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감싸던 종이들 21>

Vinyl Sleeve Stories

by JDC side B

21. 배급의 궤도와 제작의 고집 : Planet Records


_MG_1824.jpg 1980'S PLANET RECORDS 7" 45 RPM Original Record Company Sleeve


사진 속 1982년의 슬리브는 화려한 우주를 꿈꿨지만, 그 이면에는 소리 한마디를 잡기 위해 밤을 지새웠던 스튜디오의 눅눅한 공기가 배어 있다. 플래닛 레코드는 70년대 말, 당대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던 프로듀서 리처드 페리가 자신의 커리어를 걸고 배수진을 치듯 세운 곳이다. 당시 업계 기사들을 들춰보면 그를 향한 시선은 기대만큼이나 냉소적이었다. "제작비만 탕진하는 완벽주의자의 고집이 독립 레이블에서 통하겠느냐"는 우려였다. 실제로 그는 녹음실 대관료가 쌓여가는 와중에도 마음에 드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릴 테이프를 돌리고 또 돌렸다.

그 치열한 고집이 낳은 현실적인 결과물이 바로 그렉 필린게인즈(Greg Phillinganes)의 앨범 《Significant Gains》다. 마이클 잭슨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제 이름을 내건 첫 판을 낼 때, 그렉은 플래닛 레코드라는 둥지 안에서 가장 정교한 소리를 깎아냈다. 당시 잡지 비평가들은 이 앨범을 두고 "단순한 연주자의 외도가 아니라, 자본과 기술이 결합해 뽑아낼 수 있는 최고치의 사운드"라고 적었다. 80년대 초반, 디지털 장비들이 갓 도입되던 혼란스러운 현장에서 그들이 뽑아낸 소리는 차갑기보다 오히려 집요할 정도로 선명했다.


1982년 RCA와 손을 잡으며 찍어낸 이 종이봉투 하단에는 'Manufactured and Distributed by RCA'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이는 거대 자본에 무릎을 꿇은 기록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소리를 전 세계에 가장 효율적으로 뿌리겠다"는 현실적인 전략의 증거였다. 덕분에 그렉 필린게인즈의 화려한 건반은 전 세계 라디오 전파를 탔고, 플래닛은 짧고 굵은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이 푸른 궤도의 슬리브를 턴테이블 곁에 세워두고 감상에 젖기 좋은 곡은 단연 앨범의 ‘Baby, I Do Love You’다. 1980년대 초반, 전 세계 클럽과 거리를 수놓았던 '어반 팝' 특유의 세련된 비트가 흘러나오는데, 유심히 들어보면 그렉의 키보드가 마치 마이클 잭슨의 숨소리처럼 리드미컬하게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빌보드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던 화려한 팝송들 틈바구니에서, 플래닛 레코드는 이처럼 '뮤지션의 정교한 터치'를 대중의 귀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흥미로운 점은 1982년이라는 시점이 음악 산업의 물리적 매체가 LP에서 CD로 넘어가기 직전의 '아날로그 최후의 정점'이었다는 사실이다. 리처드 페리와 그렉 필린게인즈가 집요하게 깎아낸 그 입체적인 사운드는, 역설적으로 디지털 시대가 오기 전 아날로그 기술이 도달할 수 있었던 가장 선명한 높이였다. 플래닛 레코드가 1985년에 홀연히 자취를 감춘 것 또한, 어쩌면 자신들이 추구한 소리의 완성형을 그 짧은 궤도 속에 모두 쏟아부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https://youtu.be/xkTmzpcKoag?si=V5U_ZFshISG8cEI5

Do it all for love - greg phillinganes



https://youtu.be/FbYm1oNO83s?si=gCD0yLbkZ9opRS9q

Baby, I Do Love You - greg phillinga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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