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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Aug 15. 2016

어서 와 캥거루야


1년 간 여행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머리와 릴리만큼 동물을 사랑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과 호주 대자연 속에서 한 달간 머물렀다. 머리와 릴리는 핌버튼 이라는 산 중턱에 살고 있었다. 산 아래쪽에는 과수원이 있었다. 화랑을 운영하다 일흔 가까이 되자 그들은 그림 대신 과일을 보는 일로 남은 생을 이어갈 작정이었다. 자두나무, 살구나무, 라임 오렌지 나무, 레몬 나무. 열 그루 정도 되는 나무들이 산 아래서 무럭무럭 크는 동안 노부부는 산 위쪽에서 산딸기를 따고 탁자를 만들고 허브를 키웠다.       


머리와 릴리 집 주변에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빽빽하게 자랐다. 세상에서 가장 높이 자라는 나무 중 한 가지였다. 흰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것은 서호주의 사막기후 다시 말해 한낮이면 사십 도까지 오르는 더운 지역에서 유일하게 보기 시원한 것이었다. 열기를 피해 우리는 주로 새벽에 일했다. 가시덤불 속에서 산딸기를 따는 일을 했다. 한참 허리를 굽혀 일하다 고개를 들면 어느새 캥거루는 건너편에서 우물우물 산딸기를 먹었다. 회색 털에 검은 눈동자로 지그시 우리를 보았다. 안개를 닮은 동물이었다. 고요하고 부드러웠다. 릴리는 산딸기는 자연이 준 선물이라며 캥거루도 선물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산딸기를 모두 갖는 법이 없다. 과수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높은 가지에 있는 살구를 딸 때 종종 바닥에 떨어지는 것들이 있다. 떨어진 살구는 그대로 두었다. 캥거루도 먹을 게 필요할 테니까. 머리와 릴리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해가 질 때마다 발코니에 앉아 와인을 마셨다. 붉은 커튼 같은 하늘과 글라스에 담긴 와인을 함께 휘저었다. 산비탈에서 과수원을 내려다보는 것은 지루하지만 그 지루함을 기다리는 것이 행복했다. 뜨거운 대지가 천천히 식어가기 시작하면 캥거루들은 잠에서 깨어났다. 캥거루는 낮에는 깊은 숲 속에서 자고 저녁에 하루를 시작했다. 어둑어둑해지면 과수원으로 캥거루 가족이 다가왔다. 캥거루들은 땅에 떨어진 과일을 먹었다. 캥거루가 자두를 두 손으로 들고 앙앙 깨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캥거루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곤 자두를 좋아한다는 사실뿐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 자두를 먹는 게 더 즐거운 일이 된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 주머니에든 아기 캥거루가 튀어나오는 것을 본다. 호기심을 참지 못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기에게서 마음 한 곳이 울려온다.      


한 번은 기분 좀 내볼까 하고 과수원에 텐트를 쳤다. 가끔 툭 하고 레몬이 떨어지면 나는 텐트 안에서 소원을 빌었다. 밤이 되자 과일나무에서는 달콤한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잠을 자다 폴짝거리는 소리에 깼다. 레몬이 떨어진 건가, 하며 다시 눈을 감다 캥거루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밤새 캥거루가 주변을 맴도는 소리. 두 발로 뛰어다니는 캥거루에게서 나는 큰 위안을 느낀다. 등을 두드려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누군가의 손길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캥거루와 나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스무 발자국 정도의 거리.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캥거루는 풀쩍 뛰어 숲으로 사라졌다. 그 뒤로 캥거루와 내가 가만히 바라보는 거리를 찾기 위해 매번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했다. 캥거루야 캥거루야 부르면서 눈을 마주치는 연습을 했다. 그리하면 캥거루도 나를 부른다. 앞마당 빨래터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자신이 얼마나 날랜지 얼마나 경이로운 지를 뽐내는 것만 같다.      


캥거루가 특별히 가까이 다가오는 날이면 머리는 늘 주머니에 갖고 다니는 칼로 사과를 잘라 캥거루에게 던져주었다. 캥거루들은 던져준 사과를 두 손으로 들어 와그작 와그작 먹었다. 꼭 배고픈 사람이 한 입에 사과를 베어 먹는 것 같아서 나는 한참 웃었다. 캥거루가 사과를 먹는 소리가 빨래터에 퍼지면 나는 사람과 캥거루의 사과 먹는 소리가 똑같다는 사실에 괜스레 감동하기도 했다. 생물과 생물이 모두 나란히 태어난 것 같아서. 내가 자연의 한 부분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캥거루는 캥거루로 태어나고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 우리는 비슷하게 살고 있구나. 우리는 서로를 반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 해도 캥거루가 저녁마다 찾아오면 어서 왔다고 네가 오기 한 시간 전부터 나는 몹시 설렜다고 고백했다. 캥거루는 내가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깜빡였는데, 나는 그것이 대답처럼 느껴져 밤새 행복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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