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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Jun 23. 2023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납니다.

<수치심과 분노>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이죠. 여기에 저는 "그래서 화가 납니다."라고 덧붙여 봤어요.

우리는 관계를 통해 안전감과 만족감을 느껴요. 하지만 때론 갈등을 겪으며 외로움과 분노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사람을 통해 얻는 행복의 크기만큼이나 고통의 크기도 크죠. 특히 온라인에서의 교류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타인을 통해 기술을 배우거나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심리학자들은 더욱 인간관계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정신분석학자 Horney는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불안이 신경증을 유발한다고 했습니다. 신경증은 간단히 말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신경증이 높아진 상태에서는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기가 쉬워집니다. 타인에게 지나치게 배려하고 순종하거나, 공격적으로 맞서면서 부딪히거나, 혹은 관계를 포기하고 혼자서 외롭게 지내게 되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관계에서 불안을 겪기보다는 안전감을 느끼면서 원만하게 지낼 필요가 있습니다. 말처럼 쉽진 않지만요.

관계를 힘들게 만드는 심리적 요인 중 특히 주목해야 하는 건 바로 '수치심'입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라는 문장을 인용해 본 이유이기도 하죠. 수치심은 부끄러움입니다. 다만 죄책감과는 다소 다릅니다. 죄책감은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나의 잘못된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겁니다. 수치심은 '나 자체'에 대한 부끄러움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 존재 자체가 잘못된 일이고, 그러니 나라는 존재를 사랑해 줄 사람은 절대 없을 거라는 느낌이 바로 수치심입니다.

우리는 간혹 나의 잘못된 행동이 곧 나 자신이라는 듯 과도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물건을 훔쳤다거나, 누군가를 때렸다거나, 몇몇 나쁜 짓을 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행동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고 반성해야 합니다.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비난해선 안 됩니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행동이 곧 그 사람 자신을 나타내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행동만으로 그 사람 자체를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Human Do-ing'이 아닌, 'Human Be-ing'이니까요.

수치심은 다시 '상태 수치심'과 '내면화된 수치심'으로 구분됩니다. 상태 수치심은 어떠한 상황에서 짧은 시간 동안 강하게 느끼는 수치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양심을 지닐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심리학에선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면화된 수치심은 좀 더 정체성과 강하게 연결된 개념으로, 부끄러움을 느낄 상황이 종료되고 이미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수치심이 나의 정체감으로 내면화된 걸 뜻합니다. 이로 인해 열등감과 각종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고, 지속적이고 만성적으로 수치심을 반복적으로 겪게 됩니다. 수치심이 완전히 내 성격의 일부가 되어버린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수치심을 내면화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서 달아나기 어려워집니다. 그로 인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예를 들어, 자해를 하거나 폭음, 폭식을 하거나, 할 일을 미루는 등 자신을 더욱 부정적으로 여길 만한 행동을 하는 거죠. 이 행동으로 인해 한 번 더 나를 부정하게 되고, 수치심은 더욱 깊게 상처를 남깁니다. 악순환에 빠지게 되죠.

내면화된 수치심은 타인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될까 봐 과도하게 두려워하도록 만들고, 수치심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관계를 끊어버리게 되기도 합니다. 또는 내가 품고 있기 싫은 수치심을 타인에게 투사하며 다른 사람들이 수치심을 느끼도록 만들고, 공격하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자꾸만 갈등을 겪을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따라서 안정적인 대인관계를 위해서는 우리 안에 깃든 수치심의 존재를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풀리지 않는 수치심은 결국 분노로 모습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도 더 자주, 더 강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한다고 생각하여 화를 내게 됩니다. 화는 내면 낼수록 점차 몸집이 커지고, 결국 습관이 됩니다. 분노를 느낀 상황이나 누군가에게 보복하는 생각을 거듭하는 '분노 반추'도 점점 자주 하게 되죠. 한번 시작된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수치심은 분노가 더욱 활활 타오르게 하는 기름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안에 혹시 '나는 하찮아', '나는 별 볼 일 없어',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을 거야'라는 목소리가 있다면 수치심을 회복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수치심을 회복하는 첫걸음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않고 지켜보며 자각하는 '알아차림'이라고 합니다.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자신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겐 열등한 모습만 있는 게 아니라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사랑받은 적이 있고, 지금 내 곁에 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앞으로도 사랑받을 거라고, 설령 없다고 해도 나는 자신을 사랑하겠노라, 새로운 목소리를 자신의 내면에 들려주어야 합니다.

수치심을 온전히 안아주고 인정해 주기 위해선 내 안의 악함을 마주해야 합니다. 저도 아직 두렵지만 계속 마주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밭에 심어진 수치심의 씨앗이 인정이라는 양분과 사랑이라는 햇살을 받고 자존으로 자라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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