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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진 Feb 12. 2024

기억의 기억들 서평

한 편의 문학이 탄생하는 과정에 동참하다


Sub 1. 기록과 문학의 차이


구원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보존'은 그 지지대를 잃고 한낱 그럴싸한 기록보관소에 지나지 않게 된다. 박물관이나 도서관처럼 조건부의 제한된 형태의 불멸, 즉 해방의 새로운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또 다른 형태의 영원한 생명인 길게 연장된 하루를 제공하는 기억 저장고. 기술 혁명은 잇따라 그런 디지털 창고의 출현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인류의 언어에서 '가능한'은 이미 '필요한'을 의미한다.
- 기억의 기억들 중


옛날에는 남에게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겸손은 최고의 덕목이었고, 기록은 힘 있는 사람의 특권이었다. 우리나라만 해도 민담 사설이 아닌 이상에야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 굵직한 역사적 기록만이 존재한다. 개인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위인이 아닌 이상에야 찾아보기 힘들다.

그 이유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가 이 책에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한 말을 보자.


그들은 자기 내면의 기억이 아니라 외부의 신호에 따라 타인의 글을 신뢰하면서 외부에서 들어온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기억 자체가 아닌 기억을 떠올리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 기억의 기억들 중


기록은 사실만이 아니라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과정에서 미화되고 와전된다. 그러므로 기억에 대한 기록은 자기만 아는 주관적인 사실일 뿐이고 믿을 만한 사실이 아니다. 굵직한 역사적 사실수만 가지의 미검증된 가지가 뻗어간다. 플라톤은 이런 기록을 혐오한다고 말한다. 마치 소문에 소문이 붙어 전해지는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플라톤에게 증거가 없는 기록은 참을 수 없는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었나 보다. 하지만 독자는 플라톤이 혐오한 기록을 문학이라고 칭하고 사실적인 기록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윤뒤에서 설명하겠다.


다시 돌아와 현대에는 많은 기술 발전이 있었다. 기록의 형태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직접 적는 방식에서 음성 녹음, 사진, 동영상 등 기록의 형태는 다양해졌다. 기록의 시대이다. 기록의 시대가 열리면서는 우리 모두가 불멸한 존재가 되었다. 누군가의 어렴풋한 기억이 아니라 종이와 브라운관 안에서 확실히 평생 살아 숨 쉰다.


사진 촬영의 논리는 우리 후손들이나 외계인을 위해 인류의 증거로 가득 채운 타임캡슐을 준비하는 것과 유사하다.
-기억의 기억들 중

 

이제 기억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남는 시대다. 사람의 입으로 와전될 일은 없으며, 누가 봐도 객관적인 증거 남는다. 여기에는 문학은 없고 오직 기록만이 존재한다.


천대의 CCTV 카메라가 쉴 새 없이 우리의 외형을 긁어댄다. 이건 마치 법의학이 출현하기 전까지 인류가 어디에나 남기고 다닌 지문과 같다.
-기억의 기억들 중



Sub 2. 기록에 대한 문학의 역할 - 1


이 책의 전개방식은 독특하다. 흔한 전개 방식인 서술, 묘사, 대화, 독백의 방식과는 결이 다르다.

한 가지 방식을 고집스럽게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저 모든 기록의 형태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의 어린 시절 사진첩을 보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기분이 든다. 가본 적도 없는 러시아를 여행하는 기분과 러시아 혁명, 세계대전, 소련 시대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것이 실제 기록과 문학이 다른 점이다.


일기를 통해 고모의 일평생 독백을 단 몇 분으로 생생하게 느낀다. 단지 독백이 아니라 일기라는 기록 매체를 통해서 그런지 더욱 생생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서로를 위한 애틋한 감정을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느낀다. 괜히 가슴이 설레어 심장이 벌렁거린다. 그 밖에 사진을 통해서도 어떤 사건이 있었음을 짐작하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과정이 전래동화나 설화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것이 문학이다.


 포스트 메모리 텍스트의 아카이브 사진은 언제나 변형된 형태로 나타난다. 잘리고, 확대되고, 다른 이미지에 투사된다. 재구성되고, 맥락에서 벗어나거나 새로운 맥락을 덧입는다. 그리고 새로운 텍스트와 새로운 이야기 속으로 옮겨진다.
-기억의 기억들 중


책의 p.121에 나를 확 이해시켜 준 문장이 있다.

"그것들은 원래 날 것 그대로는 먹을 수 없기에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신중하게 다듬고 손질해야 비로소 입에 넣을 수 있는 음식과 같다."

실제 역사적 기록은 굵직한 사건을 알려주지만, 문학은 그 과정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교훈을 알려준다.



Sub 3. 기록에 대한 문학의 역할 - 2


억압의 시대는 존재했다. 그 시대에는 나의 사상을 숨겨야 했고,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건 자살 행위였다.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한국전쟁 영화에서도 나온다. 쌀을 받기 위해 공산당원 가입 신청서를 썼다가 그게 빨갱이라는 낙인이 되어 목숨을 잃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에는 이런 현실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 반역에 해당되는 죄였다. 그건 소련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치 재판, 추방 및 처형을 생생한 사실로 기록하는 건 자살 행위다. 하지만 문학은 가능하다. 작가가 느낌 감정을 문학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달이 가능하다. 그 당시의 참상을 작가의 생생한 표현력으로 담아낸다.

일제 강점기를 살아간 우리나라의 많은 시인들도 처참한 심정을 생생하게 시로 옮겨놓았지 않은가.

억압의 시대에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톨스토이가 밝히지 않은 부분은 이러한 증언의 매력, 즉 구문을 그토록 생생하게 만들고 단어의 선택을 그토록 정확하게 하는 건 바로 강요와 압박이라는 사실이다. 그건 자유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고통의 결과이다.
-기억의 기억들 중


글뿐만이 아니다. 자화상으로도 생생한 감정을 남겼다. 이걸 잘했던 화가가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이다.

렘브란트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했고, 그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그 시점의 상황을 정교하게 표현하기로 유명했다. 그런 심리적인 표현을 통해 관람자가 작품의 캐릭터에 더 깊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관찰을 통해 수많은 감상평이 탄생한다. 나는 이걸 관찰 일기 문학이라고 평하고 싶다.


화가의 대상이 단순히 정지된 형태의 '나-결과'가 아니라 변화해 가는 '나-움직임' 으로써의 '나'가 되는 첫 번째 사례일 것이다.
-기억의 기억들 중



Sub 4.  문학이 탄생하는 순간에 동참하다


역사학자인 박물관 고문은 나에게 무엇을 쓰는지 물었고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아, 작가가 자기 뿌리를 찾아 전 세계를 여행하는 책 중 하나로군요. 지금은 그런 책이 많이 나오지요."라고 말했고 나는 "네, 그런 책이 한 권 더 나올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 기억의 기억들


이 책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문구가 아닐까 싶다. SNS의 발달로 클릭 한 번이면 나의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시대에서 오래된 사진과 편지, 엽서, 일기를 통해 가족의 역사를 파해쳐간다. 그리고 책의 제목과 같이 오래된 기억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한 편의 문학이 탄생하는 순간을 함께한다.


캐릭터 옆에서 함께 여행을 하고, 함께 퍼즐을 맞춰간다. 그리고 한 편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낸다. 유튜브 숏츠와 릴스와 같은 짧은 호흡이 난무하는 시대에 긴 호흡을 고집하는 레지탕스가 된 기분이 든다.


제목 '기억의 기억들'은 이 책의 내용과 정말 찰떡이다. 기록된 기억을 기억해 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억이 누적된다. 또 그 기억들은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기록되며 한 편의 문학이 완성된다. 이 아름다운 과정을 단 6글자로 표현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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