말할 수 없다. 길바닥에 주저앉는 것은 망고가 보인 행동이지만 나는 오로지 나만의 이유와 감정으로 녀석을 판단하고 질책했다. 최소한 망고는 한 가지 감정에 한 가지 행동으로만 반응하는 순수덩어리인데 말이다. 사람은 한 가지 감정을 수많은 말과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전혀 반대의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복잡 다양한 면을 가진 인간이라는 동물을 같은 인간이라고 해서 알 수 있을 거란 오만을 버려야겠다.
감정이 그러할진대 보다 더 깊숙하게 자리 잡은 진심은 오죽할까. 오늘은 왜 배변 패드 끝에만 용무를 보는 지 녀석과 진지한 대화를 시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