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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Jul 14. 2017

외다리 해적, 어깨 위 앵무새, 보물섬

보물섬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오늘은 흥미진진한 소재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특히 남성들에게는 더욱 관심이 가는 소재일까요? 이름만 들어도 모험이 떠오르는 소재, 바로 ‘보물’입니다. 보물에 아주 잘 어울리는 또 하나의 소재가 있다면, 그건 ‘해적’아닐까요? 보물과 해적.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어마어마한 금은보화를 숨기고 죽은 해적? 바다 어딘가에 있는 보물섬? 그리고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나타내는 보물지도?


  해적과 보물은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입니다. 이와 관련된 컨텐츠는 정말 다양하죠. 영화라면 <캐리비안의 해적 Pirates of the Caribbean>시리즈가 머릿속에 떠오를 수도 있고요, 만화라면 <원피스 One Piece>일까요? 그렇다면 소설은 어떤가요? 오늘 소개할 책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Robert Louis Stevenson'의 『보물섬 Treasure Island』입니다.



해적, 흑점, 보물지도


  스티븐슨의 『보물섬』은 감히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갖는 해적과 보물 이미지를 정착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설정들이 『보물섬』에서 기인합니다. 해적의 모습, 보물지도 표시 등. 한번 살펴볼까요?


  그의 모습은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에 생생하다. 한 사람이 터벅터벅 여인숙 입구를 향해 걸어왔고 그의 뒤로 선원들이 사용하는 궤짝을 실은 손수레가 따라오고 있었다. 키가 크고 몸은 단단하고 육중했으며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나이였다. 꼬질꼬질 때가 탄 푸른 외투와 어깨 위로 땋아 늘어뜨린 머리. 그 머리에 묻어 있던 타르. 거칠고 흉터가 많은 손. 검게 변색되거나 중간에서 잘려 나간 손톱들. 한쪽 뺨에 길게 나 있는 칙칙한 잿빛 칼자국.


  작품 도입부입니다. 주인공은 어린 ‘짐 호킨스’. 짐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벤보우 제독 여인숙’에 어느 날 뱃사람이 찾아옵니다. 선원들이 사용하는 궤짝. 뺨에 길게 나 있는 칼자국. 거친 외모. 딱 봐도 해적 같지 않나요?


  거칠게 생긴 ‘빌리 본즈’라는 이 해적이 여인숙에 거주하는데 아무 일도 없을 리가 없죠. 마을 사람들이 ‘선장’이라고 부르는 이 해적은 어린 짐이 보기에 언제나 주위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꼬박꼬박 짐에게 푼돈을 쥐어 주며 외다리 뱃사람을 보면 알려달라고 하죠.


나는 일등 항해사였어. 그래, 내가 저 유명한 플린트 선장의 일등 항해사였다. 그 장소를 아는 건 나뿐이지. 플린트가 사반나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지금 네가 보고 있는 나처럼 말이야, 거기서 그걸 내게 줬어. 하지만 놈들이 내게 흑점을 보내기 전에는 알리지 마라. 블랙독이 다시 오거나 외다리 뱃놈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야. 특히 그 외다리 뱃놈을 주의해.”


  그의 정체는 악명이 높은 해적 플린트 선장의 일등 항해사였습니다. 그가 말하는 ‘그 장소’는 무엇일까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겠죠. 플린트의 어마어마한 재산이 숨겨진 ‘보물섬’입니다. 바로 그가 보물지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언제나 해적의 말로는 순탄치 않죠. 매일같이 럼주를 마시던 본즈에게 어느 날 옛 동료가 찾아와 ‘흑점’을 주고 갑니다. 여기서 흑점이란 쉽게 말해 죽음 통보입니다. 한쪽 면이 검은 종이입니다. 역시 아주 해적스럽네요.


  얼마 안 가서 해적들이 쳐들어오고 우여곡절 끝에 짐은 본즈의 궤짝에서 방수포에 싸인 종이 뭉치를 훔쳐 달아나는데 성공합니다. 모두가 탐내는 종이 뭉치. 짐이 가진 것은 ‘보물지도’였습니다.


나중에 추가된 내용도 몇 가지 있었는데, 무엇보다 빨간 잉크로 세 개의 열십자가 그려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두 개는 섬 북쪽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남서쪽에 있었는데, 이 하나의 표시 옆에는 아까와 같은 빨간색 잉크로 선장의 삐뚤거리는 글씨체와는 달리 작고 반듯한 글씨체로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보물더미는 여기에.”
  뒷장에는 같은 글씨체로 다음과 같은 추가 정보가 있었다.
  
    키큰 나무. 망원경 등성이. 북북동의 북점을 향함.
    해골 섬 동남동의 동편.
    10피트.
    은괴는 북쪽 비밀 창고에. 동쪽 언덕 경사에서 찾을 수 있음.
    검은 낭떠러지를 마주 보고 남쪽 60피트.
    무기는 쉽게 찾을 수 있음. 모래언덕.
    북쪽 후미 입구의 북부.. 정동에서 약간 북쪽.
                                                                                                         J. F.


  낡은 지도에 열십자 표시.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이미지입니다. 보물의 위치를 표시하는 것에 열십자 표시 말고 무엇이 있겠어요?



외다리 해적, 어깨 위 앵무새, 보물섬


  위험에 빠진 짐을 구하고 보물지도를 확인한 지주 ‘트릴로니’와 의사 ‘리브지’는 바로 배를 구해 보물을 찾으러 떠나기로 합니다. 물론 짐 역시 ‘캐빈 보이’로 함께 하게 됩니다. 배를 구하고 선원을 구하는 일은 아주 손쉽게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보물을 찾으러 가는 데에 손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의심해볼 만한 것이죠. 우연하게 채용된 배의 요리사는 ‘존 실버’라는 과거 뱃사람으로 그는 외다리입니다. 그리고 선원들은 그가 잘 아는 사람들로 채워지죠. ‘외다리 뱃사람’을 조심하라는 본즈의 말이 떠오르시나요? 그리고 실버의 어깨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서 와라, 호킨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리 와서 나랑 얘기나 하자, 얘야. 너만큼 반가운 손님도 없지. 여기 앉아서 내 얘기를 들어봐라. 이놈은 플린트 선장이야. 그 유명한 해적 이름을 따서 내 앵무새를 플린트 선장이라고 부른단다. 플린트 선장이 우리 항해는 성공할 거라고 하는 구나. 그렇지 않니, 선장?”
  그러면 앵무새는 재빨리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여덟 조각 은화! 여덟 조각 은화! 여덟 조각 은화!”


  외다리 해적, 어깨 위의 앵무새. 낯설지 않습니다. 해적들로 대부분 채워진 배. 배의 선장 ‘스몰릿’은 불길한 낌새를 느끼지만 항해는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에는 주인공이 적절한 역할을 하죠. 아주 우연하고 재미있는 기회로 짐은 실버의 계획을 엿듣게 됩니다. 짐은 사과가 먹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말이죠.


  나는 아예 사과 통 안으로 들어갔다. 사과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통 안에 앉아서 배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자니 어느새 졸음이 몰려왔다. 그렇게 잠이 들었거나 거의 잠이 들려는 찰나, 바로 옆에 어떤 육중한 남자가 털썩 소리를 내며 앉았다. 그가 어깨를 기대자 통이 흔들렸다. 얼른 일어서려고 하는데 그 남자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버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채 열 마디도 듣기 전에 일어나려던 생각이 싹 달아나 버렸다. 나는 말할 수 없는 공포와 호기심을 느끼며 거기 누운 채 벌벌 떨면서 그들의 말을 들었다. 이미 들은 몇 마디 말에서 이 배에 탄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이 순전히 내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는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까요? 짐 일행은 무사히 보물섬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보물을 차지하는 건 누가 될까요?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어떤 전투,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떠나라, 찾아라. 바라는 금은보화가 그곳에 있다!


  해적과 보물은 불멸의 소재입니다. 언제까지나 보물지도의 존재는 우리를 흥분시키겠죠. 외다리 해적, 어깨 위의 앵무새 역시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스티븐슨의 『보물섬』을 읽기 시작할 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목부터 이미 어떤 내용일지 대충 예상이 갔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들, 그 이미지가 『보물섬』에서 기인했다는 점을 생각하니 마치 그 자체가 보물처럼 느껴졌습니다. 해적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보물을 숨겨놓은 ‘보물섬’이 책 『보물섬』 그 자체 같았다고 할까요?


  1883년에 발간된 『보물섬』은 100년이 훌쩍 넘은 고전입니다. 충분히 예상가는 이야기임에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는 소재 자체의 재미 때문이기도 하고, 지체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 구조 때문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의 모험과 때때로 닥치는 위험이 빠르게 다음 장을 넘기게 만들죠. 이전에도 스티븐슨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보물섬 못지않게 아주 유명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입니다. 역시 매우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동일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새삼 놀랐네요. 갑자기 보물과 모험에 관심이 생기신다면 캐빈 보이 ‘짐 호킨스’의 이야기 『보물섬』을 읽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반가운 보물들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자(死者)의 궤짝 위에 열다섯 사람
요― 호― 호, 또 럼주 한 병
나머지를 처리한 건 술과 악마
요― 호― 호, 또 럼주 한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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