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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Nov 12. 2021

1.6. 아기 조직이 코로나19 치료에 등장한 사연

실험실의 세포 공장, HEK293

21.11.12 작성/21.11.14 1차 수정/21.11.18 2차 수정


2017년부터 2021년 1월까지 미국의 대통령은 도날드 트럼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극우적인 정책과 비과학적 발언으로 악명이 높았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더욱 커졌다. 트럼프는 코로나19에 감염되기 전까지 말라리아 치료제 클로로퀸을 '먹어보니 느낌이 좋다며' 극찬했다. 그랬던 자신이 코로나19에 걸리자 최신 항체치료제 덕분에 누구보다 빠르게 회복해서 백악관에 돌아왔다. 사람들은 낙태 반대론자 트럼프가 낙태한 태아로 만든 코로나 치료제를 맞고 회복되었다며 빈정댔다. 욕을 먹을 만도 했다. 트럼프를 회복시킨 항체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낙태 세포’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료제 개발에 필요했다는 ‘낙태 세포’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 순간, 표리부동한 미국 대통령에 빈정대려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HEK293이 어떤 세포인지 알면 이 난감한 기분에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HEK293 (Human Embryonic Kidney 293, 293번째 인간 배아 콩팥(신장) 세포)은 1973년 캐나다 과학자 프랭크 그레이엄이 개발한 불멸화 세포주이다. 헬라 세포가 원래부터 암세포라 죽지 않는다면, HEK293은 태아의 콩팥 세포에 암을 일으키는 종양 바이러스 유전자를 넣어서 불멸이 된 세포주이다. 인간 유래 세포라서 인간에 적용할 연구를 시험하기에도 좋다. 단백질 의약품을 만드는 산업계 입장에서도 유용하다. 같은 단백질도 쥐나 햄스터 세포보다 사람 세포에서 만들어질 때 사람 단백질에 가까워지고, 면역 반응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한 HEK293


HEK293은 만나본 세포 중 가장 편한 세포였다. 실험실에서 연구하던 시절 ‘헥셀’이라 부르며 애용했다. 헥셀은 열두 시간 만에 두 배가 된다고 한다. 경험으로는 헥셀이 열 배로 불어나 배양접시를 채우는 데 3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키워도 잘 자라니 실험 부담도 많이 줄었다. 헥셀 한 접시로 내 연구도 챙기면서 동료들 여섯 명의 실험 재료를 함께 만들 수 있었다. 다른 세포였다면 세포에 맞춰 주말을 포기해야 했겠지만, 헥셀은 자라는 속도에 맞춰 금요일이나 월요일로 실험 일정을 조정할 수 있었다.


하얀 헥셀과 붉은 헥셀 접촉면에서 노란색 형광을 확인하는 실험.  신경 세포에서 확인할 실험이었지만, 실험 전 HEK293을 예비 실험에 활용했다.


HEK293은 헬라 세포만큼 유명하지는 않다. 다행인 일이다. 세포의 유래가 정확하지 않고, 알려진 사실도 떳떳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 배아 콩팥 293 세포’라는 이름이지만 ‘인간’과 ‘293’ 말고는 진위를 알 수 없다. 염색체를 살펴보면 인간은 맞고, 여성의 세포인 것까지는 확인된다. 하지만 HEK293의 주인이 어떤 존재였는지, 부모는 누구였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발생 초기인 ‘배아’의 세포였는지 장기를 어느 정도 갖춘 ‘태아’의 세포였는지도 알 수 없다. 20세기 중반, 과학자들은 인간의 몸을 벗어나서도 잘 자라는 세포를 찾다가 유산되거나 낙태당한 태아까지 손을 댔다. 어릴 때 쑥쑥 자라던 키가 어느 순간 멈추듯, 어른의 세포보다는 어린 세포가 더 잘 분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세포가 어디서 왔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실험용 생쥐조차 어느 농장에서 왔는지 보고해야 하는 요새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HEK293이 콩팥 세포인지조차 정확하지 않다. 세포의 정체는 세포가 만드는 단백질로 추측할 수 있다. 콩팥은 혈액을 여과해서 오줌으로 배출하는 기관이니, 콩팥 세포가 만드는 단백질도 여과와 관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HEK293이 만드는 단백질은 콩팥보다 신경 세포에 가까웠다. 이상하게 여긴 과학자들이 2014년 HEK293의 유전체를 분석했고, HEK293은 콩팥 근처 부신(adrenal gland)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부신과 신경계는 발생 중 같은 조직에서 분화한다. 덜 분화된 부신에서 유래한 HEK293이 신경 세포와 비슷할 법도 하다.


신장과 부신은 가까이 있다. 부신 세포를 신장 세포로 착각했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293이라는 숫자만 정확하다. 세포주를 만든 그레이엄이 어딘가에서 얻은 사람 세포에 종양 바이러스를 넣는 일을 반복하다가 293번째 만에 성공해 붙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HEK293의 이름을 의미를 살려서 제대로 지으면 HE/FA293 (Human Embryonic/Fetal Adrenal gland 293 cell)이 되었을 것이다. 입에 착 달라붙기가 '헥셀'보다 못하다.


무엇보다 엄밀해야 할 생명과학이 정체도 모르는 세포를 50년간 써왔다는 이야기가 의아할 것이다. 변명하자면, 이제 와서 HEK293은 연구 대상이라기보다는 실험 도구에 가깝다. 실험실에서 HEK293의 용도는 주로 실험에 필요한 유전자와 단백질을 생산하는 것이다. 주인과 함께 살며 매일 우유나 달걀을 주는 젖소나 암탉 같은 존재이다. 장 세포가 장에 소화 효소를 분비하듯, HEK293 세포는 연구에 필요한 물질을 만든다. 수십 년 실험의 역사 속에서 HEK293은 ‘형질 주입’이라는 실험 기술에 최적화되었다. 형질 주입을 이용하면 HEK293에 연구자가 원하는 유전자를 넣을 수 있다. HEK293 세포는 밖에서 들어온 유전자가 제 유전 정보인 줄 알고 읽어 단백질을 만든다. 연구자는 HEK293이 만든 단백질을 수확해서 본격적인 실험에 착수한다.


형질 주입의 모식도. https://www.mirusbio.com/transfection


HEK293으로 만들 수 있는 물질은 다양하다. 형질 주입된 유전자 자체를 복제할 수도 있고, 유전자를 토대로 단백질을 만들 수도 있다. 둘을 섞어 바이러스 같은 복잡한 생체 물질도 조립해낸다. 트럼프를 회복시킨 코로나 치료제는 물론, 코로나 백신을 만드는 과정에도 HEK293이 쓰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는 사람 세포에 파고드는 돌기 단백질이 존재한다. 과학자들은 코로나 치료제나 백신을 만들며 ‘돌기 단백질’을 활용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은 인체에 무해한 ‘아데노바이러스’의 껍데기에 코로나19 돌기 단백질의 유전 정보를 넣은 형태이다. 바이러스의 껍데기와 코로나19의 돌기 단백질 유전 정보를 HEK293에 형질 주입하면 세포 내부에서 둘이 조립되어 코로나 돌기 단백질의 정보를 담은 무해한 바이러스가 밖으로 나온다. 아스트라제네카의 '바이러스 백신'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복잡한 백신도 HEK293을 생체 공장으로 활용하면 전 세계에 공급할 만큼 대량 생산할 수 있다.


옥스퍼드가 공개한 코로나19 백신의 구조와 원리.  그림 한가운데 코로나19 백신(ChAdOx1 nCov-19 vaccine)을 만드는 데 HEK293이 쓰였다.


모더나와 화이자에서 만든 mRNA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의 바이러스 백신과는 구조가 다르지만, 이곳에서도 HEK293을 활용했다. 연구 개발 단계에서 HEK293에 코로나19의 돌기 단백질을 붙여 백신의 효능을 검증하는 용도로 사용한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를 HEK293에 주입하면 HEK293 세포막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돌기 단백질이 생겨난다. 내용물은 HEK293인데 껍데기는 코로나19인 혼종 세포인 셈이다. 연구진은 '코로나19 혼종 HEK293'을 이용한 덕분에 바이러스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서 바이러스 치료와 예방법을 연구할 수 있었다. 사람이 코로나19에 걸리거나 백신을 맞으면 면역 반응에 의해 항체가 생성된다. 몸이 두 번째로 접촉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먼저 만들어진 항체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돌기 단백질에 결합해서 바이러스를 무력화해야 한다. 항체가 혼종 HEK293에 솟아난 돌기 단백질을 무력화하는지 확인하며 사람을 바이러스에 노출시키는 위험한 실험 없이 백신의 효능을 테스트할 수 있었다.


돌기 단백질을 막에 내놓는 HEK293. https://www.invivogen.com/293-sars2-spike


50년 전 어느 태아의 조직이 불멸을 얻고서 오늘날 복잡한 물질을 만드는 최적의 세포 공장이 되었다. 죽지 않는 젖소가 전 세계 농장에 퍼져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여러 가지 맛 우유를 만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HEK293은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채 실험실에서 영원히 노역하는 아기가 아니다. 때가 되면 분열하는 세포일 뿐이다. HEK293 세포주가 개발되지 않았다면 연구자들은 잘 자라는 인간 세포가 필요할 때마다 낙태된 태아나 어린 아기의 조직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인간과 비슷하지도 않은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반복하며 수많은 생명을 의미 없이 죽였을지도 모른다. 21세기 줄기세포 연구가 발전하며 인간 어른 세포의 시간을 되돌리는 대안이 생겼다. 과거의 연구가 없었다면 얻지 못했을 성과이다.


학계의 윤리 수준도 높아졌다. HEK293이 개발되고 50년이 지났다. 이제는 선배 과학자처럼 윤리를 무시하고 연구할 수 없다. 실험에 필요한 윤리 절차도 많아졌다. 모든 실험은 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시작할 수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연구를 계획해봐야 ‘너의 방법 대신 더 윤리적인 대안이 없는가?’라는 질문에 가로막힌다. 태아의 세포를 이용하겠다는 실험 계획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른 세포의 시간을 되돌린 줄기세포를 쓰라’는 답을 받을 것이다. 대안을 무시하고 연구를 강행하더라도 과학적인 명성을 얻을 수 없다. 오늘날 저명한 학술지는 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연구는 제출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현대 윤리에 맞지 않은 과거의 연구가 과학의 귀중한 자산이 되어버린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HEK293도 ‘낙태아의 세포를 꺼내 배양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이 나오기 전에 ‘낙태아의 세포를 꺼내 배양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답한 결과다. 새로운 개념이 생기는 과정에서 사회·윤리적 논의가 한 발씩 늦을 수밖에 없다. 기술과 윤리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는 출발이 나빴다고 연구를 통째로 지울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과학적 맥락을 공유해야 한다. ‘낙태아의 세포를 꺼내 배양하는 것이 옳은가?’와 ‘과거에 꺼낸 낙태아의 세포를 오늘날까지 사용해도 되는가?’는 다른 질문이다. 후자에 ‘그렇지 않다’고 답하는 사람은 HEK293을 쓰지 않을 때 생길 생명의 기회비용에 해명해야 한다.


트럼프의 행실을 비난하고 싶더라도 이렇게까지 빈정거릴 필요는 없었다.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에 낙태아 세포가 들어간다’고 하면 ‘낙태아 세포’라는 말만 남는다. 단어가 귀에 박힌 사람들에게 사실을 해명하고 맥락을 알리기는 어렵다. 헨리에타 랙스가 사망한 후에도 반 세기 넘게 살아가는 헬라 세포처럼, 태생조차 확실하지 않은 HEK293은 전 세계 과학 연구의 도구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과학의 권위가 분야 바깥에서 오는 비판을 튕겨내서는 안 되겠지만, 고작 사람들의 오해 때문에 잘 쓰던 연구 도구를 버린다면 함께 잃을 진보와 생명이 너무 많다.




출처를 표기하지 않은 이미지는 Adobe stock에서 라이선스를 받았다.
 

<트럼프의 코로나19 치료제는 태아 조직에서 유래한 세포로 시험되었다 (Trump’s Covid treatments were tested in cells derived from fetal tissue) > 뉴욕 타임즈, 2020년 10월 기사 https://www.nytimes.com/2020/10/08/health/trump-covid-fetal-tissue.html
 낙태 반대론자 트럼프, 정작 낙태 배아 세포서 얻은 코로나19 치료제 복용 후 극찬, 동아사이언스 2020년 10월 기사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40499

 Graham, F. L., Smiley, J., Russell, W. C., & Nairn, R. (1977). Characteristics of a human cell line transformed by DNA from human adenovirus type 5. Journal of general virology, 36(1), 59-72.

Abaandou, L.; Quan, D.; Shiloach, J. Affecting HEK293 Cell Growth and Production Performance by Modifying the Expression of Specific Genes. Cells 2021, 10, 1667. https://doi.org/10.3390/cells10071667

 HEK293이 대중에 알려진 사건이 하나 더 있다. ‘인보사 사태’이다. 2017년 코오롱생명과학은 관절염 치료제 ‘인보사’를 개발해 판매했으나 1년 6개월 만에 허가가 취소되었다. 성분 분석 결과 허가받은 연골 유래 세포 대신 신장 세포가 나왔기 때문이다. 인보사의 주 성분인 ‘신장 세포’가 HEK293 세포의 변종인 GP2-293이다. HEK293이 연구 과정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면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지] 코오롱 '인보사' 개발부터 허가취소 소송 패소까지 – 연합뉴스. 2021년 2월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10219115400004

 Lin, YC., Boone, M., Meuris, L. et al. Genome dynamics of the human embryonic kidney 293 lineage in response to cell biology manipulations. Nat Commun 5, 4767 (2014). https://doi.org/10.1038/ncomms5767

 HEK293는 세포주와 균주 수집 비영리 단체인 ATCC에서 분양받을 수 있다 (https://www.atcc.org/products/crl-1573). 단백질을 생산하는 데 주로 쓰이는 세포주는 HEK293을 한 단계 변형한 HEK293T 세포주이다. 반세기 전 탄생한 HEK293 세포주는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변종으로 최적화되었다. 글에서는 편의를 위해 HEK293의 변종을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원래는 형질 전환(transformation)이라고 불렸다. 생명과학 실험실이면 어디서든 형질 전환을 한다. 오늘날 실험이 세분화하며 용어가 갈라졌고, 각각에 해당하는 한국어 용어도 생겨났다. DNA를 불릴 목적으로 대장균에 DNA를 넣는 것을 형질 전환 (transformation)이라고 한다. 형질 주입 (tranfection)은 진핵 세포에 DNA를 넣는 경우이다. 유전 정보를 숙주의 유전체에 확실히 넣기 위해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경우를 형질 도입 (transduction)이라고 부른다.

 van Doremalen, N., Lambe, T., Spencer, A., Belij-Rammerstorfer, S., Purushotham, J. N., Port, J. R., ... & Munster, V. J. (2020). ChAdOx1 nCoV-19 vaccine prevents SARS-CoV-2 pneumonia in rhesus macaques. Nature, 586(7830), 578-582.

 HEK293에 돌기 단백질을 발현한 세포주 페이지: https://www.invivogen.com/293-sars2-spike

 코로나 연구에 HEK293이 쓰이는 사례는 이 기고문을 주로 참고했다. <인간 태아 세포주로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을 이용하는 윤리 지침 – Moral guidance on using COVID-19 vaccines developed with human fetal cell ines> https://www.thepublicdiscourse.com/2020l/05/63752/

 학계의 윤리 기준과 과학자 개인의 기준이 어긋나는 경우도 있다. 2019년 중국의 과학자 허젠쿠이는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해 유전자 조작 아기를 만들었다. 그 결과 소속 대학에서 해고당한 것은 물론, 중국 당국에 징역 3년과 벌금 300만 위안 (한화 5억 5천만 원)을 선고받았다. WHO에서는 크리스퍼를 이용한 인간 유전자 편집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있다. (Cyranoski, D. (2019). The CRISPR-baby scandal: what's next for human gene-editing. Nature, 566(7745), 44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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