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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j Jul 23. 2017

홍콩의 여름을 걸으며

축축한 아스팔트와 시큼한 햇빛

덥다.


날씨가 스멀스멀 습해지더니 여름이 어김없이 왔다. 홍콩에서 여름을 전부 보내는 건 처음이라서 걱정했는데, 한국이 오히려 비도 많이 오고 덥다는 소식을 듣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기분이 든다. 


거리를 나다니다 보면 이마와 등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이제는 웬만하면 더 이상 습한 것에 짜증을 내지 않는다. 어서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에어컨을 발명한 사람은 노벨평화상, 노벨화학상, 노벨 의학상을 다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에어컨이 없는 세상은 생지옥이 따로 없을 것 같다.  


다만 건물 사이가 좁고 좁은 홍콩의 거리에서는 축축해진 아스팔트 바닥을 조심히 잘 보고 다녀야 한다. 에어컨에서 나오는 물 때문에 축축해진 아스팔트. 처음에는 이게 무슨 민폐인가 싶었으나 지금은 "에어컨 주인도 더워서 어쩌겠어" 하면서 잘 피해 다니게 되었다. 그저 여름이 왔구나라고 느끼게 해준다.


나는 참 간사한 게, 더울 때는 추울 때가 기억이 안 나고, 추울 때는 더울 때가 기억이 안 난다. 영하로 내려가지도 않는 홍콩의 겨울이 오면 춥다고 난리를 쳤었는데 정작 더위가 오니깐 빨리 시원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추워지면 햇빛이 반짝이고 해변가에 놀러 갈 수 있는 여름이 그립다고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과거라는 개념이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죽을 것 같이 괴로웠던 순간은 여러 번 있었지만 (군생활 같은), 지금 돌아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괴로워했었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한 때는 미친 듯이 보고 싶었던 사람을 떠올리면 그냥 맹맹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저 순간순간 단편적으로 나의 기억과 습관 속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혀 있을 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는 건 아닐까 싶다. 


축축한 아스팔트가 또 보인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난 잘 피해서 걸어갈 것이다. 여름이 지나고 날씨가 선선해지면 에어컨은 꺼지고 그 자리에 있던 물기는 햇빛에 잘 말라 감쪽 같이 없어지겠지. 


계속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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