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알려면 위챗을 알아야 하고, 위챗을 알려면 장샤오룽을 알아야 한다.”
위챗(웨이신)은 중국의 대표 소셜네트워크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16년 말 기준 다운로드수 9억1690만 명, 월 액티브 유저 8.46억명이다. 이용자 50%가 하루에 90분이상 이 서비스를 부여잡고 있으며, 음성 및 영상 통화는 일 평균 1억건이 넘는다.
위챗은 단순한 메신저 서비스가 아니다. 위챗을 통해 휴대폰요금과 공과금 납부도 할 수 있고, 배달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고화질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하고, 게임을 즐기고, 쇼핑하며, 심지어 일자리까지 찾는다. 위챗은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활발히 사용되어진다. 이 플랫폼을 통해 전자상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며, 웨이덴(YouShop)을 설립해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 수도 있다. 유용한 플랫폼들의 결합체이자 서비스 슬로건(‘위챗은 생활방식’)처럼 중국인들의 생활 속 깊숙히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2016년 년 말에는 별도의 앱을 다운로드 받지 않아도 앱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미니앱 서비스 샤오청쉬(小程序)도 부가되었다. 위챗에게 더 벗어날 수 없는 기능이 추가된 것이다.
2011년 위챗이 등장할 때만 하더라도 이 서비스의 파급력이 현재에 달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텐센트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시나닷컴이 내놓은 웨이보의 대응하는 일개 서비스로 여겼다. 하지만 이 서비스 개발을 이끈 장샤오룽(현 텐센트 부회장)은 다르게 생각했다. 위챗 속에는 장샤오룽의 철학이 담겨졌다 평가받는다.
중국을 알려면 위챗을 알아야 하고 위챗을 알려면 장샤오룽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장샤오룽(张小龙), 아웃룩과 경쟁하던 폭스메일(Foxmail)의 1인 개발자
장샤오룽(张小龙) 1969년 12월 3일 호남성에서 태여났다. 1987년 화중과학기술대학(华中科技大学)에 입학해 1994년에 석사 졸업했다. 졸업 후 중국에서 평생직장이라고 불리는 전자통신호사에 입사해 주위의 부러움을 샀지만, 정작 본인은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회사 건물만 봐도 억압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그는 이런 억압감이 싫어서 직장을 퇴사하고 IT시장에 1인 개발자로 뛰어든다. 그가 회사를 박차고 나오던 당시 중국의 IT시장은 초기 단계였다. 텐센트 마화텅(马化腾)이 QQ를, 바이두 리옌훙(李彦宏)이 바이두를 막 내놓은 시기였다. 장샤오룽은 폭스메일(Foxmail)이라는 메일 서비스를 개발해 론칭하고, 4년 후 이용자수 200만명을 기록한다. 텐센트 메일 사용자 수가 10만 밖에 안 되던 시절이다. 당시 폭스메일은 마이크로소프트 아웃룩과 중국에서 경쟁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메일 서비스였다. 하지만 마땅한 수익모델을 찾지는 못 했다.
폭스메일을 매각하며 처음으로 돈을 벌다.
1998년 9월 당시 진산(金山, 킹소프트)에 재직중인 레이쥔(雷军, 현 샤오미 대표)이 장샤오룽에게 폭스메일 매각 제안을 한다. 마땅한 수익모델 없이 개발에만 열중하던 장샤오룽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 15만 위안(한화 약 2500만원)이면 팔겠다고 회신하고, 레이쥔도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레이쥔은 당시 다른 업무에 치중하느라 그 일을 부하직원에게 인계를 한다. 그 직원은 레이쥔과는 생각이 달랐다. 폭스메일의 메리트를 못 느꼈고, 자체적으로 충분히 개발할 수 있겠다고 판단해 일이 성사되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00년 장샤오룽에게 새로운 매각 제안이 들어온다. 기술회사인 보따(博大)에서 1200만위안(한화 약20억)의 폭스메일 매각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2년만에 2500만원에서 20억까지 서비스 가치가 오른 것이다. 인터넷 버블 시기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렇게 회사를 나와 개발만 하던 1인 개발자는 처음으로 유의미한 금액을 손에 넣게 됐다. 현재까지도 폭스메일은 중국 10대 개발 서비스로 평가 받는다.
5년의 야인 생활 이후 텐센트로 가다.
이후 5년 간 별다른 활동이 없었던 장샤오룽은 2005년 다시 세간에 이름이 회자된다. 보따가 폭스메일을 텐센트에 재매각하는 조건에 장샤오룽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텐센트 마화텅 회장은 QQ메일로 MSN의 위세를 꺽고 싶었고 그에 적합한 인물로 장샤오룽을 선택한 것이다. 장샤오룽은 텐센트 항저우 연구개발부에 소속되어 QQ메일을 담당한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장샤오룽은 굴러온 돌이자 검증되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더불어 마화텅 회장의 의지를 장샤오룽이 구현하는 것이 의문부호가 달렸었다. 당시 MSN과 Gmail는 이미 서비스 성숙 단계지만, QQ메일은 갈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장샤오룽은 당시 마화텅마저도 쓰기 싫다고 평가한 QQ메일을 전면적으로 개편한다. 기존 형태를 갈아엎는 과정이었다. 우선 빠른 속도를 위해 페이지를 단순화시키고, 파일용량을 2G까지 보낼 수 있게 한다. 이는 당시 어느 서비스에도 없었던 획기적인 시도였다. 대용량 파일도 문제없이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QQ메일은 사용자가 선호하는 서비스로 인정받게 된다. 더불어 기능 뿐만 아니라 디자인이 지속적으로 개선되면서 사용자 층은 더욱 넓어졌다. 그 외에 열람공간, 드리프트 보틀 등 기능을 추가하면서 종국에는 중국 메일서비스 1위를 차지한다.
‘환영받지 못한 왕자’ 위챗의 탄생 , 그리고 티핑 포인트.
2010년 어느날 밤, 장샤오룽은 마화텅에게 메일을 쓴다. 그는 ‘메신저에서 모바일 시장의 미래를 봤고, 이를 준비하지 않으면 회사에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설명하며, ‘모바일메신저 개발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마화텅은 바로 답메일을 통해 개발을 하라고 화답한다. 마화텅은 장샤오룽 외 2개 팀에게 동시에 메신저 서비스 개발을 지시한다. 텐센트 특유의 내부 경쟁을 유도한 것이다. 장샤오룽은 QQ메일 개발팀과 함게 메신저 서비스 개발에 몰입한다. 녹녹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미 여러 기업이 메신저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었고, 심지어 출시한 곳도 있었다. 그리고 장샤오룽은 여전히 텐센트에서 미운오리였고 그가 이끌던 팀도 그렇게 인식되고 있었다. 장샤오룽은 서비스 개발의 해답을 사용자에게서 찾았다. 사용자가 습관적으로 클릭하는 위치, 사진 화소까지 세심하게 연구했다. 그렇게 2011년 탄생한 것이 위챗이다.
위챗 1.0버전이 출시되던 당시 IT업계는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에 대한 개념이 자리잡고 있지 않았다. 위챗이 출시될 때만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위챗이 잘 될거라 보지도 않았다. 위챗의 기능 대부분은 QQ에서도 가능했었고, 채널과 자원은 QQ쪽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엎친데 곂친 격으로 위챗은 출시 3개월 동안 유저증가량이 많지도 않았다. 반면 위챗보다 1개월 먼저 론칭된 샤오미 메신저 미랴오(米聊)는 고속성장하는 추세였다. 때문에 회사 내외에서 위챗의 실패를 이야기 했다. 하지만 장샤오룽만은 자신만만했다. 개발과정에서 회사 외부와 내부에 오는 문제들이 짱쇼우룽의 발걸음을 무겁게는 했지만 멈추게는 하지 못한 것이다.
그 해 4월 쟝샤오룽은 위챗에 음성전달 서비스(语音)를 추가하고, 유저를 모으는 방편으로 문화적 요소 등 개성적인 기능을 추가한다. 휴대폰을 흔드는 것으로 친구 맺기, 펑요췐(위챗 모멘트)으로 일상생활 공유하기, 근처에 있는 친구 찾기, QR코드 기능 등이 적용되었다. 여기서 위챗의 티핑포인트 3가지가 등장한다. 바로 음성메시지 보내기(语音), 주위에 있는 친구 찾기(查找周围的人), 흔들기(摇一摇)가 그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위챗은 기하급수적인 사용자 증가세를 맞이하게 된다. 더 나아가 홍바오 등을 통해 위챗의 상업적 가치를 만들어 내 경쟁자 알리바바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원천을 마련한다.
이후로 장샤오롱은 미운오리에서 백조로, 중국 모바일 생태계를 바꾼 인물로 평가받게 된다.
후발주자 위챗이 성공한 이유.
위챗은 처음에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던 서비스다. 심지어 기존 메신저 서비스인 KIK와 Talkbox의 아류라는 지적도 숱하게 받았다. 하지만 현재 위챗은 200여 국가에서 8억 명이 넘는 사용자가 매일 사용하는 서비스다. 아이러니하게도 초반에 시장을 주도하던 KIK과 Talkbox를 기억하는 유저는 많지 않다.
장샤오룽은 위챗의 성공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좋은 제품은 개발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시장에 출시된 유사한 제품에 비해 10%정도 나아서는 쓸모가 없다. 유사한 서비스를 한다면 반드시 경쟁자가 가지고 있지 않은 기능이 있어야 승산이 있다.” (편집자 주) 모바일 홍바오 문화는 텐센트가 시작했다 평가받지만, 개발 당시 이미 알리바바의 홍바오 서비스가 있었다. 하지만 위챗 홍바오는 랜덤 기능을 추가해 주는 것과 받는 것 모두 사용자가 재미를 느끼게 했다.
“제품개발 시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뱡향으로 가야 한다.”
텐센트의 모범 교본이 되다.
2012년 7월 24일 장샤오룽은 ‘위챗에 숨겨진 제품관념’이란 주제로 장장 8시간 동안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다. 준비한 장표만 180페이지 분량이었다. 텐센트는 사내 17개 회의장을 개방해 온오프라인을 연결해 전직원이 듣도록 했다. 그중에 ‘매니저(관리자)가 가져야 하는 소양’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트렌드에 민감해야 한다.
현재 인터넷 생태계는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제품들은 갈수록 많아지는 풍족한 시대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의 진실된 욕구를 파악해야 한다. 관리자가 새로운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시대의 진정한 트렌드를 놓칠 수 있다.
-사용자가 느끼는 욕구를 파악하라.
모바일시장은 무척 변화가 빠른 시장이다. 전통적인 고객분석과 시장조사, 제품 계획들은 현시대와는 맞지 않다. 인간집단 자체가 변화의 움직임이다. 관리자는 데이터로 소비자를 분석하지 말고 직감과 감성으로 분석해야 한다.
-만 시간의 법칙 그리고 실천
인터넷 시장이 열렸지만, 아직까지 그 분야에 진짜 전문가라고 자칭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천재는 없다. “만 시간의 법칙”은 매니저에게도 적용된다. 천 번 혹은 그 이상의 테스트를 해야 상품의 디자인 감각과 문제해결능력이 생긴다.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광범위 하게 공부하라.
관리자는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문학과 예술 등 분야에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용자를 이해할 수 있다. 동시대 사용자들의 미적감각을 알아야 제품이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는다.
-책임감이 있어야 좋은 상품을 기획할 수 있다.
관리자는 자신의 내놓은 상품, 서비스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의지를 지키면서 가고 싶은 방향을 견지하며 상품을 기획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8시간의 연설이 끝난 후 쟝샤오룽은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다 틀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진리라 생각한 것도 빠른 인터넷 시장에서 언제든 구문이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마무리하며.
장샤오룽은 개발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인물이다. 그 것은 위챗과 QQ서비스 곳곳에 드러난다. 유리병에 메시지를 담아 던지면, 그 메시지를 주운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위챗 기능(드리프트 보틀)이 대표적이다. 기술적 완성도 뿐만 아니라 사용자 입장에서 감성적인 서비스를 추구한 것이 위챗의 성공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위챗에는 장샤오룽이 추구하는 간단함의 미학(极简美学)이 담겨져 있다. 장샤오룽은 사용자에게 편한 방식으로 서비스를 단순화 시키고 최소화 해야 시장을 선도하고 추월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개발되고 진화한 위챗은 그 단순함과 편리함으로 중국인의 일상을 바꿨고 생활이 되었다.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하이퍼 플랫폼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