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으로 세상을 밝게 하리라

인간 능력에 대한 무한한 믿음의 시대, 계몽주의

by VIVA

계몽은 말 그대로 무지몽매에서 , 어리석음이라는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라는 의미다.

이 개념은 칸트가 한 성직자에게 '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면서 좀 더 명확해진 개념이다


우리말 '어린이'는 어리석음에서 유래했다.

어린이는 잘 모르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모른다는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잘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하니 어른의 보호와 인도가 필요하다는 뜻까지 함축된 단어다.


칸트도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미성년의 개념을 계몽과 접목하여 설명했다.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미성년상태 (Unmündigkeit)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년 상태란 타인의 지도 없이 스스로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미성년 상태는 그저 생물학적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말하는 걸까?


독일어 단어는 의미에 따라 결합과 분해가 잘 되는 특징이 있다.

잘 쪼개서 해체해 보면 전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형태소의 의미를 알면, 전체적인 단어의 뜻을 몰라도 잘 유추할 수 있다.

Unmündigkeit를 분해하면 다음과 같다.

Unmündigkeit= un + mund + ig +keit

여기서 un 은 부정 접두사로 영어로 치면 not 또는 no의 의미고

-ig는 명사를 형용사로 만들어 주는 것으로 영어로 치자면 -rous, -ful 이 될 수 있고

keit는 형용사를 명사로 만들어 주는 접미사다.


Unmündigkeit의 핵심 의미는 바로 Mund에 있다.

이 단어는 '입'이라는 의미와 법의 보호, 감시, 통제라는 뜻이 있다.

어원과 사회적 쓰임을 모두 합쳐서 초기 의미를 보자면

Mund는 우리말의 미성년자의 의미보다는

입을 열어 자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법적인 보호와 통제와 감시가 필요하다는 뜻까지 사회적으로 확장된다.


자신감과 용기는 언제 솟구치나?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피드백이 내면화될 때다.

반대로 자신감과 용기는 잘 모르고, 잘 못할 때 생겨날 리 없다.

그래서 계몽이란 '나의 앎과 지식을 담대한 자신감과 용기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계몽은 결과적으로 지성과 감성이 조화롭게 강화될 때 나타나는 거다.

많이 알기만 해도 자신감과 용기가 없으면 입을 열고 의견을 말할 수 없고

많이 모르면서 자신감과 용기만으로 입 열고 떠들면 멍청한 떠벌이가 되는 거다.


계몽주의는 문학 사조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처럼 철학사상을 말할 때 더 자주 언급된다.

계몽주의 문학은 프랑스에 집중해서 도드라지게 나타났다.

또한 명칭도 계몽주의 문학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신 고전주의 또는 후기 고전주의라고 구분했지만

대체적으로 17-18세기를 통틀어 고전주의로 보는 경향도 있었다.

그렇다면 계몽주의에서 고전주의와 차이가 되는 점은 무엇일까?


17세기 고전주의는 기준점이 명백했다. 그 기준이 규범이 되고

그 규범을 따르는 절제의 미학이 있었다.

하나의 이상향, 즉 로마 시대의 가치를 따르고 그 전통을 존중했다.

하지만 지식과 이성의 빛으로 밝혀진 18세기 계몽주의는

그러한 기준점과 전통조차 부인하면서 근대적인 합리성을 추구했다.

또한 종교에 관대했던 고전주의와 달리, 인간의 명철한 합리와 노리를 내세워

분석적 비판 의식을 강조했고, 신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간의 윤리의식을 세워가기 시작했다.


인간 세상의 선과 악의 기준을 '신'이 제시한 것과 달리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서는 인간이 만든 기준인 '법'이 강화되면서

종교교리와 인간윤리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종교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인간의 윤리,

종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세속적 윤리가

인간 세상의 선악과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된 시점이다.

이전까지는 인간의 잘잘못을 따질 때면 종교 관계자들의 판단이 매우 중요했지만

이 시기부터는 개인과 개인의 갈등과 충돌에 제삼자인 법의 개입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졌다.


이때는 또한 신분과 계층 도약이 가능했던 근대 초기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개인 자의식이 매우 발달한다.

계몽주의 문학은 종교의 규범과 태생적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은 이성을 가지 인격적 존재라는 것을 존중하고 강조했다.

특히 어둠과 어리석음이라는 터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종교적 편견, 미신, 미망에서 빠져나오게 하다는 주제 의식이 강했다.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신학에 대비하는 철학이라는 개념이 확고해진다.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은 학문과 사상의 철학이라기보다

좀 더 인간적인, 인간의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지식과 지혜와 교양을 의미했다.

인쇄술의 발전과, 모국어의 상용화, 거기에 생각의 자유까지 얻게 된

계몽주의시대야 말로 '나'를 인식하는 확고한 토대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 개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강력한 질서가 사라진 자리에 혼돈과 방임을 대신할

올바를 길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자연스럽게

유한한 삶을 올바르고 효율적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방식으로

계몽주의의 이성과 합리, 실천할 수 있는 방법론등이 제시되었다.


이것이 Art of living, Art de vivre이었다.

살아가는 기술, 삶의 기술, 살아가는 방식 등으로 번역될 수 있겠지만

이 말은 초기 번역본에 '처세술'이라는 단어로 자주 사용된다.

처세술은 사회생활의 규범이 강했던 우리나라에서

친인척, 친구들 사이, 무엇 보다 직장생활에서 지켜야 할

암묵적인 룰을 뜻하며, 처세술은 기회주의자적인 의미가 강했고

지금에 와서는 인간관계법 정도로 해석된다.


계몽주의가 말하는 삶의 기술은

단체와 공동체의 조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 개인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것인가, 인간의 행복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면서

중심과 주체가 공동체가 아닌 개인에 집중되어 있다.

계몽주의 시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개인의 행복이 철학의 과제로 강력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