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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유

삶의 이유를 찾는 여정, 그게 인생이다.

by 지구별여행자



어린 시절의 나는 좀 특이한 아이였다. 난 어린 시절 내내 세상의 모든 것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부모님도 형제들도 심지어 친구들도 모두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세상의 중심에는 나라는 자아가 있었고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돋보이게 위해 존재하는 조연쯤으로 여겨졌었다. 영화 <메트릭스>의 세상처럼 모든 것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미리 프로그래밍이 된 가상의 공간이었다. 나에게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 따위는 필요 없었다. 세상의 중심이 나였으니까.


중학생이 되면서 그런 나의 상상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더 이상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을 때 내가 받았던 충격은 엄청났다. 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어느 날부터인가 말 수가 줄어들었고 같은 반 친구들은 나에게서 거리를 두었고 선생님들은 나를 문제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원래의 활발했던 나의 성격으로 돌아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던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은 더 이상 나에게 충격적이지 않았다. 난 그저 꿈에서 깨어나 현실 세계로 돌아왔고 나름 그 현실 세계에 적응을 잘하고 있었다.


최근까지 특별히 난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않아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너무 당연하게 나를 지탱해 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출근길 운전 중 뒤에서 달려오던 차가 내 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나면서 의도치 않게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그때 난 나에게 나는 왜 살아가고 있을까? 난 왜 이 세상에 온 걸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고 그저 그런 질문을 하는 나 스스로에게 난 되려 이렇게 되물었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충분히 산 것 같은데.."


충격적이었다. 내가 나 스스로 이런 말을 하고 있다니 특별히 우울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란 사람은 대체적으로 굉장히 밝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말이다.


그렇게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또 대답을 하고 또 질문을 하면서 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찾아야 하는 게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을 차츰 이해하게 되었다.


학생이었을 때는 공부하는 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직장에 다니면서는 돈을 벌고 승진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잘 기르고 가정을 보살피는 게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적어도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따른다면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살아온 이유였고 또 앞으로 살아갈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람이라면 어떨까? 더 이상 학생도 아니고 좋은 대학을 졸업해 좋은 직장을 가서 적당히 자신과 사회적 지위와 재산 상태가 비슷한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라면 더 이상 삶의 어떤 이유가 있을까?!


얼마 전 인기 프로그램인 <동치미>를 보다가 누구보다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고 가정에서도 아이들을 잘 키워 낸 여성이 나와서 한 말에 충격을 받았다. 내가 충격을 받은 건 그녀가 느끼는 감정을 나도 느껴왔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고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하고 누가 봐도 부러운 가정을 가진 여성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는 게 놀라웠다. (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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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소영 변호사, 사회적으로 성공한 변호사이며 세 아이의 엄마:


"얼마 전에 제가 그냥 침대에 이렇게 누워있는데 갑자기 저도 모르게 평소보다는 다른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 정말 여기까지 이렇게 열심히 왔으니까 이제는 그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 제가 이번에 드는 생각은 내가 이러다가 정말 이 생각이 더 심해지고 이게 정말 행동에 옮겨지고 싶어지는 때가 오면 어떨까?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그런 생각이 더 들었어요 잘 모르겠는데 이게 나이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그동안 다 그냥 잘못해온 게 아닌가.. 제 딴에는 정말 죽어라 살아왔는데.. 남편한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는데 위로해 주지 않더라고요..."


심리상담자:


여태까지 너무 잘 해왔지 잘 살아왔지 잘 살아왔는데 인생이란 게 계속 잘 될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얼마 전 또 다른 성공한 여성이 같은 프로그램인 <동치미>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해서 다시 한번 놀랐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정도면 많이 산 것 같다.”



그 둘의 공통점은 성공한 전문직 여성들이고 성공한 결혼,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여겨지는 여성들이라는 거다.


이 프로그램의 주제는 <갱년기>였지만 난 그녀들이 그런 감정을 느끼는 이유가 갱년기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나 또한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그런 생각을 했고 그게 갱년기라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그냥 말 그대로 솔직하게 그런 거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정도면 많이 산 것 같다." 20대가 이런 말을 하면 좀 이상하게 여겨지겠지만 40대 50대 정도 되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른다. 난 30대 후반에 이런 생각을 했는데 대체적으로 40년 가까이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인생에서 목적이 있는 삶이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에게 인생의 목적이 없다면 우린 이러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목적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 점 희미해져 가기 때문에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내면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사회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왔다면 이제는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설계해 나가면 앞으로 남은 인생이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에서 "너무너무 살고 싶다. 살아있다는 게 축복이다"로 변화해 나갈지 모를 일이다.


인생에 실패가 없다면 성공도 없다. 아마도 이 두 전문직 여성은 성공한 삶을 살아 내기 위해 부단히 도 애를 썼을 것이다. 억지로라도 강한 모습을 보여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실패를 했지만 결국 극복하고 그 자리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인생에 실패가 없다면 성공도 없다. 겉으로는 어려움이라고는 조금도 겪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도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과 경험하고 성공이라는 왕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왕관을 언제 내려놓아야 하는지 그조차 알 수 없는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실수를 통해 배워가고 성장한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해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고민하고 찾아본 사람이라면 우리 삶이 실수 투성이고 그 실수를 끊임없이 수정함으로써 성장한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아주 사소한 행동을 통해서도 잠시 마주치는 사람을 통해서도 우린 삶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게 이 세상에 우리가 존재하는 소명인 것이다.


사랑도 헤어짐도


태어남과 죽음도


모두 우리가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 중 일부일 뿐이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삶의 목표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정하기만 해도 당신의 살아가는 이유는 충분하다.

난 그렇게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수고했어요. 이 힘든 삶을 살아내느라. 당신만 겪는 고통도 아픔도 아니에요. 인생의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앓아 내야만 하는 독한 감기 같은 거예요. 누군가에게 고생했다 잘 살았다 그런 말 들으려 할 필요 없어요. 당신 자신에게 해 주세요. 그 말은.."


"소영아 잘 살았다 그리고 고생했다. 앞으로 소영이 너를 위해 살아볼게"라고


우리 모두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게 다른 이로부터 위로받는 것보다 더 값지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리고 내가 위로받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그 사람을 위로해 주세요.


"고생했다. 그리고 정말 잘 살았다."


그럼 분명 그 상대도 당신을 위로해 줄 거예요.


당신의 인생을 응원합니다.



picnic-1208229_1920.jpg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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