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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하루들이 모여 나만의 커리어가 된다

by 로드퓨처

신입이거나 주니어일수록 자기 일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커리어 초기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도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한다.


“내일 출근하면 또 어떤 일이 주어질까?” 같은 생각이 많아지면 잠도 잘 오지 않고, 막상 주어진 일도 잘 될 것 같지 않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매일 주어지는 업무를 최선을 다해 완수하면, 그 자체로 작게나마 ‘결과’가 된다. 이 결과들이 쌓이면 팀의 성과가 되고, 그 성과 속에는 자연스럽게 ‘내 지분’이 생긴다. 그리고 그 지분을 차곡차곡 모아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하면, 결국 멋진 커리어가 된다.


내 사례를 간단히 들어볼까 한다.


나는 석사 졸업 후 대기업 연구소에 입사해 바이오시밀러 연구개발 업무를 맡았다. 당시는 IMF 직후라 조직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슬림화된 조직에서 최소 인원으로 최대 업무를 해야 하는 시기였다.


입사하자마자 내게 주어지는 첫 업무는 바이오시밀러 분리, 정제였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매뉴얼을 찾아보고 선배들에게 물어가며 좌충우돌하면서 일을 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정제한 물질로 동물실험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난생처음 실험용 마우스에 피하주사를 하고, 채혈 후 적혈구 수치를 분석하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바이오시밀러의 초기 약효를 평가하는 업무였다.


몇 개월 뒤에는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생산 세포주를 새로 만들라’는 미션을 받았다. 바이오시밀러 유전자를 동물세포에 주입해 최고 효율의 세포주를 스크리닝 하는 매우 노동집약적인 작업인데, 다행히 기존보다 우수한 세포주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다음 과제는 무엇이었을까?

세포주를 만들었으니, 다음 단계는 당연히 그 세포주를 잘 키우는 일이었다. 그렇게 배양 공정까지 커버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그때그때 주어지는 일들은 모두 스팟성 업무였고, 나 역시 매번 수동적으로 임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분이었다.


그 결과, 세포주 제작 → 배양 → 분리,정제 → 동물실험까지, 랩 수준의 바이오시밀러 개발 전 과정을 경험하게 되고, 흩어져 있던 스팟 업무들이 꿰어져 ‘나만의 커리어’가 되어 있었다.


당시 가장 힘든 점은, 그 과정이 커리어로 이어질 거라 상상하지 못한 채 그저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공장의 기계’ 같은 마음으로 버틴다는 데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은 지금 R&D 리더로서 역할을 하는 내게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은 내 일을 내 의지대로 통제하기 어려운 환경일 수 있다. 하지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완수하다 보면, 그 결과들이 쌓이고, 그 결과를 잘 연결해 내면 결국 나만의 커리어가 된다.


반대로, 같은 환경에서도 동기를 잃고 업무에 등한시한다면 쌓일 결과도 없고, 꿸 커리어 자체가 남지 않는다.


주변 환경은 내 마음대로 바꾸기 어렵다. 하지만 그 환경에 대처하는 방식은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시간만 지난다고 ‘경력’이 되지는 않는다. 진짜 경력은 축적된 시간에 걸맞은 실력과 성과가 함께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오늘도 내일을 고민하고 있을 신입 분들을 응원하며, 나의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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