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국어활동에 엄마, 아빠 이름을 쓰는 활동이 있다. 미리 숙제를 내주시는 분, 아동 명부를 한줄한줄 잘라서 아이들한테 나눠주신 후 보고 쓰라는 꼼꼼한 선생님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아동 명부를 잘라서 나눠줘 봤는데도 글씨가 안 보이는지 그렇게 내가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물어보는 아이들이 많아 이번에는 준비를 안 했다. 좀 크게 확대해서 나눠줬음 될 일인데 거기까진 정성을 기울이지 않았다. 1학년을 맡은 첫 해에는 아무리 한글을 잘 몰라도 부모님 이름은 다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고 수업을 임했는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부모님 성함도 잘 모르고 못 쓰는 아이들이 꽤 되어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올해에는 내려놓음을 선택했다. 그래도 둘 중 한 명은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부모님 성함 두 분 다 모르는 사람은 한 분 이름만 쓰세요."라고 말이다. 이 방법은 한 부모 가정 아이들에게 상처가 덜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분만 써도 된다고 했는데 아이들은 빈칸을 남겨두기 싫은지 나에게 훈 어떻게 써요? 원 어떻게 써요? 질문을 한다. 아 그냥 명부를 확대해서 잘라서 나눠줄 걸 그랬나 보다 후회가 밀려왔다.
마스크를 썼기 때문에 묻는 아이의 발음이 정확히 들리지 않는다.
"필?" "아니요?" 다시 아이가 말한다.
"텔"고개를 끄덕이길래 나는 텔자를 적어주었다. 속으로는 '텔자가 왜 필요하지? 텔자를 적고 싶은 공간이 있나?'아리송했지만 아이는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중에 나는 마음속으로 큰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가 아버지 이름을 김윤텔이라고 적어왔다. 내가 학창 시절 했던 PC통신 이름, 하이텔도 아니고 아버지 이름에 떡하니 김윤텔이라니, 그런 이름이 존재할지는 모르나 나는 아버지 성함이 태일 것 같다고 말한 뒤 태자로 고쳐 주었다. 확인해보니 김씨만 맞고 가운데 윤자는 아니었고 끝에 글자는 태자가 맞았다.
또 우리 반 똘똘한 여자 아이는 아버지 이름에 지서비를 적어왔다. 나는 그 아이의 오빠도 안다. 내가 가르쳤다. 오빠보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긴 하지만 우리 반 여자 아이도 제법 똘똘하다. "너도 송 씨고 오빠도 송 씨라 아버지 지 씨 아닐 텐데. 송 씨 아닐까?" 물어봤지만 여자 아이가 너무 확고한 표정으로 지서비가 맞다고 말해서 나는 그냥 넘겼다. 확인해보니 아버지 성함은 송@섭이었다. (다음날 확인해보니 아버지의 유튜브 닉네임이었다.) 숙제를 내주는 것을 지양하는 선생이지만 오늘은 꼭 가서 부모님 성함을 알아오고 집에서 적어보라고 했다. 웃픈 날이었다.
1학년 학부모님들께 알려드립니다. 아이의 국어활동 책을 보고 자신의 이름이 빈칸으로 되어 있다고 해도 놀라지 마세요. 제가 8 학군의 교사가 아니라 그러한지 모르나 생각보다 많이 못 씁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우리의 어린이들은 기를 쓰고 알려고 했습니다. 마스크로 의사 전달이 안 될 뿐이었어요. 그리고 혜자 해자 련자 원자등 복잡한 모음과 받침을 갖고 계신 부모님들 너무 섭섭해하지 마세요. 아직 아이들에게는 받침과 이중모음이 쓰기 어렵나 봐요. 이런 모든 상황이 견디기 힘드신 분은 교과서가 바뀌면 모르겠지만 입학하기 전 부모님 성함 쓰는 것은 연습시켜서 보내면 되겠습니다.^^ 그럼 교사도 조금 편할 것 같긴 합니다.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1학년 담임교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