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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민케이 Dec 28. 2016

창업의 실패 그리고 그 열매

그 후  직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 디지털 혁신, 제조 3.0, 인더스트리 4.0, 인공 지능, 빅 데이터, 사물 인터넷.

이름과 관점은 다르지만 모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대격변의 시기를 맞이했다는 걸 얘기해준다. 변화와 위기는 기회를 의미하는 법. 최근에 주위에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스스로 스타트업 회사를 차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사실 그래 봤자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밖에 안되지만 대부분 대기업이나 글로벌 회사에서 안정되게 회사를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살짝 놀라운 숫자다. 

너무 빠른 그 변화의 물결을 같이 타고 싶어 오래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한 나지만 아예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용기에 댈 바는 아닐 터이다.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은 어렵고 두렵고 힘든 일이다. 아주 많이. 


나도 창업을 했었다. 

7년 전에 아내와 함께. 지금은 트렌드가 좀 달라졌지만 7년 전만 해도 아주 핫했었던 영어 유치원을 열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를 아예 그만둘 정도의 용기를 내지는 못했지만 아내는 올인했다. 

지금도 일부 존재하지만 그때만 해도 거의 사회적인 이슈가 될 정도로 비싼 영어유치원 프랜차이즈가 아파트촌마다 들어서 있었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영어 조기 교육에 돈과 열정을 쏟아부을 때다.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MB정부의 어륀지 [Orange]로 대표되는 영어 우대 정책) 우리는 그런 비싸고 영양가 없는 프랜차이즈에 휘둘리지 않고 정말 제대로 된 영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겠다는 엄청난 포부를 품었다. 지금 생각하면 살짝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무릇 꿈은 커야 하는 법.


아내는 영어유치원 원장으로 일선 교육과 운영을 맡았고 나는 재무, IT, 구매 등의 말하자면 백오피스 업무를 담당했다. 프랜차이즈를 하지 않았기에 정말 짧은 시간에 회사의 거의 모든 업무를 경험했다. 앞에서 모든 것을 겪어낸 아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회사를 다니며 뒤에서 서포트 했던 나조차도. 


 [마케팅]  유치원 컨셉을 잡고 그에 따라 이름과 로고를 만드는 CI 작업을 머리를 맞대고 했다. 디자이너 친구의 도움을 받아 로고 그래픽 작업을 하고 변리사 친구는 상표 등록을 도와줬다. 포털에 검색했을 때 우리 유치원이 상위에 노출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그렇게 크다는 것에 깜짝 놀라고.

[총무] 적절한 장소를 찾기 위해 부동산들과 보냈던 그 길었던 시간들. 역시 건물주가 갑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고 인테리어 2-3군데로부터 견적을 받았을 때 그 금액에 또 한 번 놀라고.

[인사] 좋은 영어 선생을 찾기 위해 인력 에이전시들로부터 추천받은 외국애들과 새벽에 일어나서 전화로 인터뷰했던 추억들. 항상 내가 회사에 요구할 때는 거절당했던 조건들인데 왜 그 외국애들이 요구하면 약해지는 걸까 고민도 하고. 취업 비자를 내는 것은 어찌나 까다로운지.

[구매] 내 돈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꼭 필요한 비용들이 얼마나 아까운지. 아이들에게 나가는 안내장을 프린트하는데 들어가는 종이와 잉크 비용조차도 한 장 한 장 세게 된다. 아이들 점심 급식을 위한 음식 재료도 싱싱하면서도 저렴하게 구입하고자 아내와 나는 주말이면 마트에 가서 직접 차 한 가득 재료를 사 왔다. 

[IT] 지금이야 솔루션이 워낙 많지만 그때만 해도 간단한 홈페이지 하나를 만들어 주는데 2-3백만 원의 견적이 나왔다. 홈페이지 제작하는 법 책을 사서 공부하면서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고 웹호스팅 업체에서 호스팅을 받았다. 다니던 회사에서 몰래 포토샵 하던 내 모습...

......

뭐 이외에도 대자면 끝도 없지만 정말 십 년 넘게 회사를 다니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3년 남짓한 기간 동안에 겪어냈다. 사실 힘든 시간이었다. 아이들의 등록이 늘어나서 수강료 매출이 많아졌을 때도  임대료와 직원들 월급은 항상 부담이었다. 일과 후에도 그리고 주말에도 일을 놓을 수 없었던 아내는 점점 지쳐갔고 회사를 다니면서 지원하는 것은 나에게도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결정적으로 우리 유치원이 잘 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주위에 유명한 프랜차이즈 유치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매달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이들 숫자에 우리는 일희일비하며 가슴을 졸였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난 후. 매출은 부침을 거듭했고 아이들 교육은 영어 유치원에서 좋은 유치원이라는 트렌드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미 주위의 프랜차이즈들은 대부분 적자를 못 견디고 폐업한 상태. 우리 유치원을 매입해서 어린이집으로 운영하고 싶다는 제의가 들어왔다. 아내와 나는 이제는 그만할 때라는 결정을 내렸다. 같이 앉아서 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넘기는 계약을 마무리한 후 3년 동안 들어간 모든 비용과 수익을 계산해보니 적지 않은 금액의 적자였다.



3년 동안의 고생스러웠던 창업.  그 후에 나의 회사 생활은 달라졌다. 

일을 보는 시각이 더 넓어지고 크게 보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컨설팅 성격의 일들을 했었기에 기업의 전체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있긴 했지만 창업을 통해서 실질적인 감각이 생겨났다고나 할까. 마케팅, 구매, 재무, IT, 영업, 서비스 등 모든 영역의 일들을 해야 했던 경험들은 새로운 시각을 심어줬다. 내가 하는 일들이 회사 전체로 봤을 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는 버릇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따박따박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생겼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그만큼 나는 가치를 주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습관이 생겼고 그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이리저리 궁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자라났다. 자신의 비즈니스를 해보면 흔히 말하는 갑을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회사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밖에서 자신의 비즈니스를 해보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 지를 깨닫게 된다. 직장에서 만나는 모든 관계의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게 됐다. 협력업체의 어린 사원이든 사무실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든.

달라진 점들이 남들에게 자연스럽게 어필했는지 그때부터 회사에서 중요한 일들이 나에게 맡겨지기 시작한 걸로 기억한다. 승진과 연봉 인상이 뒤따라온 건 물론이다.



사실 생존을 위해 창업하는 분들에 비하면 나의 창업 경험은 너무나 속 편한 이야기이다. 상당한 금전적 손실을 입긴 했지만 생활에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었고 다시 그 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

회사 다니는 걸 포기하고 자신의 비즈니스를 열어라, 스타트업을 만들라고 주위에 권유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는 자신의 비즈니스를 하기에 너무나도 힘든 나라다. 하지만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리스크 내에서라면 어떤 형태로든 창업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좋아하는 책을 번역해서 1인 출판사를 해봐도 좋고 간단한 온라인 쇼핑몰을 해봐도 좋다.  창업의 경험은 회사원으로서의 자신의 성장을 도와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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