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a 쌍둥이 빌딩
2021년 여름의 끝자락, 여의도에 있는 엘지 트윈타워를 찾았다. 한강과 여의도 공원 바로 옆에 위치한 여의도 금융지역의 상직정인 건물이지만 직접 찾아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두 타워를 있는 아트리움의 존재는 프로젝트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다. 아트리움을 들어서면 내부의 하얀 격자 기둥이 만드는 빽빽한 그리드와 타일의 문양이 다소 과하다 싶기도 하지만 전통문양이 떠오르게 하는 선과 그리드가 만드는 일괄적인 디자인 언어가 흥미롭기도 하다. 함께한 아인이는 계단과 내부 연결브리지, 타일의 조명을 찾아가며 열심히도 다닌다.
원작자인 SOM(Skidmore, Owings & Merrill)을 찾아 엘지 측에서 직접 연락이 왔다. 거의 40세가 다 되어가는 엘지 본사 건물의 내부 레노베이션 프로젝트건이었다. 프로젝트 범위는 동관과 서관으로 불리는 두 타워의 로비와 아트리움의 내부 인테리어 디자인이다. 건물 내부의 공공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내가 담당하게 될 조경 작업의 범위가 정확하게 주어지는 대신 기존 내외부 조경공간을 분석하고 인테리어 팀과 협력하여 조경이 기여할 수 있는 범위를 찾아가는 것으로부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수변공원, 도시공원, 도시가로 등 도시의 다양한 공공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하거나 건물과 함께 외부공간을 디자인하는 등의 프로젝트와는 다른 새로운 타입의 프로젝트였다. 인테리어 + 레노베이션 프로젝트에서 조경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이 쌓인 건물의 주변은 예상외로 꽤나 푸르렀다. 부지런히 자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만드는 두 겹의 가로수는 충분한 그늘을 제공하고 소나무와 사철나무가 가득 심긴 플랜터는 건물 하층부를 든든하게 두르고 있었다. 넓은 대로로 둘러싸여 있는 대신 가로의 폭이 넉넉하고 도로만 건너면 한강공원, 여의도 공원등 녹지와 공공공간이 풍부하다. (더현대, 아이에프씨몰등 요즘 핫한 쇼핑몰도 지척에 있다. 엘지 본사의 아트리움과 타워의 로비는 공공에게 열려 있으니 한번 들러보세요.)
전반적 디자인의 방향은 '연결'이라는 콘셉트로 시작되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의 연결, 이곳에 모일 사람들 간의 연결, 그리고 내부와 외부의 연결. 아트리움에 내부의 칼럼 중 구조에 무리가 없는 일부 칼럼은 제거하고 건물 입구, 1층과 편의 시설이 있는 지하 공간이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열린 계단을 제안하였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뉴욕의 오피스도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27층과 28층, 두 층을 연결하는 열린 계단의 이 포럼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실제로 회사 이벤트가 있을 때 다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활발히 이용되고 있는데 비슷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외부의 풍부한 녹지가 내부와 연결되도록 계단에 플랜터를 더해서 디자인을 발전시켰다. 실내 공간에도 적극적으로 식물이 도입된다. 일상 속에 잠시 식물과 함께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되고 특별한 날에는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천창이 있는 구조이지만 실내에 있고 지하로 내려가면서 제한적인 빛을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실내에서도 생육이 가능하고 비교적 그늘에도 강한 식물들을 리서치했다. 숲 속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도 잘 자라는 하층부 식생에 주목했고 계단의 디자인과 결을 같이 할 수 있도록 수평성을 강조할 수 있는 낮은 지피 식물 위주로 계단 상층부의 수종을 제안했다. 사람들이 주로 머물게 될 지하 공간의 플랜터들은 상부 수종보다는 높이가 있고 형태의 특징이 있는 식물을 제안했다. 존재감 있는 식물과 함께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었으면 했다. 아쉽게도 공사 도면이나 현장 리뷰 과정에는 참여를 하지 못했고 생각했던 식재 계획이 반영이 되지 않은 점은 안타깝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
아. 한 가지! 생육환경에 무리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는지 조화와 진짜 식물을 섞어 심어 놓았는데 생각보다 조화의 퀄리티가 괜찮았고 진짜 식물과 섞여 있으니 더 자연스러운 면도 있었다. 앞으로 실내 조경 설계 시에 고려해 볼 점이다.
열린 계단 내부로 식물을 끌어 들어오는 연결뿐 아니라 크게 두 가지 조경의 역할을 찾아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첫 번째는 건물 외부의 입구와 접하는 부분의 조경이었고 두 번째는 내부 공간에서 바라보는 시점에 관한 조경이다.
메인 입구의 수경시설
건물 내부로 들어오기 전 입구부터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뉴스에도 종종 등장하는 메인 입구인 아트리움의 전면부에는 화려한 꽃이 심긴 화분들이 임시로 입구를 장식과 동시에 가로막고 있었다. 기능적인 이유로 어느 정도 채워줘야 한다는 요건을 바탕으로 전면부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동시에 공감각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수경시설을 도입하기로 했다. 건물을 드나드는 직원뿐 아니라 가로를 지나는 시민들도 즐길 수 있기를. 밖에서부터 연속적인 경험을 가지고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기를.
주차장과 정원
서관, 동관으로 불리는 두 타워의 로비는 주차장과 함께 놓여있기 때문에 주차장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게 된다. 풍부한 녹지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타워의 로비는 입구 주차장 뷰를 전경으로 가진다. 주차장의 기능은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 주차장과 건물사이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서 플랜터를 끼워 넣기로 했다. 작은 플랜터이지만 플랜터에 심길 관목과 작은 나무는 주차장을 시선에서 차단하는 역할을 하며 자연스럽게 가로수까지 포함하는 세 층의 풍부한 그린의 뷰를 제공한다. 작은 디자인 요소이지만 가로수와 같은 기존의 요소까지 적극 끌어들여 안팎의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고 내외부에서 공간 경험의 향상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아트리움 후면, 동측의 입구도 두 타워 로비와 같이 주차장을 가로질러 건물로 들어오게 된다. 지하철에서 접근하는 직원들은 보통 뒤쪽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가장 통행이 많은 곳이라고 한다. 타워 로비보다 공간의 여유가 조금 더 있었기에 입구로 접근할 수 있는 동선과 더불어 앉는 공간을 플랜터을 이용 해 제공하였다. 주차장 중앙부에는 기존의 조각상 대신 지하부와 빛으로 연결되는 오큘러스를 설치하여 조각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차량동선을 유도한다. 아트리움 내부에서도 주차장 뷰 대신 저층, 중층의 식재와 더불어 특별히 자작나무 숲을 내다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원의 핵심인 식재디자인은 제안한 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아트리움 후면에 계획했던 자작나무는 로비 정원에 심겨있었고 아트리움 후면에는 계획에 없었던 주목이 빽빽이 심겨 주차장 뷰를 가리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현재 건물을 두르고 있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와 사철나무가 풍부한 그린을 제공하지만 일 년 내내 변화 없는 단조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 아쉬워서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식재를 추가하고 싶었는데 최종 감리까지 참여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지하 1층에는 새로운 카페, 꽃가게 등의 편의시설이 들어오고 배치되었다. 나도 커피를 한잔 하며 앉아서 잠시 쉬었다. 눈앞으로 보이는 오큘러스 공간으로 외부의 빛이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후에 특별한 전시나, 조용히 명상을 할 수 있는 곳 등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현재 일하며 살고 있는 뉴욕에는 건물의 사유지이지만 공공에게 내어주는 공공 공간이 많이 있다. 빌딩 숲 속의 거리와 자투리 공간, 로비의 일부를 공공에게 내어주는 공간이다. 멀리서 찾아오는 공간은 아닐지라도 주변의 시민들이 찾아 쉬었다 가거나 길 가던 사람들이 뜻밖에 발견하는 기분 좋은 공간을 뉴욕의 거리를 걷다 보면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새롭게 단장한 엘지의 로비 공간도 그런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담아본다. 첫째로는 가장 그곳을 많이 이용할 직원분들에게 쉼을 줄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고 더불어 지나가는 사람들도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도시 속의 작은 발견의 기쁨을 줄 수 있는 공간이길 말이다.
2024년 여름, 아인이와 다시 트윈타워를 찾았다.
이 일을 하면서 언젠가 내가 디자인한 공간에 아이를 데리고 가보는 게 하나의 꿈이었는데 부족한 결과물이기는 하지만 드디어 아인이와 실제 지어진 공간을 걸을 수 있었다. 아인이는 언제나처럼 부지런히 나를 따라다니며 자연스럽게 사진의 모델이 되어준다. 내가 설계한 공간이 서울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거니와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라서 감사하다. 디자인 의도대로 실현되는 데에 있어 많은 부분이 고려되지 못한 점은 특별히 아쉽지만 이것 또한 배움의 과정이리라.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들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덧 알게 모르게 하나씩 이뤄진다. 더 뚜렷한 목표를 그리며 뚜벅뚜벅 걸어가야지.
Fun fact:
2001년 9월, 아직 고등학생이던 나는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다는 뉴스를 건너 듣고 여의도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다는 줄 았았었다. 어쨌든 잠시나마 큰 오해를 했던 그 고등학생은 20년 후, 여의도 쌍둥이 빌딩의 레노베이션 프로젝트에 참여하였고 진짜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던 장소인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