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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RA Jan 02. 2019

안나푸르나에서 별똥별과 마주하다

DAY6. 데우랄리~MBC~ABC

일자 : 2018년 12월 13일 - 트레킹 6일차
코스 : DEURALI(3,200m) → MBC(3,700m) → ABC(4,130m)
거리 : 약 10km
시간 : 약 7시간 30분


'놀이터 보스가 오늘하고 내일은 절대 씻으면 안된대.' 어제 데우랄리에 도착해서 씨얀이 씻으면 안된다고 알려주었다. 오케이. 나도 너무 추워서 씻을 생각 없었어. 놀이터 사장님과 매일 사고없이 트레킹하는지 연락을 하나보다. 출발하기 전에 사장님이 고레파니부터는 고소 위험이 있으니 씻지말고 물티슈로 해결하라고 했었다. 이렇게 말해도 꼭 말 안듣는 사람들 있다고도 말했었는데 우리는 말 잘 듣는 얼굴로 대답하고는 시누와까지 씻었다. 씨얀이 얘기했겠지. 보스, 얘네 오늘도 씻었어!


씻지 않으니 짐을 많이 풀 일도 없었다. 오늘은 빨리 준비해서 8시에 꼭 출발하자. 이제 짐 챙기는 것도 요령이 생겨 8시 전에 출발준비를 완료한다. 드디어 대망의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가는 날이다. 어제 올라오는 길에는 눈이 녹아서 진흙길을 걸었는데 밤새 다 얼어서 올라가는 길에 미끄러운 진흙을 밟을 일은 없었다. 다들 8시에 출발하는지 외국인 무리들과 함께 줄지어서 올라간다. 오. 진짜 해외에서 트레킹하는 기분 나는데?


조금 더 올라가니 길 중간중간이 얼어있다. 아직은 아이젠이 필요없다는 씨얀의 말에 우린 그냥 걷는다. 우린 씨얀의 말을 백퍼센트 신뢰하니까. 우측엔 강물이 흐르고 산에는 폭포가 떨어지다가 눈이 되어 얼어붙어있는 풍경에 마차푸차레까지 더해지니 진짜 우리가 많이 올라오긴 많이 올라왔구나 싶다. 마차푸차레가 정말 가까이 보였다. 정상에 쌓인 눈이 고래꼬리처럼 보였다. 뇽은 아직도 어떻게 저게 피쉬테일인지 이해가 안간다고 한다.

고래꼬리같은 마차푸차레


내가 '우리 이런 눈길도 가야 돼.'하며 눈밭을 걸어가는 사진을 보여줬을 때 모두들 '에이,설마...'라고 했는데 그 사진에 있던 그 길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제 아이젠이 필요한 순간이다. 아이젠으로 발은 더 무거워졌지만 미끄러지지 않으니 걷기가 한결 편해졌다. 지금부터는 눈 앞에 눈에 덮힌 산들만 보인다. 눈덮힌 산에 둘러쌓여 걸으니 진짜 히말라야를 등산하고 있다는 게 더욱 실감이 났다. 그렇게 3시간을 걸어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우리는 걷지 않을 줄 알았던 눈 덮힌 길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풍경을 실제로 만나다


MBC에 오다니... 내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다. 밥을 먹기 위해 장갑을 벗었는데 손이 얼어버릴 것 같다. 그럼에도 역시 우리는 참 잘 먹는다. 가끔씩 머리가 띵하고 어지럽긴 하지만 확실히 고소는 없는 걸로...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손 씻을 물을 찾으니 이제 얘기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물을 가져다준다. 센스 만점 가이드들이다. 우리가 밥을 먹거나 쉬고 있을 때도 한 쪽 구석에 앉아서 계속 우리를 보고 있다가 우리가 뭘 찾는 것 같으면 바로 찾아서 가져다준다. 날씨 운과 더불어 가이드 운도 참 많다.

눈 덮힌 돌산이 자꾸 뒤돌아보게 만든다
눈이 내려 더 멋진 MBC
MBC 롯지의 흔한 창문 밖 풍경


점심을 먹고 있는데 헬기가 지나간다. 어제도 헬기를 두 대 정도 보았다. 물자조달을 위한 것일까, 사고때문일까. 알 수는 없었지만 별 일이 아닌 거라고 믿기로 했다. 헬기 바람때문에 눈발이 날린다고 생각했는데 눈발이 점점 굵어진다. 점심을 다 먹고 나니 우비를 입어야 할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우비를 입으니 또 다시 재난영화가 시작되었다. 추워서 옷도 많이 껴입은 데다가 우비까지 입으니 몸이 더 둔해진 기분이다. 어쩌면 매끼를 너무 잘 먹어서 둔해졌을지도.


여기서부터 ABC까지는 2시간 정도 가야하는 'Easy way'라고 했으나 고도 때문인지 세상 느린 나무늘보 걸음으로 가는데도 힘이 들고 숨이 찬다. 네팔 털모자가 꽉 끼어서 머리가 더 아픈 것 같았지만 너무 추워서 벗을 수가 없었다. 눈이 많이 내려 시야가 멀리까지 보이지 않았고 눈 앞이 온통 겨울 왕국이었다. 눈 길을 계속해서 걷는 내 발을 보며 걷고 있으니 순례길이 따로 없었다. 지금 여기가 바로 산티아고다. 아직 ABC에 도착하지도 않았고 이제 막 MBC를 출발했는데 갑자기 감격스러운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났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밤새 페달을 굴려 약 20시간 만에 도착했을 때도 눈물 한방울 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지금 여기, 안나푸르나 순례길


갑자기 쿠쿵쿠쿵 소리가 난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산에서 얼어있던 눈더미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저런게 눈산태구나. 멀리서 보니 신기했지만 가까이에 있었다면 너무 공포스러웠을 것 같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길 끝자락에 롯지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더 가다보니 나마스떼 표지판도 보였다. 와우! 드디어 도착이다! 나마스떼 옆 표지판에 써 있는 'You achieved' 글귀가 마음에 와서 박혔다. 우리가 해냈다. 사고없이 4명 모두 무사히 안나푸르나를 밟았다. 씨얀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항상 겸손한 씨얀의 마음가짐과 성실함, 따뜻함을 배우고 싶다.

나마스떼!

다행히 식당에 작은 가스나로가 있었고 사람들의 온기 덕분에 그나마 따뜻했다. 우리의 최애티인 진저티를 마시고 있는데 뇽이 구름이 걷혀서 산들이 보인다고 사진찍으러 나가자고 한다. 순간 추워서 나가기가 귀찮았지만 여기는 안나푸르나다. 절대 귀찮아서는 안되는 곳이다. 방에가서 등산화로 갈아신고 포토포인트에 가니 힌출리, 안나푸르나 남봉, 마차푸차레를 모두 볼 수 있었다. 박영석 대장 추모비를 찾으러 가던 중 다시 구름이 몰려오더니 산들을 모두 가려버렸다. 진짜 잠깐 사이에 운좋게 산을 볼 수 있었던 거다. 눈이 또 내릴 것 같아 추모비는 내일 가보기로 하고 식당으로 돌아왔다.

안나푸르나는 사랑입니다


저녁을 먹고 티를 마시며 안나푸르나에 온 감동을 나누었다. 정말 누구 하나라도 고소 때문에 힘들었다면 아쉬운 헤어짐을 했을 수도 있고, 그게 나였을 수도 있다. 여러가지 걱정했던 일들은 하나도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안나푸르나에서 하룻밤 잠을 잔다는 것이 너무 감격스럽고 대견했다.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는데 쪼가 와서 깨운다. '별 보러 갈 생각 없어요?' 별? 봐야지, 봐야지. 안나푸르나 별 봐야지. 머리만 대면 곯아떨어지는 MJ를 깨워 별을 보러 갔다. 별 보는 장소로 가는데 쪼가 하늘을 못보게 한다. 바닥의 어둠만 보면서 가다가 포인트에 도착해서 고개를 들었다. 우와! 대박! 히말라야 산맥들과 별을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소름끼치게 멋지고 예쁜 풍경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별똥별도 보았다. 별이 정말 반짝반짝하며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반복하며 빛나고 있었다. 눈이 너무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밤새 별을 보고 싶었지만 너무 추워서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방에 돌아와서 너무 행복해서 웃으면서 잠이 들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깨서 화장실에 갔다. 볼 일을 본 후 별을 또 보러갔다. 역시나 별은 아직도 열일 중이었다. 정말 크게 떨어지는 별똥별도 두개나 보았다. 밤하늘에 빨려들어갈 것 처럼 너무 멋졌다. 그렇게 나는 난생 처음 안나푸르나에서 별똥별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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