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를 잘 다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마케터는 광고 매체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닙니다. 광고 매체'도' 잘 다루는 사람이죠. 퍼포먼스 마케팅 효율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메타, 구글 등의 광고 매체는 고객을 효과적으로 만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도구에 문제가 있다면 모든 브랜드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문제일 겁니다. 도구의 기능이 좀 약해졌다 해도 여전히 채널 자체는 많은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임에는 틀림없고요. 사람들이 몰리는 새로운 공간이 생기면 그에 맞는 좋은 도구는 또 생겨날 겁니다.
마케터의 궁극적인 목표는 매출 향상을 통한 기업의 성공입니다. 도구를 통해 고객들을 많이 모으기만 한다고 기업의 매출이 오르진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마케터들이 상품을 매력적으로 소개하는 페이지, 즉 메시지를 다듬는 데에도 열중합니다. 여기까지 하면 매출이 오를까요? 몇몇 기업은 확실히 성과가 개선되긴 합니다. 제품의 장점이 경쟁 제품에 비해 명확한 경우 고객의 관점에서 이를 잘 표현만 해줘도 큰 폭으로 성과가 개선됩니다. 문제는 '그 성과가 길게 이어질 수 있느냐'겠죠. 더 좋은 가격, 더 좋은 스펙의 제품은 언제든 등장할 수 있으니까요.
좋은 제품과 서비스 자체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고객 입장에서 '쓰기에 괜찮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마케터는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냉철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쓰기에 괜찮은 브랜드를 넘어 쓰고 싶은 브랜드가 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죠.
이런 고민에 도움이 되는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마케팅이나 브랜딩에 대한 책을 쓰시는 저자분들이 이미 많이 언급하셨던 질문들입니다. 이제는 규모가 작은 브랜드들도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장 대답하기 어렵다면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일을 설계해 하나씩 해나가야 합니다. 마케터 혼자서 전부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마케터와 대표님을 중심으로 모든 직원들이 동참해야 합니다.
브랜딩이나 마케팅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질문이 좀 '추상적이다'라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브랜드들의 성공 사례를 다룬 글들을 참고해 가상의 답변도 함께 적어봤습니다.
여러분의 브랜드는 아래 질문에 답할 수 있나요?
제공하는 표면적 제품, 서비스 너머에 브랜드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있는가
그 가치를 위해 브랜드는 어떤 노력을 했는가
기존 고객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노트 브랜드 '몰스킨'의 대답]
우리는 '노트'를 팝니다. 하지만 몰스킨은 이 노트를 '아직 쓰이지 않은 책'으로 정의합니다. 우리가 만드는 건 단순한 노트가 아니라 '곧 당신의 인생이 담길 책'이라는 뜻이죠.
몰스킨은 문구점이 아니라 서점에서 판매합니다. (=추구하는 가치를 판매 채널에 반영) 모든 몰스킨 노트에는 국제 표준 도서 번호가 부여됩니다. (=추구하는 가치를 제품에 반영) 여러분의 영감과 기록은 곧 한 권의 책이 될 거니까요.
고객들은 몰스킨을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등 유명 예술가들의 노트라고 지인에게 소개합니다. 평범한 노트에 비해 몇 배는 비싸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구매합니다. 이 노트에 적는 나의 영감은 가격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까요. (=고객의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
[병원 브랜드 '메이페어'의 대답]
우리는 '의료 서비스'를 판매합니다. 하지만 메이페어는 '환자에 대한 공감'을 최우선 가치로 여깁니다. 우리는 그들의 신체적 회복은 물론 마음의 회복을 돕기 위해 병원을 운영합니다.
메이페어에서 환자는 접수 데스크 너머에 방치되지 않습니다. 방문하기 전 직원의 친절한 전화를 먼저 받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면 따로 준비된 '환영 공간'에서 내 상태를 알고 있는 직원의 마중과 환대를 받습니다. 마치 호텔, 백화점에 온 것처럼 따뜻한 눈 맞춤과 환영의 인사를 경험합니다. (=추구하는 가치를 서비스 매뉴얼에 반영)
고객들은 소중한 지인에게 의료 서비스가 필요할 때 메이페어를 자신 있게 권합니다. 직원들의 따뜻한 환대는 환자의 질병뿐 아니라 불안했던 마음까지 녹여준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고객의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
공통점이 보이시나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잘 팔리는 브랜드들은 제품과 서비스 그 자체의 퀄리티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브랜드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 의미를 고객도 똑같이 느낄 수 있도록 구체적인 행동을 합니다. 판매할 장소를 제한하고, 다른 곳에서는 하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설계합니다. 애쓰지 않아도 브랜드의 이야기가 더 널리 퍼질 만큼의 준비를 끝마친 후에 고객을 맞이합니다.
고객이 알아챌 만큼 추구하는 가치가 명확한 브랜드와 가격대비 스펙이 좋은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 두 브랜드 중 어느 브랜드가 더 오래 살아남을까요? 단기적인 판매량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두 브랜드가 각기 다른 고객의 필요에 의해 함께 공존할 수도 있죠.
시간이 지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싸고 좋은 노트는 어느 기업이든 만들 수 있습니다. 자본이 많다면 어떻게든 기존의 '싸고 좋은 노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몰스킨'의 자리는 쉽게 넘보기 어렵습니다. 처음 보는 브랜드가 몰스킨의 이야기를 하는 순간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할 테니까요.
'뭐야. 얘네 몰스킨 따라 하네.'
도구를 다룰 줄 아는 마케터는 많습니다. 누구든 배울 수 있으니 언제든 대체될 수 있겠죠. 하지만 브랜드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기획해 실행하고, 결국 고객이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일은 어렵습니다. 고객이라는 인간을 깊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더더욱 어렵죠. 지금의 마케터가 인간미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본인 스스로가 따뜻한 인간이 되지 않으면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릴만한 경험도 설계할 수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만의 대답을 적어보세요. 여러분의 브랜드는 무엇을 팔고 있나요? 여러분의 일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그걸 고객들도 느끼게 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했나요? 기꺼이 소문내고 싶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