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 낮추기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저항'이란, 익숙해져서 고치기 싫어하는 것이다. 쇼츠 보기, 유튜브 보기, 술 마시기, 늦게까지 넷플릭스 보기 등등 이런 것들은 너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영상과 콘텐츠에 빠져든다. 익숙해진다. 중간에 멈추기가 어렵다. 저항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하지만 행동의 끝에서 우리 모두는 후회한다. 언제나 같다.
한 번에 딱 끊어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무엇이든 그렇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두 가지 흐름이 변환될 때 저항은 언제나 존재한다. 여기서 승리는 좀 더 쉽고 재미있고 도파민을 자극시키는 무엇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무의식은 알고 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나에게 더 좋은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 스마트폰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행위가 나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끝에 늘 후회를 하는 것이다. 반면 독서를 하는 것은 처음에 저항이 커서 집중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지속하다 보면 그 끝에 우리는 뿌듯함을 느낀다. 그 행위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임을 알기 때문이다. 안 좋은 행위를 중단하고 좋은 행위를 시작하는 그 구간에서 엄청난 저항을 발견한다. 만약 나만의 목표가 있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싶다면 이 구간에서 반드시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바로 그것은 '작게 나누기'이다.
작게 나누는 것은 모든 물리학, 심리학, 행동경제학 등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 저항을 낮추는 최고의 개념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것은 진리이다. 천리길을 가고자 하는데 그 한걸음이 없으면 절대 갈 수 없는 것이다. 그 한걸음을 위한 저항값만 낮추면 천리길에 다다르는 것은 확률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방향 전환을 할 때 그 시작점을 아주아주 작게 쪼개는 것이다. 정말 하찮아보일 정도로 말이다. 예를 들어 운동을 하겠다는 목적을 가질 때 그 제일 처음 할 일은 운동화를 그냥 신는 것이다. 그리고 문을 연다. 이게 시작점이다. 아주 하찮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 행동 안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마치 씨앗 같이.
저항값을 낮추는 것은 별다른 방법이 없다. 정말 잘게 쪼개는 것 밖에 없다. 뭘 하든 작게 나누고 그 하찮은 행동을 하나하나 이어나가며 매일 반복한다. 이렇게 지속하면 정말 내 눈앞에 내가 원하는 것이 현실로 나타난다. 나도 안 믿었는데 지난 2년 이렇게 하다 보니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봐서 그런다. 진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