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냥이가 집으로 왔다

by 라프

퇴근 후 나보다 일이 늦게 끝나 귀가 중인 용거사님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끝에 한 마디 던진다.


참, 도반들이 죽어가는 유기 고양이를 우리 집 마당에 놓고 갔어요.


눈이 휘둥그레져 되물었다?


뭐??? 고양이를???

전화기를 붙잡고 당장 집 밖으로 나갔다.


"어디???"

"창고 옆이랬나??"

"창고 옆에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럼, 화분 옆에 가봐요. 박스 안에 있을 거예요."

"아!!!!! 여기 박스 하나 있어요."

"살아있어요?"

"몰라.ㅠㅠ 무서워서 못 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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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상자 사이로 하얀 배가 보인다. 다행히 힘겹게 아주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상자 뚜껑을 위로 올렸다. 그랬더니 녀석의 응아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힘겹게 숨 쉬고 있는 녀석이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세워 나를 빤히 쳐다봤다.


"살아있어. 근데 얘 어떻게 해야 해??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해야 돼??"

"(고양이 데려다 놓은) 보살님에게 전화해 봐요"


전화를 끊고 바로 보살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아이가 여기까지 온 사연인즉슨 이랬다.




요가센터에 두 명의 선생님이 더 계신데 그중 한 선생님의 고3 따님이 아빠 차를 타고 학교 가고 있었다. 4차선 도로를 지나가는데 도로 중앙에 있는 저 고양이를 발견했다. 차를 세워서 아이를 어떻게 해 보려 했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고 지각하기 직전이라 엄마에게 전화를 해 빨리 와서 구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래서 엄마가 도착. 만지려고 해 봤지만 하악 거리는 걸 보고 무서워서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 다른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와서 좀 구해달라고. (ㅋㅋㅋㅋ)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선생님 양손에 장갑을 끼고 구조대로 출동했다.

일단 박스에 담아놓고 병원에 데리고 갔다.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선생님 왈,


지금 설사하고, 몸이 안 좋은데 검사하고 치료하는데 20만 원이 들지, 30만 원이 들지 몰라요. 그 돈을 써서 치료한다고 해도 살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고요.



이 말을 듣자 선생님은 얼마 전 비슷하게 세상을 떠난 짱이를 떠올렸다. 이런저런 검사를 받느라 괜히 힘들게만 하고, 검사받은 다음 날 세상을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선생님은 기왕 죽을 거라면 남은 시간이라도 조용한 곳에 편안하게 있으라고, 우리 집 마당에 놓고 가신 것이다.




"보살님, 그래서 얘는 어떻게 해야 해요?? 상자 옆에 주사기 있던데 물이라도 먹여 볼까요?"

"하루 종일 먹여 보려고 했는데, 안 먹더라고요. 너무 찬물 말고 미지근한 물을 한 번 먹여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ㅠㅠ"


주사기에 물을 넣고 다시 박스를 열었다. 왼쪽에 머리를 두고 있던 아이가 이번에는 자리를 옮겨 오른쪽에 머리를 두고 앉아 있었다. 꾹 다물고 있는 입 끝에다가 물을 한 방울씩 흘려줬다. 입을 벌려 먹지는 않았다. 그래도 목이 마르면 털에 묻은 물이라도 핥아먹지 않을까 싶어 주사기의 절반 가까이 되는 물을 줬다. 계속 경계를 하길래, 다시 조용히 뚜껑을 닫고 집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에 용 거사님이 도착했다. 나는 요가 수업 들으러 나갈 준비를 하고 나오는데 애인이 물을 먹는다며 좋아하고 있었다.


"오오오. 정말. 정말 물을 먹네. 다행이다~~~"


그리고 센터로 요가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두 번째 구조자인 고3 수험생의 엄마 선생님을 만났다. 물을 마시게 되었다는 소식에 엄청 기뻐했다.


"역시. 거사님은 살려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센터에 있는 죽은 화분도 살려냈잖아요."


한 시간 수업 중에 30분 남짓 수업을 듣고 나와 세 번째 구조자 선생님에게도 새끼 냥이가 물을 마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자기가 계속 물을 먹이려고 시도했는데 실패했다고 정말 정거사님에게 아이를 보내길 잘했다고 기뻐했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수업 끝났어요?"

"네. 끝났어요. 새끼 냥이는 어때요? 살아났어요?"

"응. 살아났어요."

"우와. 어떻게???"


다행히 고양이들을 키우고 계신 스님들께 도움을 요청했고, 스님들이 알려주신 대로 설탕물을 먹였더니 상자에서 탈출을 시도할 정도로 팔팔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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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집으로 달려와 아이 상태를 확인했다. 확실히 처음 봤을 때보다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있었다. 눈빛도 살아 있고, 털에도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내일은 집에 아무도 없어서 센터에 데려다 놓기로 했다. 상자에 넣어두고 잠들었는데, 밖에서 고양이 소리가 들리니 그때부터 계속 울기 시작. 멈추었다. 그러더니 다음번에는 상자에서 계속 탈출 시도를 한다. 올라오지 못하도록 상자 위에 책을 쌓아 두었는데 이 똑똑한 녀석이 상자 문을 안으로 열어서 탈출에 성공했다. 한쪽 구석에 세워 놓은 거울 사이로 들어가 꼬리만 빼꼼히 내놓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곧 녀석을 잡아 다시 상자에 넣었다. 1시간쯤 흘렀을까. 다시 탈출을 시도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결국 다시 탈출에 성공한 녀석은 아까와 반대쪽에 있는 옷장 아래로 숨어들었다. 이러다 계속 잠에서 깨겠다며 그냥 놔두고 자자고 했다. 다행히 옷장 아래에 있는 동안은 아침이 올 때까지 조용했다.


아침에 센터로 데려가기 위해 옷장을 끄집어내었더니 아주 예쁘게 앉아 있었다. 우리 둘 다 그 모습을 보고 소리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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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 이뻐라~~~"(동시에 함성)


어젯밤에 이 녀석의 사연과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냥이 집사인 한 분이 댓글을 달아놨다.


조금 지나면 이쁜 짓할 텐데… 그땐 정들어 집사가 돼버릴지 몰라요. 지금이 젤 못생겼을 때… 점점 계속 이뻐집니다. ㅋㅋㅋ


헐.. 이 말을 들으니 왠지 한번 더 심쿵.


자..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 아이가 길로 돌아갈 수도 있고, 누군가 집사가 될 수도 있다. 집사 후보는 고3 수험생과 선생님 가족 그리고 우리 집인데…. 과연. 누가 집사로 낙점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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