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칸트
아마 칸트는 경험론과 합리론의 대립을 의아하게 여겼다. 왜 꼭 대립해야 하는가.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는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는 or이 아닌 and의 방식도 가능하다고 여긴 것이다.
우리는 이원론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실 이 이원론도 그냥 하나의 개념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 신체의 구조상 이원론에 최적화되어 있기에 이것을 전제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이원론의 세계에서 인간은 양극단만이 존재하며 한쪽만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면 중도인데 그것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애매하고 불투명하다고 치부하며 무시한다. 그래서 하나의 극단만 강요받는다. 다른 쪽은 적이고 절대로 가면 안 되는 곳이다라고 믿는다. 그래서 양극단은 언제나 갈등을 불러온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척'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대부분은 중간지대에 머물고 있다. 스스로 생각을 하지 않아서이다. 끝까지 가볼 용기가 없어서이다.
정말 하나의 극단에 가본 사람들은 안다. 한쪽으로 가본 사람만이 다른 한쪽도 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은 소수만이 할 수 있다. 영성계는 말할 것도 없다. 하늘과 땅에서 뜻을 창조하신 하느님, 죽음과 동시에 부활하신 예수님, 다 가진 왕자로 태어났으나 무의 경지인 해탈에 이른 부처님이 가장 좋은 예시이다. 인간계에서는 경험론과 합리론을 통합한 칸트, 기술과 예술을 구현한 스티브 잡스, 새의 눈과 곤충의 눈을 가진 야스다 회장 등 제3의 눈으로 극단을 품은 이들이다. 그들은 부와 명예 그리고 자아실현까지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꾸준히 스스로 생각한 결과이다. 자신만의 기준이 뚜렷하지만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에 그 공통점이 있다. 특히 자신만의 기준이 중요한데 이것은 법칙이나 룰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외부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닌 자신을 면밀히 파악하고 스스로 정한 것이기에 성장을 위한 최적화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아마 목적은 이 세상을 더 깊게 경험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자신만의 법칙을 정하고 그 안에서 세상에 대한 탐구를 이어간다는 것은 삶의 질서와 창조적 활동이라는 나의 지향점과 일치한다. 마치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는 칸트와 같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산책이라는 자신만의 법칙을 세웠다. 그리고 그 법칙 안에서 그는 자유롭게 상상하며 끝없는 사유를 하며 세상을 탐험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양극단을 동시에 품으며 결국 세상을 이롭게 하는 가치를 창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