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에 대한 단상
당신의 삶에서 진심으로 행복했던 마지막 순간이 언제였나요?
미국 CMTV의 드라마, <크레이지 엑스 걸 프렌드(Crazy Ex-Girlfriend)> 시즌1, 1화에 등장하는 한 크림치즈 광고회사의 캐치 프레이즈다. 주인공 레베카 번치는 뉴욕의 대형 로펌에서 승진 제안을 받은 날, 저 광고 문구를 본다. 그리고 거의 즉흥적인 결정으로 거액의 연봉과 약속된 명예를 뒤로 한 채 캘리포니아 웨스트코비나로 떠난다.
뉴욕 중심가에서 일하던 레베카가 워싱턴 DC도, 보스턴도 아닌 캘리포니아 소도시를 택한 것은 그곳이 마침 그날 우연히 만난 조쉬 챈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과거 레베카와 조쉬는 연인이었다. 하지만 이는 10년 전 이야기로, 심지어 조쉬는 레베카를 '너는 이상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드라마틱하다'고 평가하며 이별을 통보했다. 그런데 10대 시절의, 다정하지도 않았던 첫 남자친구를 쫓아 이제 와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바꾼다고?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이 행동의 이
유는 레베카가 정말로 시리즈의 제목처럼 '정신나간 전여자친구'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혹시 레베카에게는 조쉬와의 여름학교에서의 추억이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행복했던 순간'이기라도 했던 걸까? 그래서 그 행복의 기억에 매달리는 건가? 혹은 그녀는 단순한 강박증일까? 모든 사랑의 역사가 잘못되기 시작했다고 가정되는 첫 단추부터 다시 꿰매고 싶어하는? 이도 저도 아니라면 단순히 ‘이상하고 드라마틱하다'는 자신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든 뒤집고자 하는 인정 욕구에 불타고 있는 걸까? 조쉬와의 관계를 복구함으로써 과거의 실수와 실패들을 청산하려고?
조쉬를 다시 만나서 그녀가 얻고자 하는 것은 정녕무엇이란 말인가?
도대체 왜 캘리포니아 웨스트코비나이며, 왜 조쉬 챈이어야 하는가?
시리즈는 위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 어떠한 명확한 대답도 제공하지 않은 채 진행된다. 정말은 레베카 본인도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해답을 알지 못한다. 모호한 희망으로 눈을 가린 채 그저 반복적으로 거짓된 대답을 꾸며낼 뿐이다.
"왜 친척도, 연고도 없는 곳에 갑자기 이사왔냐고요? 여기서 정말 좋은 직장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웨스트코비나는 뉴욕 같은 번잡한 동네와는 달리 살기 좋은 동네잖아요. 차로 두 시간이면 바다가 있고요."
"누구나 한 번쯤은 삶에서 변화가 필요한 것 아니겠어요?"
그녀의 대답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되새김질하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리즈를 다시 보면서 한 대답에 주목하게 됐다.
누구나 삶에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있다는 경구. 그건 혹시 어렴풋이 드러난 레베카의 진심은 아니었을까?
레베카 본인도 잘 몰랐겠지만 어쩌면 조쉬 챈은 그저 구실에 불과했을 것이다. 다만 레베카는 조쉬라는 구체적인 대상이 없이는 스스로의 작은 희망조차 허용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본인이 삶의 주체가 되고 싶다는 갈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의 불행과 불안을 정확하게 인정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스스로가 “괜찮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직면하는 데에는 무수한 과제가 뒤따른다. 한 예로, 레베카는 집착적인 어머니로부터 삶의 아주 작은 선택까지도 모조리 통제받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라는 존재를 거부한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이겠는가. 보수적인 유대 가정의 싱글맘 밑에서 자란 미혼의 딸이 어머니의 ‘사랑에서 우러나온 조언’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런 욕망은 개인의 내면에서 적절하다고 승인받기 어렵다.
그러나 레베카는 사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하고 싶다는 마음을 키워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달고 살던 워커홀릭의 나날에서. 자신을 과하게 보호하고 통제하려는 어머니의 규제로부터.
이 시리즈는 언뜻 레베카의 미친 연애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즌이 진행되며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그녀의 정신적 치료 과정을 차분히 따라간다.
1화에서 던져졌던 질문은 끝내 명쾌하게 회수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랑, 연애, 남자에게의 헌신, 타인에의 의존 없이 오롯이 혼자서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떠한 인생을 살고 싶은지는 당장은 답을 모르던 여성이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같이 탐색하는 과정은 벅차도록 감동적이다.
니쁜 것도 소리 없이 오지만 좋은 것은 더 소리 없이 올 수도 있어
실패가 뭔지 아냐? 했다는 것의 증거야
일주일 전에 박막례 할머니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영상, "드디어! 할머니가 처음 말해주는 인생의 비밀"에서 나온 말이 마음에 콕 박혔다. 실패에 관한 그 어떤 말 중에서 지금까지 저 말처럼 와 닿던 것이 없었다.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는 리어카 장사, 엿 장사, 파출부, 식당 일 등등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온갖 궂은일은 다 해보았지만 정작 배우고 싶었던 영어, 커피 내리기, 한복 짓기는 배우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칠십 넘어서 이렇게 유튜버로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줄 알았더라면 그때 다른 사람들의 간섭에도 개의치 않고 배우고 싶었던 것을 꼭 배웠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들 말을 들을 게 아니라, 제 내부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그 콘텐츠에는 수많은 댓글들이 적혀 있다.
28. 음대를 졸업했지만 다시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응원해주세요.
30대가 되고 이제 내 인생에서 무언가 시작하기는 늦었다고 생각했거든요. 누가 그러더라구요 30대가 못하는 건 키즈모델이랑 고퍼밖에 없다고 (…후략)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우는 사람 저예요. 그 어던 연설보다 더 감동적인 거 있죠.
“스텝이 꼬이면 그게 바로 탱고" 저는 이 말을 맘에 새기고 살아요. 괜히 용기가 생기더라구요. 저는 비록 실수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하고 20대를 낭비했지만 (…후략)
지금 나이 20 다들 대학가고 있는데 저는 공사장에서 돈벌고 있는 고3 졸업생입니다. 집안 사정이 그렇게 좋지는 않아서 그림을 배우고 싶어도 못배우고 (…후략)
무서워서 2,30대를 그냥 보냈네요 무기력한 제자신이 게으르다고만 탓했는데 무서웠던거더라구요
할머니 인생이 유튜버로, 이렇게 또 한번 바꿔진 건 어쩌다 우연히 바뀐 게 아니라 그 수많은 과거의 순간들이 모여서 지금 할머니가 된 거예요 (…후략)
현재가 불행하고, 무기력하며, 지금의 삶은 즐겁지 않고 원하는 삶이 저 멀리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될 때에도 다시 방향을 틀어 움직인다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그 방향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가치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을 때에 자신만의 리듬을 고수하기란 한층 더 어려워진다.
한동안 국내에 불었던 '퇴사 열풍'은 대부분의 사람들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꿈에 대한 갈망",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희구"를 드러냈다.
하지만 위의 댓글들에서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듯, 인생에서 선택지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박막례 할머니가 생활고를 겪지 않았더라면 커피, 영어, 한복 짓기를 모두 손쉽게 배울 수 있었지 않았을까?
남들과 다른 선택을 내린다는 것의 과정과 결과도 힘겨운 것은 틀린없이 참인 명제이지만 누군가는 애초에 다른 방향이라는 선택조차도 고려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참이다. 현실의 다양한 층위를 간과한 채 분명히 현대사회에서는 ‘꿈'이라는 가치가 지나치게 이상화된 경향이 없지 않다. 하지만 꿈을 따라 산다는 신화가 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가장 크게 부풀려진 가치인 재화와 꼭 맞물려 있지는 않는다는 것을 돌이켜 봤을 때―오히려 실직적으로는 대립항에 가깝지 않던가―아직 “꿈을 쫓는 이상적인 삶”이라는 환상과 관련해선 더 많은 이야기가 등장해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늦었다고 말하는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해외 대학원에 입학했다. 이건 엄청난 꿈을 쫓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대학원에 오면서 원하는 삶을 살 거라고 기대했던 것도 아니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행복한 순간이 될 거라고 믿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나는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의 레베카처럼 삶을 변화시키고 싶었고, 어쩌면 그게 내 퇴사와 유학 준비 동기의 전부였다. 한국에서는 진짜 나 자신이 누구인지 가만히 응시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해외에서는 그게 가능할 것도 같았다. 물론, 엄청난 이상을 가진 게 아니어도 현실은 더 자주 기대에서 엇나간다.
내가 가고 싶던 곳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여전히 나는 행복하지 않고, 하고 싶다고 믿었던 것을 하는데 돌이켜보면 이게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원하는 것을 쫓았을 때 결과란 대개 원하지 않던 것을 할 때보다도 실망스럽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지난 선택을 곰곰이 돌이켜 보았을 때에 후회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바로 이 정도의 마음가짐을 얻기 위해서 이 선택이 필요했던 거라면, 나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