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4년에 살고 나는 조금은 더 행복해진 거 같다
11살쯤 되는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자주 두리번거렸다. 혹시라도 얼굴에 눈곱이 끼지 않았을까, 양말을 짝짝이로 신지는 않았을까 등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걱정했다. 등교 길에도, 교실에도, 학원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다들 우리 엄마처럼 나만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나가다가 유리문이 있으면 잠시 비추어지는 나를 응시했고, 안도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랬던 아이가 커서 해외에 유학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계획에 없었던 홍콩이라는 도시로.
나는 막연하게 모든 홍콩 사람들이 영어에 유창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역사 만화책에서 홍콩은 영국 땅이었다고 읽었으니까. 하지만 홍콩에서 지낸 4년 동안 영어보다는 광둥어라는 생소한 언어를 더 많이 들어야 했다.
나는 거리에서 누가 나에게 소리를 질러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뉴스를 보아도 무슨 소식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떠한 관념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특히나 나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길이 없어서 답답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그토록 홍콩과 광둥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고, 나는 이에 대해서 짜증을 냈었다. 이 도시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것 같기도 했고, 나는 언제나 이방인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말이 완벽히 통하지 않는 도시에 온 선택은 잘 못된 것이 아니었을까 자책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렇게 부정적이던 나의 생각이 하루아침에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돌아간 한국에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이었다. 시끄러운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엄마와 딸이 미래에 대해 싸우는 이야기, 노인들이 하는 정치 이야기, 어린 고등학생들이 하는 입시에 대한 이야기. 귀 기울이고 싶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나의 신경은 다른 사람들의 말로 집중이 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나에게 너무 이질적으로 들려왔다.
그 날 이후 내가 한국에 있으면서 그동안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말과 생각들에 노출되어 살아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가족, 친척들이 나에게 하는 말, 인터넷에 올라오는 각종 기사와 글, 벽에 붙어있는 온갖 광고들, 버스에서 나오는 라디오 소리 등등. 나는 평생 이 흘러가는 모든 것들을 많든 적든 조금씩 흡수하고 있었고, 내 생각의 세포들은 이것들을 영양분으로 자라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홍콩은 정반대였다. 언어라는 장벽 덕분에 타인의 생각과 사회가 가진 일반적인 생각을 직접적으로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전보다 남이라는 존재에 둔감해져 가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하든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알아들을 수가 없구나. 이 사회의 통념을 내가 꼭 완벽히 따를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구나.
이를 깨닫고 나는 큰 해방감을 느꼈다.
아, 자유다. 홍콩이라는 해외에 있기 때문에 나는 조금은 더 온전히 나 자신이 될 수 있구나. 이렇게 나 자신을 만들어가면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도 나 자신을 더 지킬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불편함과 짜증으로 다가왔던 홍콩 생활은 나에게 큰 축복으로 다가왔다.
자꾸 두리번거리던 아이였던 나는 홍콩에 4년 살고 나서 조금은 더 행복해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