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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j Oct 04. 2019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고등학교

민족사관고등학교의 특별한 교육 방법

이 글이 속해있던 브런치 북  <AI 시대, 우리 아이 교육은?>을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https://wikibook.co.kr/aiedu/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우연이 필연이 된다든가, 생각하지도 않았던 조그마한 일이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하~!, 그것이 이렇게 인생의 중요한 씨앗이 되었구나." 하는 감회를 갖게 하기도 합니다. 큰 아들 같은 경우에는 우연히 알게 되어 가게 되었던 민족사관고등학교 (민사고)의 여름방학 영어캠프 (GLPS)가 그러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은 큰 아들이 어떻게 민사고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그곳의 언어 교육 방식의 특별함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민족사관고등학교의 영어캠프, 그리고 입시 준비


호주 생활을 마치고 들어와서 저는 아이들의 영어 실력 유지와 향상을 위해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지 항상 고민하며 정보를 찾아보고는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민사고의 여름 캠프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여름 방학 동안 4주간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영어 수업도 듣고 여러 가지 야외 활동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아이를 둔 부모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당시에 민사고는 창립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유명해졌었습니다. 아직 아이가 6학년이라 고등학교 입시에 대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던 때였지만, 여름 영어캠프를 보내면 좋은 체험이 되지 않을까 해서 등록했던 기억이 납니다.


캠프가 시작되는 날 입소를 위해 강원도 산골에 위치한 학교에 도착하니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에서 많은 학생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캠프 입소식을 할 때,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민사고의 특별한 영어 교육 방식이었습니다. 모든 영어 수업은 토론 (debate)와 발표 (presentation)으로 진행된다고 하였습니다. 매일 어떠한 주제가 주어지면 이에 대한 기사나 자료를 함께 읽고 공부하고, 그것을 토대로 본인의 의견을 돌아가며 발표하는 식이었습니다. 아직 어린 초중학생들에게도 이런 방식의 교육을 적용한다니 꽤나 놀라웠습니다. 캠프 첫날 우선적으로 아이들을 모두 영어 시험을 보도록 하여 나이와 관계없이 수준별로 반 편성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4주가 훌쩍 지나고 캠프의 마지막 날, 학교에서는 가족들이 모두 참관하는 공개 수업을 하였습니다. 수업은 여태까지 배웠던 주제 중 한 문제를 가지고 한 공개 토론이었습니다. 반 아이들을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한 팀에 한 명씩 논리를 설파하고 다음 주자는 반박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에 영어 잘하는 학생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모두 수준 높은 발표로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의 영어 실력뿐만 아니라 논리력과 사고력이 돋보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받았던 수업이 단지 언어만 배운 게 아닌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큰 아들도 그들과 함께 발표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 대견하였습니다.


다른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민사고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며 이것저것 챙겨 주며 멘토로서의 역할을 하여 주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형이나 누나 같은 졸업생들과 어울려 편안하게 교감을 하면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그들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캠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이가 자신도 멘토 형누나들처럼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그저 한복을 교복으로 입고 다니는 특이한 학교 정로로만 알았는데, 실제 경험을 해 보니 자신도 그런 학교에 다니면서 자유로운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교의 천연잔디구장에서 매일 축구를 하면 정말 행복할 거 같다더군요.


아이의 새로운 각오가 대견했기에 부모로서 캠프가 끝난 이후 중학교 3학년까지 입학시험 준비를 도와주었습니다. 민사고 입시는 생각 이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조금 달라졌겠지만 당시에는 높은 내신 성적뿐만 아니라 토플(TOEFL) 같은 영어 공인 성적과 민사고에서 주관하는 수학경시대회 참가, 자기소개서 등 여러 가지를 서류전형을 위해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2차 전형으로는 국어/영어 논술, 수학, 과학 등의 시험을 학교에 방문하여 다른 학생들과 동시에 치러야 했으며, 최종으로는 인성 면접과 체력테스트까지 봐야 했습니다. 전국에서 한 학년당 150명을 뽑는 치열한 경쟁이다 보니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학생들도 정말 열심히 노력했지만 이를 뒷바라지한 부모들도 정말 큰 노력이 필요했던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을 거쳐 결국 큰 아들은 민사고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민족사관고의 교육 방식


민사고는 각 반이 약 15명 정도로 구성되고, 매 교시마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연구실이나 배정된 강의실로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듣는 방식입니다. 또한 원칙적으로 국어와 역사 관련 수업 빼고 나머지 과목은 영어로 진행이 됩니다. 큰 아들은 해외 대학 진학이 목적인 국제반으로 지원했기에 더 많은 영어 수업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중 가장 어려웠던 건 영문학 수업이었다고 합니다. 매 학기 지정된 <호밀 밭의 파수꾼>, <주홍 글씨> 등의 클래식들을 영문 원서로 읽고 책에 대해 수업 시간에 토론을 하고, 과제로는 에세이도 많이 써야 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문학적 기법과 해석을 영어로 배우는 게 재밌기도 했지만 처음 해본 것이라 꽤나 힘들었다고 합니다. 영어 작문 시간에는 "명예는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미디어에서 검열은 필요한 것인가", "사진의 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등의 주제로 글을 쓴 후 익명으로 수업 시간에 돌려보고 같은 반 친구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연습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도덕 과목 시간 역시 단순히 교과서를 보고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국어 논술/토론 시간과 같았다고 합니다. 매주 어떠한 가치에 대한 지문을 읽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가는 것이 수업의 시작이었으며, 그것을 토대로 수업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심리학 시간에는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설문을 만들어 학교 내 재학생들을 조사하여 글로 써 발표해야 했고, 국어 시간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최인훈의 <광장> 등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했다고 합니다.


민사고 교육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학생 자치입니다. 조금은 특이하기는 하지만 학교 내에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따로 존재합니다. 행정부는 일반적인 고등학교의 전교 회장단과 비슷한 개념이었지만, 입법부와 사법부는 어느 학교에도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라 처음에는 저도 듣고 의아했습니다.


입법부의 존재 이유는 학교 예산의 일부인 학생회 예산 역시 학생들에게 위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 학기 행정부의 각 부서장이나 동아리 장들이 모여서, 축제나 특별한 이벤트에 대한 예산 심의를 합니다. 이 때도 많은 부분이 글과 말로 진행됩니다. 어떤 예산이든 모두 계획서를 써야 하고, 이를 토대로 입법부 회의에 가지고 가서 토론을 합니다. 큰 아들도 밴드 동아리 장이었을 때 다른 학교 학생들을 초청하여 같이 노는 음악제를 기획했는데 학생회의 지원을 받기 위해 이와 같은 과정을 지나야 만 했다고 합니다. 사법부는 선도부나 선생님들에게 학교 규정을 위반하여 벌점이 부과되었을 시, 이를 관리하기 위한 부서입니다. 억울하게 벌점이 부과됐으면 매주 열리는 법정에서 최후 변론을 할 수 있으며, 사법부 학생이 조사하여 최종 벌점이 부과됩니다.


민사고는 수업뿐만 아니라 생활 곳곳에 자신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해야만 하는 교육 과정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학교입니다.  


큰 아들도 3년 내내 정말 이렇게 글을 많이 써야 할 줄 몰랐다고 하면서 불평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대학교나 대학원을 갔을 때 비교적 수월하게 적응한 것이 고등학교 때의 이러한 경험 덕분이 아니었을까라는 말을 종종 하고는 합니다. (어쨌든 옛날이나 지금은 대학교 과제는 무언가 빨리 써내는 게 생명인가 봅니다.)


부모 중 한 명으로서 아들이 이러한 교육을 받은 것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교육 과정에는 이러한 학습 방식보다는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주가 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민사고 같은 방식의 교육이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무엇을 기억하거나 계산하는 것은 컴퓨터가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학생들은 좀 더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을 훈련해야 됩니다. 4차 산업혁명의 현재와 미래에는 우리 아이를 좀 더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진 아이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




**이 매거진은 브런치 작가 pj의 가족들이 함께 발행하는 가족 프로젝트입니다. 화자는 pj의 어머니로, 가족들이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풀어낼 예정입니다.


매주 포스팅되니, 꼭 매거진 또는 작가를 구독해주시기 바랍니다!



민족사관고에 더 자세히 알려면 다큐 3일 또는 위키 참고하세요.


민사고 여름 영어캠프:

http://camp.minjok.hs.kr/

**본 글의 학교 사진은 공식 홈페이지의 이미지를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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