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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Dec 24. 2021

라스트 오브 어스 2 소감

생각은 많은데 말할 곳이 없어 정리한 글

라스트 오브 어스 1과 2의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최근 라스트 오브 어스 2 (이하 라오어2)를 끝냈습니다. 엔딩을 보고 나니 싫어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이해는 갔습니다. 저로서는 도리어 ‘게임’이라는 장르가 지닌 한계를 짚는 주제가 마침내 게임에서 나왔다는 점에 후련했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시애틀을 떠난 다음이었습니다. 플레이타임을 억지로 늘렸지만 주인공 엘리의 일관성만 깨졌습니다.


게임에서 재미를 만드는 가장 편한 방식은 적을 죽이는 것입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부터 시작해 라오어까지 온 전통입니다. RPG 주인공의 레벨을 올리거나, 단순히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플레이어 캐릭터는 끊임없이 생명을 죽여야 합니다. 이러한 주인공의 행동이 옳은지는 여러가지 매체에서 잔뜩 다룬 주제입니다. 하지만 게임은 캐릭터와 플레이어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캐릭터의 죄를 묻기 쉽지 않습니다. 플레이어의 죄를 묻는 기분이 드니까요. 라오어2는 그걸 정면에서 꺼냈습니다. 


라오어1에서도 시도는 했습니다. 데이비드의 입을 빌려 ‘혹독한 겨울이다. 웬 미친놈이 사람을 다 죽였다’고 말하면서, 조엘도 끔찍한 연쇄 살인자임을 플레이어에게 일러줍니다. 하지만 데이비드야말로 소아성애 식인마였음이 드러나면서 대사의 무게가 반감됩니다. 사람들은 엘리 시점에서는 위험에서 도망치는 데 이입하고, 그런 엘리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피를 묻히며 나아가던 조엘을 보면서도 죄책감이나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라오어2에서 적과 주인공의 관계는 라오어1과 다릅니다. (후반부에 너무 평면적으로 묘사되는 래틀러만 제외한다면) 사람 무리 중 완전한 악도, 선도 없습니다. 게임의 두 주인공은 눈앞의 사람을 죽이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이들이 쓰러트린 인간 하나하나에게는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생존하며 동료와 유대를 나누던 서사가 있니다. 엘리 시점에서 조엘의 복수를 하러 간 플레이어는 망가져가는 엘리를 보며 그의 선택이 옳았는지 되묻습니다. 시점이 애비로 바뀌면, 다른 각도에서 엘리가 무너트린 공동체를 보며 충격을 받습니다. 



다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에,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면’ 갈등이 해소될 것처럼도 보입니다. 모두에게서 총을 압수한 후 밧줄로 묶어서 한 방에 던져놓으면 일주일 후에는 어깨동무를 하고 나올 지도 몰라요. 하지만 주인공들의 목표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부터 ‘저 건물에 들어가야 하는데 걸기적거린다’까지,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이룰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반사적으로 사람을 죽입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며 삼체 2부 <암흑의 숲>이 생각났어요. 좀비 사태가 터지고 20년이 지난 사회, 사람들은 암흑의 숲을 걷는 생명들과 비슷합니다. 상대가 어떤 의도를 지녔는지 알 수 없기에 새로이 발견한 생명은 가차없이 죽여야 합니다. 그런 상황을 라오어2는 게임 상에서 탁월하게 묘사했습니다. 


두 주인공 엘리와 애비의 변화 묘사도 좋았습니다. 잭슨이라는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4년 간 지내온 엘리는 조엘이 죽으며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깨지게 됩니다. 세계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조엘의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엘리는 연인인 디나와 함께 무작정 시애틀로 가고, 먼저 갔던 토미의 자취를 좇으며 애비 무리와 점점 가까워지집니다. 하지만 그들은 목숨을 버릴지언정 동료를 지키려고, 정작 자신은 그런 이들에게 동료의 행방을 얻어낼만큼 잔인해지고 맙니다. 자기 자신마저 잃어버리는 것 같은 위태로움 속에서 결국 복수를 포기합니다. 그랬기에 애비의 총구 앞에서 그를 이해한다는 말을 하고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시점이니 아무 말이나 나왔겠지만, 시애틀에서 3일을 보내며 적의로 가득했던 엘리의 마음이 변하는 장면을 보았으니 진심으로 들렸습니다.



엘리의 3일이 스스로의 선택에 회의를 느끼는 시간이었다면, 애비의 3일은 자신과 소중한 사람이 속했던 공동체가 무너지는 경험이기에 더 극적입니다. 좀비 아포칼립스의 지옥도를 사회라고 할 수 있다면, 애비는 파이어플라이 공동체 속에서 ‘사회 경험’이 부족한 채로 컸습니다. 선의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을 아버지의 원수라는 이유로 잔인하게 죽였지만, 그 지점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바람에 스카 남매에게 비합리적으로 매달립니다. 사소한 반항은 울프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결말로 나아가고요. 모든 일이 끝난 후 애비에게는 레브밖에 남지 않습니다.


시애틀에서의 3일이면 두 사람의 이야기가 결말을 맺기에 충분했습니다. 애비는 어줍잖은 동정심과 정의감에 토미와 엘리를 살려주었고, 그 심성 덕분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레브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엘리가 마침내 마주하는 애비는 그런 존재입니다. 애비 시점에서 보는 엘리도 모든 것을 잃었기는 마찬가지고요. 애비로 플레이하는 장면에서의 엘리는 게임 상에서도 최종 보스처럼 강하니, 이야기의 마지막이 되기 충분합니다. 

엘리를 뒤에서 치던 애비는 디나에게 반격당하고, 엘리는 디나의 임신 사실을 말하며 애비를 막으려 듭니다. 임신한 친구를 먼저 죽인 건 엘리 자신이기에, 말하면서도 자신이 비겁하다고 느꼈을 거예요. 애비도 듣지 않고요. 다만 애비에게 제일 소중한 레브가 애비를 막았기에, 애비는 친구들의 복수를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납니다.


이후 산타 바바라에서의 사건은 시애틀 마지막 장면의 연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레브와 애비의 관계는 그대로 돈독합니다. 왠지 오히려 엘리의 심정만 리셋되어서, 시애틀에서의 깨달음은 사라지고 애비에 대한 집착만 남은 채 길을 나섭니다. 공공의 적으로 나오는 래틀러는 평면적인 악으로 묘사되며, 시애틀 공동체의 입체적인 측면을 반감시킵니다.


이 부분은 엘리의 캐릭터와도 맞지 않습니다. 라오어1에서부터 엘리는 강한 아이였습니다. 상실감을 다른 사람으로 채울 줄도 알고,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길 줄도 알았아요. 그 마음이 조엘 같은 사람마저 움직였으니, 라오어1의 스토리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것이고요. 시애틀에서의 일이 끝나고 최소한 1년이 지났고, 다음 세대인 제이제이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다던 엘리가 애비의 행방을 찾자마자 디나를 버리고 애비를 찾아나서는 장면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라오어 1에서 엘리는 몸도 마음도 강한 아이였죠.


이 부분에서 설득이 되지 않으니 마지막 전투인 해변가 난투도 별 감흥이 들지 않았습니요. 아무리 애비가 힘이 세더라도 기둥에 매달린 채 몇 시간은 보낸 상태인데, 몇 번이고 칼에 베여도 계속 일어나 엘리를 때리는 모습에는 이입했던 감정도 빠지고 그냥 게임을 하는 제가 우스웠습니다. 엘리가 애비를 보내주는 장면도 덜 극적이었어요. 이미 한 번 시애틀에서 애비가 엘리를 보내주었잖아요. 엘리가 기타를 칠 수 있던 손가락을 잃은 것과, 기타를 놓고 길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라오어2에서 기타는 조엘과 엘리 사이의 유대이자, 엘리가 제이제이에게 가르쳤어야 할, 아비규환 속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가치를 의미합니다. 엘리는 충동적인 집착과 복수심에 양쪽 유대의 끈을 잃은 셈입니다. 


산타 바바라에서의 3-4시간 플레이를 빼면, 라오어2는 스토리도, 구성도 훌륭했습니다. 제작진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 게이머를 공포에 빠트렸습니다. 엘리의 시애틀 1일차, 평화롭게 지도를 찾으며 아이템을 찾는 과정부터, 애비의 시애틀 3일차 시점에서 rat king을 잡는 급박함까지 재미있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게 한 게임을 찝찝하게 끝내 아쉬웠습니다. 이야기의 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무엇보다 결말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라오어를 통틀어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다른 인간들에 비해 너무 강합니다. 라오어1때도 조엘이야말로 세계 최강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2가 더 심합니다.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실제였다면 바로 죽었을 상황이 끊임없이 나오고,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살아남으니 이야기가 점점 작위적으로 느껴집니다. 게임이라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라오어 시리즈이니 후속작에서 건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라오어 2에서 주인공이 다른 인간들에 비해 선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으니, 3에서는 이들도 다른 인간처럼 약한 존재라는 점이 부각되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을 붙든 채 끝까지 나아가야 하는 게임 상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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