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덕후#4 아이돌 생일 카페에 다녀왔습니다!
케이팝 아이돌 팬덤은 덕질의 선두주자입니다. 팬들은 아이돌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계속 찾아내는데요. 생일카페도 그 중 하나입니다. 생일카페(생카)는 아이돌의 생일을 기념해 일정 기간 동안 대관한 카페를 사진이나 관련된 소품으로 꾸미고 그곳에 모여 함께 아이돌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인데요. 이 '홍철 없는 홍철팀'같은 축하자리에 비록 생일자는 없지만 생일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팀을 이뤄 생일을 즐기는 것이죠!
생일카페는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문화인데요. 케이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생카 문화도 함께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비교적 가까운 일본에서도 아이돌의 생일을 축하하는 컨셉 카페가 열리고 있는데요. 일본에서는 생일카페를 음차해 센이루 카페(センイルカフェ)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일본어로 생일을 의미하는 '오탄죠비' 카페가 아니라 센이루 카페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생카 문화의 원산지가 한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비교적 먼 미국 LA에서도 '컵홀더 이벤트 (Cupsleeve event)' 라는 이름으로 아이돌의 생일을 기념하는 카페 행사가 자리하고 있죠.
생카 문화가 활성화되며 아이돌뿐만 아니라 게임부터 애니메이션까지, 각종 캐릭터들의 생일 카페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슬램덩크 열풍이 분 후 슬램덩크의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한 각종 카페가 눈에 띄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지난 4월 열린 주인공 강백호의 잠실 생일카페는 꽤 본격적이었습니다. 강백호의 생일을 맞아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강백호의 모습을 담은 앨범을 전시하는 컨셉의 갤러리형 카페가 운영되었는데요. 여러 작가님들의 협력으로 만화에는 없는 갓난아기 백호, 처음 유치 뺀 날의 백호 등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죠! 카페를 운영한 트위터 계정에서 카페 오픈에 앞서 카페에 방문할 인원을 조사했을 때 299명이 투표에 참여할 만큼 생카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아이돌 생카는 종종 생일자인 아이돌이 직접 방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 생카의 경우 그런 일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이 행사의 의미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게 됩니다.
아이돌 생카는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와 팬들의 이해관계가 맞으며 더 활성화 될 수 있었는데요. 국내외를 막론하고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자영업자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가운데 확산된 생카 문화는 자영업자들의 구세주였는데요. 자영업자들은 저렴한 가격 또는 무료로 카페를 대관해주는 대신 생일카페 진행 기간 동안 발생하는 음료와 디저트 판매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생카에 방문하는 팬들의 경우 일반 카페의 고객보다 지불의사가 높습니다. 특히 생카에서만 받을 수 있는 포토카드, 키링 등의 특전을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열곤 하죠. 그렇기에 생카는 팬들에게도 자영업자에게도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생카가 한국을 넘어 세계로, 아이돌 산업을 넘어 각종 콘텐츠 산업으로 뻗어나가고 있는데... 저는 막상 한번도 생카에 가보지 않았다는게 아쉬웠습니다. 기회를 노리던 중 더보이즈의 팬인 친구에게 8월 더보이즈 '영훈'의 생일카페에 함께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우악!! 지금부터는 제 첫 생일카페 동행경험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제가 처음 방문한 생일카페는 합정역 부근에 위치했는데요. 합정역에 내리는 순간부터 아이돌, 트로트 가수, 버츄얼 인플루언서, 게임 캐릭터의 생일을 축하하고 안녕을 기원하는 수많은 전광판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길거리에 나서자 현수막과 X배너가 눈에 띄었습니다. 가게를 홍보하는 것 같진 않은데 이상할 정도로 디자인이 멋진 X 배너가 있다? 그건 모두 우리의 언니, 오빠, 동생들의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구조물들이었습니다. 다른 거리에서 발견했으면 어색했을 현수막과 배너들이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인 마포구 홍대거리에 위치해 있으니 오히려 동네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로 느껴졌습니다.
오프라인 덕질이 온라인 덕질에 비해 지키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연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덕질은 내가 보고싶은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이 모여 알고리즘이라는 길이 생겨납니다. 그 알고리즘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보고싶은 것을 보고싶은 만큼 연속적으로 즐길 수 있죠. 이 연속성이 가져다주는 몰입의 경험이 오프라인에서는 보장되기 어렵습니다. 지난번 다녀온 광교의 게임카페에서는 카페 안과 밖의 분위기가 크게 달랐습니다. 그렇다보니 카페 안에서의 경험이 순간적인 몰입을 가져다주기는 했지만 그 기분은 카페 공간 안에서만 머물렀습니다. 카페를 벗어나는 순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느낌이었죠. 반면 홍대거리는 거리 전체가 생카 문화, 덕질 문화에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카페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부터 카페에 들어선 후의 경험 그리고 카페에서 나선 이후까지 좋아하는 사람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가 여기 모였다라는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죠!
저희는 총 3곳의 생카를 다녀왔는데요. 생카는 일정 기간동안만 운영되다 보니 한번에 여러 곳을 들리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카페에서도 다른 카페에서 마주쳤던 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고 5개 이상의 컵홀더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 곳의 카페를 가도 재미가 있는 이유는 생카마다 컨셉이 다르기 때문인데요. 같은 아이돌의 생카더라도 기획자가 아이돌의 어떤 면에 주목했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저희는 햄(@myhamhoon1)님이 주최한 '꽃보다 F3' , 일수훈(@ilsoohoon)님이 주최한 '빵담빵담', 랑(@jellyhoony)님이 주최한 '영훈이의 비밀장소' 생카에 다녀왔습니다.
세 카페는 영훈의 다른 모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카페는 꽃보다 남자에서 컨셉을 가져와 영훈뿐 아니라 더보이즈의 두 명의 멤버를 함께 F3로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꽃보다 남자라는 컨셉에 맞게 카페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느낌으로 꾸며져 있었고 일본 잡지에 나온 더보이즈 멤버들의 사진을 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카페는 첫번째 카페와는 전혀 달리 '나쁜 남자'라는 컨셉으로 떼인 빵담빵담(쓰담쓰담)을 받아내는 영훈의 사무실 공간을 카페로 구현했죠. 팬들의 사랑을 뜯어내는(?) 사랑의 일수꾼이라는 컨셉이 명확했기에 이 공간은 더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일수꾼의 사무실에 있을 것 같은 소품들이 카페에 가득했고 버블 메시지와 같은 팬들과의 소통 기록은 빵담업무일지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어 있었죠.
마지막 카페는 '영훈이의 비밀장소'라는 이름으로 영훈이 고등학교 재학시절 시간을 보냈던 공간들을 구현한 카페였습니다. 고등학생 영훈에 집중하다 보니 이 카페에선 영훈이 교복을 입은 모습을 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카페 분위기도 앞선 두 카페와 달리 파릇파릇하고 생기있는 느낌이 강했죠.
이처럼 한 아이돌을 축하하기 위한 카페도 생카 주최자가 아이돌의 어떤 매력에 주목했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상을 남깁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공식 인풋입니다. 아이돌이 지금까지 한 무대, 화보, 각종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모습 등을 기반으로 생카를 구성할 2차 가공물이 제작되기에 인풋이 많은 아이돌만이 다양한 아웃풋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죠. 이처럼 얼마나 다양한 생카 컨셉이 존재하는가는 곧 아이돌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팬들에게 선보였는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생카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지금 생카의 다양성이 아이돌의 미디어에서 얼마나 활발히 그려지는가에 대한 지표로 자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 LA에서 생카가 Cupsleeve event 라고 불리는 이유는 생카에 가면 아이돌의 사진이 들어간 컵홀더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돌 팬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생카 문화가 좋아하는 스타에게 커피차를 보내는 일에서 출발하였다 보니 컵홀더에 아이돌의 이미지를 넣는 형태로 출발한 것 같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의 생카에서는 아이돌의 이미지가 새겨진 컵을 받을 수 있었는데요. 생카에서는 이 컵에 음료를 담아먹지 않는다는 점이 재밌었습니다. 이 컵은 따로 챙기고 별도의 병에 담긴 음료와 얼음컵을 받을 수 잇었죠.
컵 이외에도 여러 특전, 특별한 선물들을 받을 수 있는데요. 음료만 구매하면 받을 수 있는 특전부터 디저트 세트를 구매할 경우 받을 수 있는 특전, 선착순으로 받을 수 있는 특전, 랜덤 특전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오직 그 생카에서만 받을 수 있는 선물을 제공합니다.
특전 외에 또 팬들의 지갑을 열게하는 이벤트로는 럭키드로우가 있습니다. 신발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럭키드로우가 익숙하실 수 있는데요, 바로 경품 추첨입니다. 팬들은 드로우권을 구매하고 추첨을 통해 자신의 드로우권이 뽑힐 경우 해당되는 상품을 선물로 받을 수 있죠! 기본 특전에 비해 더 특별한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카페마다 럭키드로우의 인기가 상당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카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 동행이 있는데요. 저는 아쉽게도 동행은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X(전 트위터)에서 생카와 관련된 게시글을 살펴보면 동행을 구한다는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행의 조건이 꽤 구체적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는데요. 나이부터 꾸미고 오는 정도까지 동행 조건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눈에 띄었습니다. 더불어 동행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같은 아이돌을 좋아하기에 기본적으로 서로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가진다는 점이 덕질이 가지는 연대의 힘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이돌 팬덤의 경우 다른 팬덤에 비해 함께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콘텐츠에 따라 팬덤이 유대감을 느끼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도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아래의 3가지를 느낀 첫 생카 체험이었습니다.
(1) 아이돌 팬덤 문화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터를 잡고 있다
(2) 인풋이 많은 아이돌일수록 다양한 컨셉의 생카를 아웃풋으로 낼 수 있다
(3) 생카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이 명확히 있다
아이돌 생카 주최자들은 음료와 디저트 판매수익이 모두 카페 주인분께 돌아가기에 막상 생카로 수익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아이돌에 대한 사랑으로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일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자체적으로 생카를 연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한 번 덕후들은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도 언젠가 생카를 꼭 열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