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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롯 레터 Plot Letter Feb 28. 2022

일본 영화 음악의 아버지는?

어느 여름날의 히사이시 조 

https://www.youtube.com/watch?v=l0GN40EL1VU

▲ 히사이시 조의 'Summer'

이 노래 안 들어본 사람 있어요?

이번 레터는 특별히 음악으로 시작해 보았는데요, 이 노래는 ‘Summer’라는 곡이에요. 여름의 청량함을 담은 곡으로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의 OST로도 잘 알려져 있죠. 듣기만 해도 시원하고 푸른 여름의 향기가 나는 것 같지 않나요? 오늘은 이 노래의 작곡가이자 일본 영화 음악의 기둥인 음악가 히사이시 조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피아노 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연습했던 곡인데 너무나도 반갑네요~ 어서 히사이시 조 이야기 듣고 싶어요! 

▲ 히사이시 조, 출처: 히사이시 조 공식 홈페이지

풍부한 감성과 함께 쑥쑥 자란 소년 

하얀 눈이 쌓이고 찬바람이 부는 쌀쌀한 겨울, 일본 나가노현에서 영화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을 한 소년이 태어나요. 그의 이름은 후지사와 마모루. 그는 어릴 적 요리조리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작은 악기점에 진열된 바이올린 하나를 발견해요. 어린 그에게 바이올린은 너무나도 신비롭고 새로운 존재였는데요, 그는 이후 바이올린의 매력에 푹 빠져 스즈키 바이올린 학교에 입학하기까지 했죠. 그렇게 그는 음악에 대한 공부를 멈추지 않았고, 음악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키워가며 음악가를 꿈꾸었다고. 또, 영화 감상이 취미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무려 300편이 넘는 영화를 보았다고 해요. 이렇게 어릴 적부터 경험한 다채로운 음악과 수많은 영화가 훗날 영화 음악 작곡에 큰 도움이 되었죠. 


유년 시절을 음악과 함께 보낸 그는 자연스레 음대에 입학해 작곡을 전공하고, 밴드 동아리에서 키보드를 연주하거나 작곡가로서 화려한 재능을 펼치며 활약하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기들과 함께 졸업 후 음악가로 이름을 떨칠 자신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며 어떤 예명으로 활동할지 고민해요. 그러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미국의 유명 재즈 작곡가 퀸시 존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변형해야겠다 결심하죠. 그렇게 탄생한 예명이 바로 지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히사이시 조'라고! 그는 대학 졸업 후 넓은 스펙트럼의 음악을 경험하기 위해 광고 음악가로 활동했는데요, 다채로운 연출이 특징인 광고 영상에 팝, 뉴에이지 음악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결합시켜 히사이시 조만의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나갔어요. 이는 히사이시 조가 세계적인 영화 음악 감독이 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퀸시 존스: 미국의 전설적인 음악 프로듀서로, 프랭크 시나트라, 마이클 잭슨과 같은 유명 가수들의 음악을 만들어냈음.


히사이시 조가 예명이었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에요! 히사이시 조 하면 지브리 음악을 빼놓을 수 없는데, 지브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 2008년 히사이시 조 공연에 찾아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출처: 히사이시 조 공식 페이스북

인생의 파트너를 만나다 

지브리를 설립하기 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라는 영화를 제작하고 있었는데요, ‘과연 영화의 음악 감독으로 누구를 선발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어요. (지난 레터에 소개한 지브리의 수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일본의 여러 유명 음악가들이 후보에 올라있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그려내고자 하는 영화와 어울리는 음악적 색채를 갖고 있는 인물이 없었죠. 그때 영화 관계자의 우연한 추천으로 무명이었던 히사이시 조를 음악 감독으로 발탁하고, 이렇게 히사이시 조와 지브리 스튜디오의 인연은 시작됐다고.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심각한 오염으로 인해 엉망이 된 지구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나우시카의 이야기를 그려요. 히사이시 조는 생명의 소중함을 거듭 강조하는 영화 자체의 메시지, 그리고 환경을 보호하고자 엄격한 삶의 태도를 지닌 주인공의 특성에 집중했죠. 그는 이를 바탕으로 영화의 OST '머나먼 땅'을 제작했고, 이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와 절제된 멜로디의 조화가 아름답다 평가받아요.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가 함께 작업한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개봉 후, 일본에서만 무려 80억원의 수익을 내면서 흥행에 성공하죠. 덕분에 하야오는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히사이시 조는 아무도 몰랐던 무명 음악가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영화 음악가로 등극해요. 이를 계기로 히사이시 조는 <천공의 성, 라퓨타>, <붉은 돼지>, <이웃집 토토로> 등 다양한 지브리 작품의 음악을 작곡하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의 인연을 이어나간다고.


지브리와 히사이시 조의 인연이 우연에서 시작됐다니… 사람 인생은 정말 모르는 것 같아요~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지브리 음악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IxKWtxFrjPQ

▲ 영화 <이웃집 토토로> 엔딩곡

애니메이션에 숨결을 불어넣다

토토로 토토로~ 정겹고 따스한 마을과 장난기 넘치는 캐릭터들이 몽글몽글 떠오르는 영화 <이웃집 토토로>의 OST, 모두 들어보셨나요? 듣기만 해도 영화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지죠. 히사이시 조가 제작한 지브리 영화 음악의 특징은 바로 음악의 선율에서 장면과 감정이 바로 떠오른다는 점이에요. 실제로 그는 <이웃집 토토로>의 배경이었던 농촌의 따스한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일본의 전통 음계를 활용했죠. 일본의 전통 음계는 5가지의 음으로 구성된 음의 배열로, 동양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일본의 전통 가요에 자주 등장한 기법이에요. 또, 그는 영화 <이웃집 토토로>에 나이가 어린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한다는 특징을 녹여내고자 동요를 작곡하기도 했죠. 이때의 히사이시 조는 목욕을 하는 순간까지도 동요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는데요, 그렇게 목욕탕에서 '토토로'라는 단어를 흥얼거리다 탄생한 음악이 바로 ‘이웃집 토토로’라고!


https://www.youtube.com/watch?v=TK1Ij_-mank

▲ 히사이시 조의 '어느 여름날'

이 곡은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어느 여름 날’이라는 노래에요. 주인공 치히로가 원래 살던 곳을 떠난 후, 갑작스레 신비로운 세계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죠. ‘어느 여름 날’에서는 고향 친구들을 떠나 낯선 새 학교에 다녀야 하는 주인공의 슬픈 감정이 나타나 있는데요, 특히 서정적이고 구슬픈 피아노 선율은 주인공의 우울하고 애처로운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어요. 또, 그는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팝스 오케스트라 음악을 사용했죠. 다양한 악기가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와 거대한 음량의 일렉트릭 악기를 첨가한 팝스 오케스트라를 통해 히사이시 조는 이국적이고 신비한 영화의 분위기를 극대화했다고!


한 소절만 들어도 작품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지브리 스튜디오와의 콜라보 외에, 다른 작품 이야기도 궁금해요!

▲ 히사이시 조와 기타노 다케시 감독

확장하는 그의 영화 음악

히사이시 조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영화 음악을 여럿 작곡했는데요, 대표적으로 앞서 들려드린 ‘Summer’가 있죠. 그런가 하면 히사이시 조는 일본 야쿠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영화로 만들어낸 감독 기타노 다케시와의 인연도 깊어요. 주로 폭력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다케시 감독 작품의 음악을 작곡하기 위해 누아르* 스타일의 어둡고 음침한 느낌을 주제곡 'HANA-BI'에 녹이려 했죠. 이는 냉소적이고 잔혹한 영화의 고유한 특징을 살리기 위함이었다고. 신비한 모험부터 나쁜 악당까지 각양각색의 테마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작곡 작업과는 반대로, ‘야쿠자’라는 하나의 테마를 설정하고 장면 하나 하나를 편곡하며 무거운 분위기를 담아냈어요.


*누아르: 범죄와 폭력을 다루며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다루는 영화를 말함.


*야쿠자: 일본에서 조직을 형성하여 범죄 활동을 통해 수익을 얻고 있는 사람을 말함.


https://www.youtube.com/watch?v=KQgJTG1O9IQ

▲ 히사이시 조의 'Waltz of Sleigh'

그의 음악 세계는 일본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데요, 히사이시 조의 음악 중에는 한국 영화에 삽입된 유명한 OST가 하나 있어요. (위 노래를 재생해보세요~) 이 노래, 어딘가 익숙하지 않나요? 맞아요. 바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대표곡인 'Waltz of Sleigh'인데요, 첫 부분을 듣자마자 팝콘이 뻥뻥 튀어 오르는 장면이 그려지죠. 히사이시 조는 한국전쟁 속에서 남북한 군인들이 힘을 합쳐 마을을 지켜내는 희생정신을 그린 줄거리에 반해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음악 작곡을 맡겠다 결심했어요. 이 영화에서는 어딘가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동막골 마을의 분위기를 중후한 멜로디로 눌러줌으로써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현실감을 부여하려 했다고.


<웰컴 투 동막골>의 OST도 히사이시 조가 작곡했었다니 정말 놀라워요! 히시아시 조는 어떤 마음 가짐으로 영화 음악을 작곡하는 건가요?

▲ 지휘하는 히사이시 조, 출처: 히사이시 조 공식 페이스북

스스로 만드는 영화 속 음악

히사이시 조에게 영화 음악은, 영화를 보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장치였어요. 영화 음악의 역할을 히사이시 조 스스로가 정의한 것이죠. 그래서 그는 ‘미키 마우징’ 기법을 많이 사용했는데요, 미키 마우징 기법이란 영상의 움직임과 음악을 일치시키는 기법이에요. (애니메이션의 대가인 월트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 작품에서 비롯된 명칭이래요!) 주로 애니메이션에서 만화적 움직임, 음악 그리고 목소리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만드는 방식이죠. 대표적인 예시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황폐화된 자연을 그리는 스토리에 우아하고 중후한 음악을 더해 고풍스러움을 연출했어요. 또,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는 오케스트라의 다채로운 악기를 통해 하늘을 나는 듯한 시원함을 작품에 더했다고.


영화 음악에 애정이 깊었던 그는 심지가 굳은 음악가로도 유명해요. 감독의 마음에 들기 위해 곡을 만든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예술가로 알려져 있죠.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영화에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음악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물론 최선을 다해서 만든 음악이 감독이나 관객을 만족시키면 너무나도 기쁘겠지만, 사람들의 평가와 같은 외적인 요소와 음악의 역할이나 본질인 내적인 요소는 명확히 구분되어야만 한다고 말해요. 결국,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이때 비로소 창의성이 발휘된다고 주장하며, 히사이시 조 스스로도 음악 자체에 초점을 두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평소에 영화 음악은 그저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배경인 줄 알았는데, 역시 히사이시 조의 마인드는 남다르군요!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작곡을 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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